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말하는 아이를 아이로 두는 일

아이를 앞당기지 않기 위하여

by 미동

만 나이로 네 살. 첫째가 한국나이로 여섯 살이 되었다. 여전히 어린 아이이지만, 아이의 언어가 자라면서 우리는 어느새 많은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하루 동안 내게 있었던 일, 우리에게 있었던 일, 내가 어떤 행동을 했고 왜 그랬는지, 그때는 아직 말이 되지 못했던 생각들까지. 아이가 잠들기 전, 아이의 머리칼을 쓰다듬으며 말을 건네는 시간은 하루의 끝이라기보다, 낮 동안 쌓였던 생각들을 물아래로 가라앉히는 일에 가깝다. 아이의 숨이 고르게 고여 들면 말은 스스로 속도를 늦추고, 남은 문장들은 더 깊은 층위로 내려간다. 어느 날 아이는 특이하게도 엄마에게도 슬펐던 기억이 있느냐고 물었다. 호기심에서 삐져나왔을 질문은 얕았지만, 내게 울린 파장은 깊었나 보다. 나는 잠시 말을 고르다, 문득 떠오른 하나의 오래 접어두었던 장면을 꺼냈다.


내게는 연년생 동생이 있다. 아직 말도 못 하던 아기였던 내 동생이, 내가 몇 해를 함께 지내며 품고 다니던 거북이 인형을 자기 것이라 우겼다. 그 인형은 장난감이 아니라, 어린 내가 세상과 연결되어 있다는 매듭 같은 것이었다. 밤과 낮을 구분하던 기준이었고, 혼자 있는 시간을 견디게 해 주던 무게였다. 그게 자기 거라며 우는 아기에게 엄마는 똑같은 인형을 사주었지만 아기는 낡고 늘어진 내 인형을 원했다. 모두가 언니인 내가 양보해야 한다고 말했고 그 말은 이치에 맞았다. 난 동생에게 내 인형을 주었다. 집에는 인형이 많았고 어른들은 잊었을 작은 일이 삼십 년도 넘은 시간을 넘어 다시 내게 밀려왔다. 인형 하나를 내준 일이 아니라, 내 감정이 설 자리가 함께 접히는 느낌이었는지 그날의 슬픔은 소란스럽지 않았지만, 한 번 생긴 금처럼 오래 남았다가 그날밤에야 붕 떠올랐다.


그 이야기를 아이에게 담담히 들려주었다. 의미를 설명하지도, 교훈을 붙이지도 않은 채 그저 그런 일이 있었다고 말했다. 그런데 다음 날 아이는 나와 동생의 통화 중에 끼어들어 이모는 왜 엄마의 인형을 뺏었느냐고, 그러면 안 되는 일이라고, 자신의 해적칼로 혼내주겠다고 했다. 그 말을 듣자마자 나는 당황해 잠시 크게 웃었고, 동생은 그 어린애에게 별 얘길 다 한다며 멋쩍어했다. 그리고 곧 나의 웃음은 가라앉았다. 아이는 나의 감정을 자기 안으로 옮겨 심고 엄마의 이유가 있는 슬픔은 자기가 바로잡아야 한다는 판단이 그 안에 있었다. 물론 해적칼은 공격이 아니라, 아이가 가진 가장 분명한 기준이었다. 하지만 엄마가 슬픔을 끄집어낼 땐 그저 말이 통하는 아들이었는데 해적칼로 엄마의 슬픔을 보듬고 있는 아이는 여전히 네 살이었다.


어제는 아이들과 카페에 갔다. 둘째를 안고 있던 나는 첫째를 도와줄 수 없는 상태였고, 아이는 주문한 음료수를 스스로 열어본다며 안간힘을 쓰다가 힘 조절을 잘못해 내게 후추가 쏟아지며 범벅이 되었다. 테이블과 옷 위에 흩어진 후추는 한순간에 풍경을 바꾸었다. 나는 그 알갱이들을 치우며 잠깐 숨이 막히고 버거웠다. 사실은 별다른 일은 아니었지만, 편히 커피 한 잔 먹을 수 없는 현실이 갑자기 서러워서 눈물이 왈칵 났다. 하지만 아이는 그런 내 모습을 보면서도 자신의 음식이 아직 먹을 수 있는 상태가 아니라는 사실에 마음이 급해 계속 보챘다. 내가 하는 이야기를 다 이해할 것 같던 그 아이는 아직도 자기 앞의 일 하나로도 세상이 꽉 차는 네 살일 뿐이었다. 아이에게 그 미해결은 작은 불씨가 아니라, 전부를 밝히는 불빛이었다.


아이는 말을 잘한다. 그래서 나는 종종 그 사실에 기대어 현실을 놓친다. 언어가 또렷하니 이해도 그만큼 자랐을 거라 믿고, 감당할 힘까지 함께 생겼으리라 착각한다. 문득, 내 어린 시절이 겹쳐진다. 어른스럽다는 말을 들으며 자랐고, 그 말이 나를 칭찬하는 동시에 조용히 밀어냈다. 그 말은 더 이상 미숙하면 안 된다는 경고이자 감정을 접고 상황을 먼저 읽으라는 신호였다. 나는 큰 소리 없이 자랐지만, 말해지지 않은 감정들은 마음의 바닥에 퇴적층처럼 쌓였다.


그래서 요즘 나는 자주 속도를 낮춘다. 아이의 언어가 앞서 달릴 때마다, 마음은 아직 뒤에서 숨을 고르고 있다는 사실을 떠올린다. 말은 길을 먼저 내지만, 감정은 그 길을 건널 체력을 나중에 마련한다. 아이에게 필요한 것은 앞당겨진 이해가 아니라, 이해하지 않아도 안전한 시간이다. 내가 해야 할 일은 아이를 끌어올리는 것이 아니라, 아이가 서 있는 자리의 지면을 단단히 다지는 일이다.


나는 분명 또 잊을 것이다. 피로가 쌓이면 아이를 조금 더 큰 사람처럼 대할 것이고, 말이 통한다는 이유로 짐을 얹을 것이다. 하지만 그때마다 이렇게 멈춰 설 수 있다면, 다시 자리를 고를 수 있다면, 그걸로 충분하다고 믿는다. 완벽하게 균형 잡힌 엄마가 아니라, 기울어졌다는 사실을 알아차리는 사람으로 남는 것. 아이의 말이 멀리 나아갈수록, 그 뒤에 남아 있는 말 없는 마음을 함께 바라보는 것. 오늘도 나는 아이와 나 사이의 간격을 잰다. 너무 당기지도, 너무 앞서지도 않게. 아이가 아이의 속도로 걸을 수 있도록, 서늘한 그늘 하나를 남겨둔 채, 조용히 곁에 서서.

수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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