지구가 평평하지 않을 수도 있겠구나

tvN <나의 첫 사회생활>을 보고

by 백디요



MBC <아빠, 어디가?>가 베이비 예능의 스타트를 끊은 게 7년 전이다. 초등학교도 6년이면 끝난다. 정말 많은 아기가 TV에 등장했고, KBS <슈퍼맨이 돌아왔다>는 아직까지 자리를 지키고 있다. 작년에도 KBS <아이를 위한 나라는 있다>와 SBS <리틀 포레스트>가 방영됐다. 시청자가 점점 베이비 예능에 지겨워하는 건 사실이다. 시청자를 붙들기 위해 더 귀여운 아이와 기발한 육아 방법이 TV를 채웠다. 그러던 중에 또 다른 베이비 예능 tvN <나의 첫 사회생활>이 시작했다.


나는 요즘 지구가 평평하지 않다는 걸 처음 발견한 과학자의 희열을 짐작한다. <나의 첫 사회생활> 덕분이다. tvN <나의 첫 사회생활>은 ‘5~7살 아이들이 유치원에서 겪는 첫 사회생활을 관찰하고 그 모습에서 어른들의 모습을 돌아보는 베이비 관찰 예능’이다. 모두가 아이를 ‘어떻게’ 키울지 골몰할 때 <나의 첫 사회생활>은 ‘꼭 아이를 키워야 하냐’는 의문을 던졌다. 나는 정말로 이 예능을 보기 전까진 베이비 예능은 ‘아이를 키워야 한다’고 생각했다. 지구는 당연히 평평하다고 믿고 있던 사람과 같았다.


또한 <나의 첫 사회생활>은 베이비 예능이기보단 차라리 시트콤이다. 다음 주 에피소드를 기다리다 보니 모든 회차를 다 봤다. 전혀 질리지 않았다. 이 프로그램이 기존 베이비 예능과는 다른 곳으로 시청자를 인도했기 때문이다.




“멀리서 보면 희극, 가까이서 보면 완전 야생”


앞서 말했듯 <나의 첫 사회생활>은 아이를 키우겠다는 마음을 잠시 접어 둔다. 오히려 배우겠다는 생각으로 아이들을 관찰한다. 이는 육아나 ‘귀여운 아이들의 모습’을 보여줬던 기존 베이비 예능과 비교해 새롭다.

이전에 베이비 예능을 보는 시청자는 TV를 볼 때 ‘현실 속 나’를 잊었다. 세상 물정 모르는 듯 해맑게 웃는 아기들을 보고 있으면 복잡한 인간관계나 사회생활 따윈 잠시 덮어둘 수 있었다. 하지만 <나의 첫 사회생활>은 오히려 아이들에게서 시청자가 ‘현실 속 나’를 발견하도록 만든다. 고집부리고 화내는 아이들의 모습이 어른인 나와 닮았기 때문이다. 멋쩍은 웃음이 나오는 포인트다.


통념을 깼기 때문에 시청자가 기존 베이비 예능에 갖던 판타지 역시 깨진다. 아이들의 사회생활도 엄연히 사회생활이다. 때문에 서열을 정하고, 집단을 만드는 아이들에 불편함을 느낀 시청자도 있었다. 방긋방긋 웃는 귀여운 아이가 아닌 어른들도 해결하기 난해한 문제들을 베이비 예능에서 보게 되다니. 분명 낯선 지점이었다. 하지만 아이들이 깊은 갈등을 극복하고 서로 친해질 때, 어른들은 아이들의 모습에서 배울 수 있다. ‘현실의 나도 극복하지 못한 문제를 아이들은 쉽게 해결하는구나!’. 그러면서 시청자는 힐링한다. 현실을 잊는 힐링이 아니라 현실 속에서 나도 헤쳐나갈 수 있다는 힐링이다. 전문가들이 나와서 인간관계나 사회생활에 관한 팁도 전해주니 유용하기까지 하다.




“이거 완전 시트콤이잖아!”


<나의 첫 사회생활>은 차라리 시트콤에 가깝다. 프로그램엔 아이들 10명이 등장한다. 5세~7세 정도의 나이인데, 모두가 각자 캐릭터를 갖고 있다. 내성적인 아이, 승부욕 강한 아이, 덤벙대는 아이, 챙겨주는 아이 등 다양하다. 또한 5살은 막내로서 고충이, 7살은 리더로서 걱정이 있다. 정말 인간군상이 유치원 안에 다 모여 있는 것이다.

다양한 아이들이 서로 싸우고 화해하면서 하나의 에피소드가 완성된다. 막내의 생존기, 리더의 조건, 인간관계 만들기, 꽃피는 로맨스 등. 아이들의 다양한 소동 덕분에 시청자는 매회 지겹지 않고 새롭다. 아이들의 표정도 다채롭다. 방긋 웃거나 서러워 우는 것뿐만 아니라 째려보는, 난감해하는, 사랑의 눈빛을 보내는 표정들이 어우러진다.


무엇보다 <나의 첫 사회생활>에서 아이들이 보여주는 에피소드가 어른 시청자들도 공감할 수 있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이는 프로그램이 아이들을 ‘키워야 할 존재’로 보기보단 ‘어른과 같은 어려움을 겪는 대등한 존재’로 바라보기 때문이다. 덕분에 시청자는 <나의 첫 사회생활> 속 아이들을 단순히 관찰 대상이 아닌 감정을 이입할 수 있는 대상으로 여긴다. 기존 베이비 예능에서 아이들에게 느껴보지 못했던 짠함과 안타까움이 느껴지는 이유다.

때문에 <나의 첫 사회생활>은 예능이기보단 다양한 캐릭터들이 매회 독립적인 주제로 시청자를 웃고 울리는 시트콤의 모습으로 다가온다.




<나의 첫 사회생활>의 시청률 성적이 좋은 것은 아니다. 하지만 시청자에게 새롭고, 시청자들을 몰입시키고, 다시 찾아볼 이유가 있는 프로그램이라는 점은 분명한 듯하다. 베이비 예능에 새로운 관점을 던진 <나의 첫 사회생활>. 이후에 베이비 예능의 판도가 어떻게 바뀔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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