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대답이 아직 완성되지 않은 질문들
오늘은 해가 잘 들지 않을 정도로 안개가 뿌옇게 짙은 전형적인 겨울날이었다. 아이가 간식을 먹다 말고 갑자기 물었다.
“엄마도 아주 아주 나중엔 할머니가 되고 죽어?”
말이 끝나자마자 입꼬리가 쑥 내려가더니 눈가가 금세 촉촉해졌다. 조금은 황당했고, 그래서 더 당황스러웠다. 하지만 아이의 짧은 질문은 금세 내 마음 깊숙한 곳을 건드렸다. 내가 낳아 길러온 이 작은 존재가, 아직 충분히 해석할 수 없는 세계를 더듬으며 자기 속도대로 엄마를 붙잡고 있는 모습. 그 정서가 방 안에 천천히 번져갔다.
나는 잠시 멈춰 섰다. 이 질문 앞에서 어느 엄마가 즉시 대답할 수 있을까. 아이가 엄마를 잃는다는 상상을 했을 때 마주했을 그 막막한 공기를 떠올리며, 나는 급히 말했다. “엄마는 안 죽어. 우리는 내일도, 그다음 날도, 백일, 천일, 만일 뒤에도 계속 함께 지낼 거야.”
그러자 아이가 작은 목소리로 덧붙였다. “시간이 많이 지나고 나면 하느님이 데려가실 수도 있잖아.”
만 네 살 아이에게 죽음은 철학도 신학도 아니다. 아주 단순하고, 그래서 더 큰 두려움. 곧바로 ‘엄마가 없어지는 일’로 다가오는 감정이다. 아이의 표정은 마치 기도하듯 고요했다. 그 얼굴을 보며 나는 생각했다. 아이는 지금 죽음을 묻고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랑의 무게를 확인하고 있는 것일지 모른다고.
그래서 아이의 두려움을 부정하지 않기로 했다.
“엄마랑 헤어지게 될까 봐 속상한가 보구나. 엄마를 많이 사랑하니까 그런 생각이 들었나 봐. 엄마를 많이 사랑해 주고 걱정해 주고 그렇게 말해줘서 고마워.
아이의 어깨가 조금 내려앉았다. 나는 아이의 말을 받아들인 자리에서, 천천히 의미를 부드럽게 바꾸어 돌려주었다. “하느님은 우리를 갑자기 데려가는 분이 아니야. 우리가 건강하고 행복하게 지낼 수 있도록 지켜보는 분이야. 엄마는 지금 건강하고, 너랑 오래오래 함께 살려고 잘 챙기고 있어.
우리는 내일도 같이 아침 먹고, 산책하고, 책 읽을 거야. 그런 날들이 아주 오래 이어질 거야.”
아이의 상상 속 하느님이 어떤 모습으로 바뀌었을까. 아이의 눈이 한 번 더 나를 바라보고, 작은 목소리가 다시 이어졌다.
“엄마가 꼭 건강했으면 좋겠다.”
그 말이 두려움을 조금 내려놓고 다시 아이의 크기로 돌아오는 것처럼 들렸다.
앞으로도 이런 순간들은 계속 찾아올 것이다. 겉으론 작은 질문이지만, 삶의 근본을 건드리는 말들. 그 앞에서 나는 완벽한 답을 내놓는 사람이기보다, 함께 머무르는 사람이 되고 싶다. 내일 아침 아이가 눈을 뜨면 또 나를 찾을 것이다. 그것만으로 이미 충분하다. 우리는 그렇게 오늘을 건너고, 내일을 맞이한다. 작고 조용한 반복 속에서 아이의 세계는 천천히, 그러나 단단하게 자라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