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내딸

왕초보 주제 글쓰기 19

by 친절한백쌤

"엄마 치마 지퍼 올려줘."
책 쓰기 수업 듣고 있는데 내방으로 온다. 지퍼를 올려주니 좋은 가보다.
"엄마 나 공주 같지?"
"응, 희윤이 공주 맞네."
잘 때 입었던 내복 위에 원피스.

원피스는 지난 수요일 동료 선생님이 집 앞까지 갖다 주었다. 선생님은 같은 학교 근무하면서 나보다 두 달 먼저 출산했다. 아이가 원피스를 좋아하고 키도 크다. 몇 년 동안 선생님에게 옷을 받아 입힌다.
자주 얻어 입힌다. 그렇다고 해서 아이들에게 미안해해 본 적이 없다.

세 번째 학교로 이동하면 셋째를 가져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6학년을 받았다. 셋째 가지는 것은 보류했다. 그다음 해 5학년을 맡았다. 그 사이 첫째와 둘째가 많이 컸다. 육아에서 어느 정도 벗어나 자유로운 내 삶이 좋았다. 셋째를 가지겠단 마음을 접었다. 플루트를 배우기 위해 문화센터에 등록했다. 음악 전공을 못한 것이 아쉬워서다. 플루트를 배우던 그해에는 수업 부분에서도 성과가 있었다. 지도안 쓰기 대회에서 5등을 한 것. 본선엔 가지 못했지만 표창장 한 장에 내 일에 자신감도 가졌다.
연구부장 제의가 들어왔다. 어른들께 인정받았다는 기쁨 때문에 학교 일에 욕심을 냈다. 연구부장 하는 김에 승진하는 방법도 알아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갈수록 퇴근 시간이 늦어졌다. 아이 둘 챙기는 것도 벅찼다. 셋째라는 단어를 머릿속에서 지웠다.
연구부장 이후 독서 부장을 했다. 다른 학교엔 없는 자리다. 독서 부장 타이틀도 욕심이 났다. 사서교사 없는 도서관에 사서교사처럼 일했다. 토요일에도 가끔 도서관을 지켰다. 교장선생님께서 한번 더 해달라고 하셨다. 일을 찾아서 해주는 백 부장이 고맙다고 하셨다. 리모델링을 한 직후였기에 후속 작업도 내가 마무리하는 것이 낫다고 생각해서 미리 수락했다. 독서 부장 때문에 큰 딸이 있는 초등학교로 이동하지 않았다.

셋째 예상치 못했다. 2월 학교 안에서 한참 학년과 업무를 배정하는 시기인데 임신 여부를 확실히 알아야 했다. 임신이라면 독서 부장 못한다 해야 하는데 설마 그럴 리가. 아니겠지. 피검해볼까?
"피검 수치를 보니 임신입니다."

셋째를 가지면서 욕심내던 학교 일을 내려놓았다. 과장될 수도 있지만 가정으로 돌아왔다고 해야 할까? 셋째를 낳고 아이 셋을 돌보면서 플루트도, 승진도, 학교에서의 성과도 모두 내려놓았다. 학교 선택은 가까운 곳으로 가야 했고 퇴근 후에는 집으로 직행이다. 어딜 배우러 다니는 것은 있을 수 없었다.
2006년부터 육아가 시작되었는데 2016년 다시 육아 시작. 셋째의 하원 차가 오는 시간에 무조건 내가 챙겨야 했다. 입원이라도 하면 병원에서 출근하는 등. 머리가 텅 비었다. 생각할 겨를도 없었다. 하루하루 버틸 뿐.

어느 날 송별회에 뒤늦게 참여해 허겁지겁 고기를 먹고 있을 때 선배가 한마디 했다.
"란현이는 무슨 낙으로 사노?"
"하루살이지요. 매번 빨리 커라, 빨리 커라 주문 외우고 있습니다."
교직 삶의 방향을 틀게 만든 셋째다.
'셋째 낳아 준 것이 어딘데?' 하는 생각으로 그동안 버티고 키웠다. 그래서 얻어 입혀도 미안한 마음 전혀 없었다.

오늘 아침 얻은 옷을 입고 '나 예쁘지'라고 말하는 막내를 천천히 바라본다.

'원피스를 새 걸로 하나 사줘야 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