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을 보내는 택시 안에서

by 에블린

2021년 겨울에 남긴 글을 다시 꺼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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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주로 재택을 하고 통근하는 날엔 택시를 이용합니다.

사무실에서 집까지는 차로 30분.

대개 저는 그 시간에 멀미를 참으며 무거운 눈을 붙여요.


오늘도 택시를 탔습니다.

음악을 듣는 것도 피곤해서 이어폰을 꺼내지 않았어요.



그랬더니 기사님이 말을 걸어오셨습니다.

'나한테 결혼했냐고 물으시려나, 아니면 자식 자랑? 아 제발 정치 얘기만 아니면 좋겠다.'

속으로 이런 생각을 하면서 얘기를 듣기 시작했죠.



"오늘이 지나면 올해도 이틀밖에 안 남네요. 해 바뀌면 또 한 살 먹을 텐데 너무 아쉬워요. 언제 이렇게 시간이 지나버렸는지."

같이 택시를 하는 형님들은 이제 일할 수 있는 나이가 얼마 남지 않았다며

다시 택시 면허증 사진 속 젊은 시절로 돌아가고 싶다고, 그러면 신나게 살 것 같다고 하셨어요.



택시에서의 대화가 유쾌한 적이 별로 없어서 방어적으로 듣고 있었는데, 최근 시한부 판정을 받으신 할머니와 부쩍 나이 든 부모님 생각이 겹쳐 마음이 이상했습니다.

뭔가 더 힘이 되는 말씀을 드리고 싶었지만, 표현에 영 서툰 저는 "사고 안 나고 건강하신 것만으로도 올해 너무 잘 보내셨어요"가 최선이었어요.



기사님도 맞장구치시더니 이번 해에 코로나 검사만 5번 넘게 받았다고 하셨습니다. 얼른 일해야 하는데 마냥 기다릴 수 없으니, 보건소보다 결과가 빨리 나오는 병원에서 매번 자비로 검사를 받으셨다고.

얼굴을 보니 마스크를 2개나 끼고 계셨어요.


차도 얼마나 깨끗하게 관리하시는 지 7년이나 된 차량이라고 해서 깜짝 놀랐습니다.

소독도 열심히 하고 부품도 얼마 전에 교체하셨다는데, 기사님이 얼마나 일을 소중하게 생각하시는지 느껴졌어요.


기사님의 택시 경력은 40년이나 되었다고 합니다.

하나의 업에 제가 살아온 시간보다 긴 시간을 바친 셈이네요.

하루하루를 얼마나 성실하게 살아오셨을지 그 꾸준함에 경외감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이 모든 대화를 무례한 질문이나 자랑, 한탄 없이 담백하게,

하지만 꼬박꼬박 존댓말로 말씀하시는 기사님이 참 멋있는 어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기사님은 자녀분들과도 친구처럼 지내신다고 해요. 지나간 세월이 아쉽다고 하셨지만, 누구보다 '지금'을 행복하게 사시는 분 같았습니다.



올해 이런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어떻게 하면 돈을 더 빨리 많이 벌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더 좋은 직장에 다닐 수 있을까?'


그러다 최근엔 저 자신에게 이런 질문을 하고 있습니다.

'나는 왜 부자가 되고 싶을까?'

'나는 일에서 무엇을 얻고 싶은 걸까?'


답은 여전히 알쏭달쏭하지만

제일 중요한 건 결국 '지금, 오늘'을 성실하게 살아가는 일인 것 같아요.


인생은 과거나 미래에 있는 게 아니니까.



택시에서의 30분 덕분에 2021년 내내 지쳤던 마음이 조금 몽글몽글해진 기분입니다.

저도 기사님 같은 모습으로 나이 들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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