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의 울음이 지나간 자리

밤에 도착한 감정에 대하여

by 미동

어제는 하루종일 몸이 유난히 무거웠다. 밤에 잠을 깊게 자지 못한 탓인지 오후가 되자 소파에 앉아 있던 몸이 서서히 가라앉았다. 아이들이 주변에 있었고, 나는 그 소리에 둘러싸인 채 잠깐 눈을 붙였다. 완전히 잠든 것도 아니었는데, 갑자기 눈동자를 긁는 통증이 번쩍 올라왔다. 엄마와 놀고 싶던 둘째의 서툰 손놀림이 얼굴에 닿았나보다. 놀람이 먼저였고, 그다음에야 아픔이 따라왔다. “악.” 소리가 저절로 튀어나왔다. 내가 지른 소리에 나 스스로가 더 놀랄 정도였고 그 놀람이 방 안의 공기를 한순간 뒤집어놓았다.

그 다음 장면은 아주 빨리 벌어졌다. 그 소리를 들은 첫째가 곧바로 소리를 지르며 울기 시작했다. 얼굴이 일그러지고 금세 감정이 터져 나왔다. 소중한 엄마가 아프면 안 된다며, 앞으로 엄마 말을 잘 듣고 착하게 지낼 거라며, 숨이 찰 만큼 그렇게 아이가 할 수 있는 모든 약속을 한꺼번에 꺼내놓았다. 울음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고, 아이의 몸은 생각보다 크게 흔들렸다. 나는 아파서 잠시 정신을 못 차린 상태였지만 아이를 안고 등을 쓰다듬어야했다.

“엄마 괜찮아.”

그 말을 여러 번 반복했다. 말은 먼저 멈췄지만 아이의 울음은 한참 더 이어졌다. 큰 소리를 내며 우는 오빠의 모습에 둘째도 겁을 먹고 흐느껴 울기 시작했다. 잠시동안 정말 아수라장이었다.

아이의 반응이 낯설지는 않았다. 어떤 아이들은 세상의 변화를 늦게 느끼고, 어떤 아이들은 아주 빠르게 느낀다. 어떤 아이들은 감정 앞에서 천천히 움직이고, 어떤 아이들은 바로 무너지듯 쏟아낸다. 첫째는 늘 자신의 방식으로 신호와 감정을 빠르게 받아들이는 편이었다. 누군가의 상태가 달라지면 먼저 알아차리고, 그 변화를 자기 몸으로 받아내는 아이. 내가 아팠다는 사실보다, 내가 놀랐다는 사실, 평소와 다른 소리를 냈다는 사실이 아이에게는 더 크게 다가왔을 것이다. 아이는 상황을 이해하려 애쓰기보다, 그 순간의 불안을 온전히 끌어안고 있었다. 나를 지키고 싶은 마음이 아이 안에서 너무 크게 움직여 스스로도 감당하기 어려운 울음이 되어버린 듯했다.

울음 끝에 남아 있는 숨의 떨림까지 다 빠져나간 뒤에서야 아이는 조용히 내 품에 고개를 기대었다. 울음이 잦아든 뒤에도 아이는 한동안 내 곁을 떠나지 않았다. 내 얼굴을 몇 번이나 확인하고서야 조금씩 숨을 고르며 자리에 앉았다. 그 모습을 보며 나는 문득 아이가 세상을 배우는 방식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아이에게 세계는 아직 설명으로 이해되는 곳이 아니라, 관계의 변화를 통해 감각적으로 느끼는 공간일 것이다. 누군가 아프거나, 흔들리거나, 평소와 다를 때 아이는 그 변화를 곧바로 받아들이고, 자기 나름의 방식으로 질서를 회복하려 한다. 첫째가 내게 쏟아냈던 약속들은 착해지겠다는 선언이라기보다, 이 세계를 다시 안전한 자리로 돌려놓기 위한 아이의 시도처럼 보였다.

시간이 조금 지나고 나서야 나는 생각했다. 좀 처럼 크게 동요되지 않는 엄마의 고통의 표현이 아이에게 생각보다 강력하게 닿았나보다, 라고. 아이는 엄마가 아프다는 사실보다, 엄마라는 존재가 갑자기 흔들렸다는 사실에 더 크게 반응했을 것이다. 그래서 울었고, 그래서 자기가 할 수 있는 말들을 다 꺼내놓았을 것이다. 아이에게는 아직 세상과 자신을 분리해서 생각하는 기술이 충분하지 않다. 사랑하는 사람의 상태는 곧 자기 세계의 상태가 된다. 아이의 공감은 어른의 것과 다르게 아주 빠르게 움직이고, 아주 깊이 흔들리고, 그러다 어느 순간 자연스럽게 제자리를 찾아간다. 오늘의 울음도 그 과정의 한 조각이리라.

이런 장면을 겪고 나면 나는 부모로서의 나를 다시 보게 된다. 내가 아픈 것보다, 아이가 그것을 어떻게 느끼는지가 더 오래 마음에 남는 순간들. 아이를 보호하는 사람이면서 동시에, 아이에게 가장 큰 영향을 주는 환경이라는 사실. 내가 무너지지 않으려 애쓰는 이유도, 아픔을 숨기기보다는 다시 일어서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은 이유도 결국 그 때문이다. 아이는 내가 무엇을 말하는지보다, 내가 어떤 상태로 다시 자리에 앉는지를 더 오래 기억할 것이다.

어제의 일은 금세 지나갔다. 소파 위에서 잠깐 벌어진 작은 소동이었고, 아이들은 다시 각자의 놀이로 돌아갔다. 하지만 그 짧은 순간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아이가 보여준 울음과 약속, 그리고 나를 놓지 않던 손의 온기는 오래 남아 생각을 불러온다. 아이는 이미 타인의 상태에 반응할 줄 아는 사람이 되어가고 있고, 나는 그 과정을 가까이에서 지켜보고 있다. 이건 자랑이라기보다 책임에 가깝다. 아이의 세계가 이렇게 열려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이상, 나는 조금 더 조심스럽게 살아가야 할 것이다. 내 몸과 마음을 돌보는 일이 나 하나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아이는 이미 알고 있으니까. 아마 앞으로도 이런 순간들은 반복될 것이다. 아이가 동요하고, 내가 동요되고, 서로의 상태를 확인하며 다시 자리를 잡는 일들. 그 과정에서 아이는 세상이 늘 안전하지는 않지만, 다시 안정으로 돌아올 수 있다는 사실을 배우게 될 것이다. 그리고 나는 그 배움의 현장에 조용히 서 있는 사람이 될 것이다. 어제의 울음은 그렇게 지나갔고, 그 울음이 지나간 자리에는 아이가 세상을 감당해 나갈 또 하나의 감각이 남았을 것이라 믿는다. 그 감각이 너무 무겁지 않기를, 그러나 충분히 단단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나는 오늘도 아이의 얼굴을 오래 바라본다.

수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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