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과 마음이 어긋날 때

할아버지의 말은 어디에서 왔을까

by 미동

독일에 와서 둘째의 돌이 지나갔고, 크리스마스가 가까워질 무렵 한국에서 선물 상자가 도착했다. 부모님이, 그러니까 아이들에게는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돌과 생일을 함께 염두에 두고 보낸 것들이었다. 해외로 선물을 보낸다는 일이 얼마나 많은 품이 드는지 나는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에, 상자를 열기 전부터 마음이 먼저 조용해졌다. 고맙다거나 미안하다는 말, 어느 쪽으로 불러야 할지 모르는 마음이 같은 방향에서 올라와 그대로 남았다. 아이와 함께 상자를 열었고, 커다란 박스에 가득 눌러 담긴 그리움과 애정이 눈에 보였다. 다음에 전화가 왔을 때 우리는 고맙다고, 영원히 충분하지 않을 감정을 전했다. 전화기 너머의 목소리와 이곳의 생활은 그렇게 최소한의 말로 연결되어 있었다.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문득 아이가 말했다. 할아버지는 거짓말쟁이라고. 너무 예고 없이 나온 말이라 나는 잠시 아이를 바라보았다. 이유를 묻자 자기는 할아버지를 보고 싶은데, 할아버지는 자기를 안 보고 싶다고 했다는 것이다. 자기를 당연히 보고 싶어 할 거라며 할아버지의 마음을 단정하고 거짓말쟁이라는 말을 하는 그 속상함 앞에서 나는 마음이 조금 느슨해졌다. 많은 사랑을 받은 아이. 아무튼 아이의 말에는 분노나 비난보다, 어긋난 감각에 대한 당혹이 더 가까워 보였다. 말과 마음이 같은 방향을 가리키지 않을 때 생기는 불편함을, 아이는 아직 설명할 언어를 충분히 갖고 있지 않았다. 대신 가장 짧은 말로 그 차이를 표시했을 뿐이다. 나는 그 단정이 뜻밖이어서, 잠시 말을 고르지 못했다.


아버지는 늘 짓궂은 장난을 좋아하셨다. 아이도 그 사실을 알고 있기에, 나는 분명히 할아버지가 장난으로 한 말이라고 이야기했지만 아이는 장난이어도 진심이 아니라면 거짓말이라고 했다. 그 말에는 따지려는 태도보다, 기준을 찾지 못한 사람의 질문에 가까운 망설임이 있었다. 아이는 옳고 그름을 가르쳐 달라고 요구한 것이 아니라, 자기 마음을 어디에 두어야 하는지 묻고 있었던 것 같다. 보고 싶은 마음이 닿지 않았다고 느낀 순간, 아이의 말은 그렇게 직선적으로 나왔다.


그래서 나는 말을 조금 더 보탰다. 사람은 누구나 말을 잘못할 수 있고, 행동도 어긋날 수 있다고. 너도 가끔 나의 마음을 다치게 하고, 나도 너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할 때가 있다고. 중요한 건 그 사실을 알아차리고 다시 돌아오는 일이라고. 한 번의 말이나 행동이 그 사람 전부를 말해주지는 않는다는 이야기를, 설명이라기보다는 우리가 함께 살아오며 이미 겪어온 일들에 기대어 건넸다. 멀리 있는 할아버지의 말도, 아이에게 닿는 과정에서 다른 모양이 될 수 있다는 점을 함께 건너가고 싶었다.


아이에게 이 말이 얼마나 닿았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그 뒤로 아이는 거짓말쟁이라는 말을 다시 꺼내지 않았다. 그저 정말 이상한 장난꾸러기라는 말만 되풀이했다. 판단에서 푸념 섞인 이해로 옮겨간 순간, 말의 표면보다 그 아래 놓인 마음을 읽는 아이를 보았다.


아이를 키우며 자주 느끼는 건, 아이들은 사람을 단순하게 보지 않는다는 점이다. 오히려 어른보다 더 민감하게 관계의 온도를 느끼고, 말과 마음이 어긋나는 순간을 정확히 알아차린다. 다만 그 차이를 다루는 언어가 아직 짧고 곧을 뿐이다. 한국에 계신 부모님과 나 사이에는 거리와 시간이 있다. 전화로 이어지는 관계, 짧은 대화 속의 농담과 장난은 이곳에서 다른 무게로 도착해 아이에게 닿기도 하지만 매번 그것을 정정하려 드는 게 최선이 아님을 안다. 관계는 설명으로 유지되기보다, 이해하려는 태도를 통해 조정된다고 믿는다. 때문에 나는 아이 곁에서 그 말이 어떻게 들렸는지, 어떤 마음을 남겼는지를 함께 살펴보는 쪽을 택한다. 누군가의 말을 곧바로 옳고 그름으로 나누기보다, 그 말이 나올 수밖에 없었던 마음의 자리를 한 번 더 들여다보는 일이 더 중요하다고 믿는다.


아이에게 사람들이 완벽하지 않다는 걸, 그럼에도 관계는 쉽게 무너지지는 않는다는 걸 천천히 알게 해주고 싶다. 실수는 누구나 하고, 말은 때로 마음을 앞서 가지만, 그다음이 관계를 만들어낸다는 사실을. 아이가 사람을 너무 이르게 규정하지 않도록, 대신 질문을 남겨두는 쪽을 선택할 수 있도록 곁에 서 있는 일이 지금의 역할일 것이다. 선물 상자를 열던 날의 감정과, 할아버지를 거짓말쟁이라고 말하던 날의 감정은 아이 안에서 이어져 있었을 것이다. 보고 싶은 마음이 클수록 벗어난 말은 더 날카로운 형태를 띠게 된다. 아이는 그 마음을 숨기지 않았고, 나는 그 말을 서둘러 닫지 않으려 했다.


그날 이후 아이는 다시 할아버지와 통화를 했다. 아이의 '할아버지가 보고 싶으니 독일에 오라'는 말에 아버지는 '독일에 오면 아이의 침대를 뺏어서 주무시겠다'라고 하셨고 아이는 '그럼 할아버지는 독일에 왔지만 한국에서 자야겠다'라고 웃으며 말했다. 거짓말쟁이라는 말은 사라지고, 보고 싶다는 말만 남았다. 말이 먼저 나가고, 마음이 뒤따라와 제자리를 찾는 방식으로 관계는 그렇게 다시 조정된다. 나는 그 과정을 판단하지 않고 지켜보았다. 그 정도면, 지금으로서는 충분하다. 아이는 또 한 번 사람을 이해하는 방식을 배웠고, 나는 그 과정이 단정이 아닌, 여백 쪽으로 흘러가도록 조용히 곁에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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