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치라는 말을 가르치지 않으면서 전하는 법
아이가 이모가 보고 싶다며 미국에 가자고 조르던 날이 있었다. 해외를 간다는 것은 마음만 먹으면 바로 떠날 수 있는 종류의 일이 아니며, 비싼 비행기 티켓값과 긴 이동 시간 등 별도의 준비가 필요한 큰 결정이라는 것을 아이에게 들려주었고, 아이는 잠시 듣더니 “그러면 나중에 가자”라고 곧 단념했다. 나는 아마도 아이가 나의 설명을 ‘허락’으로 듣지 않고 ‘구조’로 받아들였기 때문이었을 것이라 생각했다.
어떤 시기의 아이들은 말을 통해서가 아니라, 질문에 이미 내포된 아이의 판단을 통해 성장의 방향을 드러내는 것 같다. 아이와 함께 밖에 나가 시간을 보낼 때 어느 순간부터 질문이 조금 달라졌다는 걸 느꼈다. 예전에는 “이거 사줘, 이거 사면 왜 안돼?”라고 물으며 욕구의 크기를 먼저 드러냈다면, 요즘은 “그건 비싸?”라고 직접적으로 묻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이 변화는 큰 의미를 부여할 만큼 거창한 것은 아니지만, 아이의 세계가 조금씩 구조를 가지기 시작했다는 작은 신호처럼 느껴졌다. 아이가 이해력이 높은 편이라 무언가 사고 싶어 할 때 내가 늘어놓는 사지 않아야 하는 이유를 들으면 서운하지만 그래도 끝엔 고개를 끄덕이고 납득이 되면 비교적 잘 단념했다. 우리가 가진 돈은 한정되어 있고, 모든 물건을 다 살 수는 없으며, 꼭 필요하지 않은 것이라면 조금 미뤄두는 선택도 있다는 이야기를 건네면 아이는 곧잘 이해하는 듯했다. 불필요한 에너지 소모를 피할 수 있어서 다행이라 여기며 나는 아이가 원하는 것을 들어주지 않아야 할 때 가능하면 설명하는 방식을 택해왔다.
그 무렵부터 아이는 집에 있는 물건들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상상을 하다가 문득 스스로 무언가에 제지된 듯 “엄마, 이건 비싸?”라고 묻기 시작했던 것 같다. 처음엔 물건과 경험의 가치를 돈으로 환산하기 시작했나 싶어 내가 이전에 선택했던 대답들을 되뇌고 곱씹어야 할 정도로 불편한 감정이 들었지만 아이가 배우고 있는 것은 돈의 개념뿐만 아니라 ‘가치가 반영된 선택의 기준’이라는 것을 금세 알 수 있었다. 자신의 물건과 타인의 물건을 왜 소중히 여겨야 하는지, 돈을 많이 내고도 바꿀 수 없는 것들이 있다는 것이라든지. 어떤 것을 가질 수 있는지 없는지를 가격으로 묻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무엇을 언제 선택하는지 그 방식 자체를 읽어보려는 작은 시도처럼 보였다. 그래서 나는 요즘 아이가 가격을 물으면 조금 더 천천히 대답하려 한다. “응, 그건 비싸.” 그리고 곧바로 말을 잇는다. “비싸도 우리의 삶에 꼭 필요한 건 사야 해. 그러기 위해 엄마와 아빠가 열심히 일하는 거야.” “이건 비싼 건 아니지만 엄마한테 의미가 크니 네가 이 물건을 소중히 대해주었으면 좋겠어.” 아이에게 화폐적 가치가 보편적인 기준이라는 미세한 오해를 만들어주기보다는, 사람의 판단과 선택이라는 고유한 기준을 자연스럽게 느끼게 하고 싶어서다.
나는 아이가 돈을 걱정하는 어른의 언어를 흡수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아이는 세상이 돌아가는 방식을 나름의 언어로 번역하는 중이고, 그 번역에는 아직 수많은 틈과 여백이 있어 그 틈을 채우는 것이 바로 어른의 설명이라 생각한다. 아이는 아직 ‘비싸다’는 말의 무게를 모른다. 아이가 묻는 것은 언제나 단순하다. 내가 실수로 이걸 망가뜨렸을 때 엄마가 얼마나 슬퍼할 거야?" “이건 얼마나 오래된 물건이야? 처음에 살 때 비쌌어?” “이 부분이 이상해졌는데 왜 새로 사지 않아?” "이건 비싸지 않은데 왜 사주지 않아?" 가치를 담고 있는 수많은 질문의 바탕에는 세상을 이해하고 싶어 하는 작은 탐색의 기운이 있다. 그렇기에 나는 아이의 질문을 너무 서둘러 걱정으로 바꾸지 않기로 했다. 아이는 자기 방식대로 자라고 있고, 질문은 그 자람의 흔적일 뿐이다. 아이의 세계에서 ‘비싸다’는 말은 여전히 어떤 경계의 이름일 텐데, 그 경계를 어떻게 넘나들어도 괜찮다는 것, 어떤 선택은 금방 사라지고 어떤 선택은 오래 남는다는 것, 인생의 많은 것들은 가격보다 우리가 그것을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달려 있다는 것을 나는 천천히, 말의 방향으로 보여주고 싶다.
결국 중요한 것은 아이가 무엇을 사느냐가 아니라 무엇을 배워가느냐다. 아이가 던지는 질문은 삶을 계산하려는 시도가 아니라 세상을 이해하려는 방식일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내가 할 일은 가격으로 대답을 끝내지 않고 가치로 닫아주는 어른으로 그 옆에 서 있는 일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