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숲에 머무는 생각들
서쪽숲에 집을 지은 뒤로, 나의 하루는 이전보다 느려졌습니다. 정확히 말하면, 느려졌다기보다 생각이 따라붙을 수 있는 속도로 걸음을 옮기게 되었습니다. 독일의 숲은 말을 걸지 않지만, 대신 질문을 남깁니다. 오늘은 어떤 마음으로 이 길을 건널 것인지, 무엇을 지나치고 무엇을 붙잡을 것인지. 나는 그 질문들 사이에서 아이를 키우고, 흙을 만지고, 글을 씁니다.
다정한 독일인 남편과 함께 살고 있습니다. 다정하고, 필요할 때 정확한 온도로 손을 내미는 사람입니다. 우리는 하루의 끝에서 대화를 시작했다가, 종종 밤을 넘깁니다. 아이 이야기에서 시작해 전혀 다른 곳에 도착하기도 하고, 도착하지 못한 채로 잠이 들기도 합니다. 나는 모국어가 아닌 독일어로 그와 이야기하지만, 언어의 한계를 넘어서는 이해가 있다는 것을 이 관계 안에서 처음 알게 되었습니다. 단어를 고르며 천천히 말하는 시간 속에서, 우리는 서로를 오래 바라보게 됩니다. 우리는 부부이기 전에 서로의 가장 가까운 친구에 가깝고, 함께 말하고 웃을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 많은 날들을 건너옵니다. 이 숲에서 좋은 짝꿍을 만났다는 사실을 자주, 조용히 되새깁니다.
두 아이를 키우고 있습니다. 아이들은 숲을 놀이터 삼아 자라고, 집 안을 이야기로 채웁니다. 이 집에서는 말이 자주 오갑니다. 질문은 대답으로 끝나지 않고, 또 다른 이야기로 이어집니다. 아이의 말속에는 아직 정리되지 않은 세계관이 있고, 나는 그 미완의 문장들을 함부로 다듬고 싶지 않아 그것들이 서두르지 않고 자리를 찾기를 기다립니다. 그래서 우리는 많이 이야기하고, 그만큼 많이 돌아옵니다.
나는 조각가입니다. 평생 흙을 만지며 나 자신을 정리해 왔고, 오래 생각하는 방식으로 살아왔습니다. 조각은 내게 결과보다 과정에 가까운 작업입니다. 형태는 늘 생각보다 늦게 도착했고, 그 기다림 속에서 나는 이 감정은 어디에서 왔는지, 이 형태는 무엇을 닮아가고 있는지 생각하며 많은 질문을 남겨두었습니다. 작업실은 언제나 나의 생각이 머물던 자리였습니다.
서쪽숲에서의 삶은 특별하지 않습니다. 나의 하루는 아이의 잠과 깨는 시간에 맞춰 흘러갑니다. 그럼에도 이 숲이 주는 적막은 우울하지 않습니다. 해야 할 일을 재촉하지 않는 고요, 멈춰 있어도 다그치지 않는 침묵이 이곳에는 있습니다. 나는 이 평범함 속에서 자주 멈춥니다. 왜 이 장면이 마음에 남는지, 왜 이 말이 쉽게 지나가지 않는지. 그 멈춤이 쌓여 나의 글이 되고, 나의 작업이 됩니다. 이 조용한 시간은 멈춤이 아니라, 다음 움직임을 준비하는 시간이라는 것을 이제는 압니다.
이곳의 글은 그런 생각들의 임시 거처입니다. 급히 정리되지 않은 문장들, 결론 없이 끝나는 단락들, 아이의 말 한마디에서 시작된 사유들이 이곳에 쌓입니다. 나는 빠르게 소비되는 글보다, 천천히 읽히는 글을 좋아합니다. 당장 쓸모를 증명하지 않아도 되는 문장, 읽고 나서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도 괜찮은 기록. 나 역시 그런 글들을 읽으며 살아왔고, 이제는 그 자리에 조심스럽게 나의 문장을 올려두고 싶습니다.
이곳에 남긴 글들이 누군가에게는 작은 숨 고르기가 되기를 바랍니다. 서쪽숲에서, 생각이 많은 조각가로, 두 아이의 엄마로 살아가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