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내 아이가 피아노를 칩니다.

왕초보 주제 글쓰기 15

by 친절한백쌤

지금 내 아이가 내 옆에서 피아노를 칩니다.

휴일을 맞이하여 엄마방으로 건너온 중3 큰 딸 희수가 피아노를 칩니다.

"얼마나 피아노를 치고 싶었는지 알아?

쌍방향 화상 수업하고 나면 2시인데 그땐 아빠 학생들이 거실에 있어서 피아노를 못 쳤어."

아이들 아빠는 평일 거실에서 수학 공부방을 운영합니다. 피아노 치기는 불가능하지요.


지난 주일 '인생의 회전목마' 악보를 사달라고 해서 사주었더니 연습해보고 싶었나 봅니다.

층간 소음으로 서로 불편할까 봐 거의 피아노를 건드리지 않습니다만 아이가 오랜만에 쳐보겠다는 말에 피아노를 열쇠로 열어주었습니다.

아이가 내 옆에서 피아노를 칩니다. 저는 바로 옆 책상에서 글을 씁니다.

글을 쓰면서 들리는 피아노 선율......


1993년 어느 날 내가 중1 때 엄마는 김천의 삼익피아노 매장에서 할부로 200만원 넘는 피아노를 사 오셨습니다.

"내가 피아노를 가지고 시집을 왔는데 네 아빠가 화물차 산다고 내 피아노를 팔았지 뭐야.

다음에 다음에 사준다더니 그게 벌써 13년이 지났네.

내가 돈 없어도 피아노 할부로 샀어.

이모가 매장에서 젤 좋은 걸로 사라고 해서 그렇게 했어."

촌 동네에서 피아노... 어울리지 않아 보였지만 엄마는 할부금 걱정도 잊은 채 기뻐하셨습니다.


나는 국민학교 4학년 때 인근 면소재지 약국에서 약사님 딸에게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다른 친구들은 컴퓨터학원을 등록할 때 저는 피아노를 시작했지요.

한 달에 피아노 회비가 2만원이었습니다. 회비는 가끔 밀리기도 해서 몇 달 만에 지불하기도 했지요. 내 친구들 중에는 아무도 배우지 않던 피아노를 배우도록 등록해주면서도 국민학교 1학년 때부터 시켰어야 했다며 아쉬워했습니다.


이후 엄마가 사주신 피아노는 제가 이동하는 지역마다 함께 했습니다. 2000년 진주교대 입학 할 때 내가 들어간 셰어하우스에 피아노를 가져갔습니다. 무거운 피아노를 아빠가 직접 갖다 주신 날이 기억납니다. 함께 생활하던 교대 선배가 피아노 위에 젖은 양말을 널어놓았을 때 나는 폭발했지요.


할부금을 겨우 갚았던 피아노는 교대 1학년 함께 살았던 동기들 음악실기 수업에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교대 1학년 때 피아노 실기 시험으로 학점을 주던 그 당시 학교 피아노 연습실에는 연습할 자리가 없었습니다. 밤이고 낮이고 학점을 위해 연습하던 동기들이 늘 줄 서 있었습니다.

나와 함께 살던 친구들은 제 피아노로 연습했지요. 엄마의 피아노로.


김해로 발령을 받았습니다. 첫 출근 일주일을 앞두고 신규발령이 나서 마음이 급했습니다. 출근할 학교 근처로 원룸을 구한 다음 피아노사를 섭외했습니다. 처음 돈을 내고 피아노 이사를 했습니다. 20여만원을 주고 피아노를 진주에서 김해로 가져왔습니다. 처음 조율사도 불렀습니다. 조율사가 피아노를 열어보는 순간 피아노 안에 쥐똥이 가득했습니다. 아마도 중고등학교 때 쥐가 숨어 다녔던 공간이었나 봅니다. 수리가 필요했지요. 첫 월급도 받기 전에 목돈을 썼습니다. 어쩌면 전자피아노 한 대 사도 될만한 돈이었지요.


첫 아이 희수를 임신했을 때 개척교회에 등록했습니다. 개척교회에 피아노도 반주자도 없었습니다. 저는 목사님께 피아노를 당분간 빌려드리겠다고 했습니다. 헌물이 아니었습니다. 목사님도 그 부분은 잘 알고 있었지요. 엄마에게 허락받지 않고 진행했던 피아노 빌려주기는 몇 달만에 끝이 났습니다. 엄마께서 크게 화내셨습니다. 피아노 장만 때부터의 스토리를 다시 들었습니다. 엄마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했습니다.


2019년 이사를 할 때 피아노 위치부터 확보했습니다. 오랜만에 조율사를 불렀지요.

"피아노 상태가 좋습니다. 소리도 좋아요.

그런데 뒤판에 금이 가있습니다."

"햇빛을 받지 않도록 주의해야겠네요."

햇빛 때문이라고 조율사는 말했지만. 발령받은 후 15년 동안 좁은 집에서 생활하다 보니 피아노 위에 항상 책을 높이 올려두었었기 때문인 것 같았습니다. 좀 더 넓은 공간으로 이사한 것이 다행이었지요.


지금 큰 딸이 내 옆에서 피아노를 칩니다. 딸은 일곱 살부터 피아노를 배웠다가 코로나로 아쉽게 학원을 그만두었지요. 아이는 피아노를 시원하게 그만두었지만 저는 아쉬움이 컸습니다. 갑자기 피아노를 쳐보겠다는 아이를 위해 전자피아노를 사야 하나 생각이 듭니다. 전자피아노를 사면 사춘기 아이가 내 옆에 와서 피아노를 치기나 할까...

수요일 낮 어린이날! 아빠 학생이 없어서 마음 편히 피아노 치는 큰 딸을 보며 피아노에 대한 애착이 누구보다도 많았던 친정엄마를 생각합니다. 엄마께 큰 손녀 피아노 치는 동영상이라도 보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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