되돌릴 수 없음을 처음 만났을 때
아이는 새벽에 잠에서 깨어 울었다. 꿈에서 이어진 울음인지, 꿈이 끝난 뒤에야 비로소 시작된 울음인지는 알 수 없었다. 다만 눈을 뜬 순간, 아이의 몸에는 이미 감정이 가득 차 먼저 몸 밖으로 쏟아진 듯했다. 아이는 엉엉 울면서 계속 미안하다고 말했다. 말은 숨보다 빨랐고, 울음은 이유를 기다리지 않았다.
울음 섞인 아이의 말을 알아듣기까지 꽤 시간이 걸렸다. 너무 미안해, 내가 너무 미안해. 뭐가 미안한데 이렇게 울어. 삼켜지지 않는 울음 사이에 사진 이야기가 뒤따랐다. 소중한 사진을 자기가 지웠다는 말, 영원히 다시는 찍을 수 없다는 말, 그리고 왜 자기는 글씨를 못 읽는지 모르겠다는 말이 한꺼번에 흘러나왔다. 하나의 문장이 아니라, 잘못, 상실, 분노, 부끄러움 같은 것들이 분리되지 않은 여러 개의 감정이 같은 자리를 차지한 채 엉켜 있었다. 아이는 그것을 풀어 설명하지 않았고, 그럴 힘도 없어 보였다.
그제야 나는 아이의 말을 이해할 수 있었다. 꿈이 아니라 실제로 낮에 있었던 일에 대한 복기였다. 낮의 모습은 단순했다. 아이는 요새 얼마 전 아기예수가 놓고 간 선물인 작은 카메라를 한없이 만지며 시간을 보낸다. 그러다가 동생의 사진을 찍었고, 그 사진이 참 예뻤다. 움직임이 많은 아기의 순간을 참 잘 포착했다고, 쉽지 않았을 텐데 대단하다고 칭찬을 했더니, 아이가 정말 기뻐했다. 살짝 고무된 마음이 다른 사진들도 자랑하고 싶어 했고, 거기서 실수가 있었고, 삭제가 일어났다. 잠깐 사이의 일, 그리고 되돌릴 수 없는 일. 사진이 정말 예뻤기에 그 아쉬움이 잎 밖으로 살짝 새어 나왔다. 그뿐이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이 일이 아이 안에서 그렇게 깊게 내려앉고 있는 줄은 몰랐다. 아이의 마음은 잠이 든 이후에도 그 장면에서 빠져나오지 못했나 보다. 어떤 일은 끝났다고 해서 바로 과거가 되지 않는다. 특히 아이에게는 그렇다. 아이의 시간은 어른의 시간과 다르게 흐른다. 지나간 일은 잠시 몸속에 머물다가, 가장 조용한 순간에 다시 모습을 드러낸다.
아이에게 그 사진은 단순한 기록이나 결과물이 아닌, 어떤 상태였던 것 같다. 동생을 바라보던 마음, 잘 해냈다는 느낌, 사랑을 건네고 있었다는 감각, 엄마에게 인정받고 있다는 확신 같은 것들이 한 장면에 겹쳐 있었는데 그것을 자기 손으로 없앴다는 깨달음은 실수라는 말로는 충분히 정리되지 않았을 것이다. 아직 실수와 자신을 나누어 생각하지 못하는 나이에게, 사라진 것은 사진이 아니라 자기 자신에 가까웠을지도 모른다.
글씨를 못 읽는다는 말은 그 흔들림에 붙은 이름처럼 들렸다. 영어로 쓰여있는 ‘Delete‘를 아이가 읽을 수 있을 리 만무했다. 이유를 찾고 싶었던 마음이, 가장 가까운 설명을 붙잡은 것일지도 모른다. 아이는 이해하고 싶어 했다. 왜 이런 일이 생겼는지, 왜 자기에게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그러나 이해는 이 나이의 아이에게 언제나 위로가 되지는 않는다. 어떤 밤에는 이해보다 견뎌내는 일이 먼저다.
자다 깬 아이의 마음은 아직 현실과 꿈의 경계를 분명히 나누지 못한다. 낮에 지나간 감정은 잠들어 있는 동안 정리되지 않은 채 남아 있다가, 가장 힘이 빠진 순간 그대로 터져 나온다. 울음은 그래서 크고, 말은 정돈되지 않는다. 다만 자기가 저질렀다고 믿는 일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있었다. 나는 흐느끼는 아이를 침대에서 꺼내 오래 안고 있었다. 아이의 울음이 멈출 때까지, 그리고 다시 시작될 때까지 아이의 곁에 머물렀다. 괜찮다고, 누구나 하는 실수이고 나에게도 일어난 적이 있다고. 물론 같은 사진은 찍을 수 없겠지만 너는 이미 경험이 있으니 다시 동생의 모습을 예쁘게 담아줄 수 있을 거라고 이야기해 줬다. 관계는 그 시간 동안 특별히 회복되지도, 설명되지도 않았다. 다만 끊어지지 않았다. 아이는 무너진 채로도 그 자리에 있을 수 있었고, 나는 그것을 막지 않았다.
오늘의 울음도 그렇게 지나갈 것이다. 사진은 지워졌지만, 이 밤의 감각은 남을 것이다. 실수해도 다시 안길 수 있었던 기억으로, 그리고 아직 글씨를 못 읽는 자신도 괜찮았다는 안도감으로. 그런 기억 하나쯤은, 아이가 앞으로 맞닥뜨릴 더 큰 세계를 건너는 데 조용한 힘이 되어줄지도 모른다.
아이를 키우며 알게 되는 것 중 하나는, 아이가 실패를 배우는 방식이다. 이 일은 어쩌면 아이에게 처음 겪는 종류의 돌이킬 수 없는 실패였을지도 모른다. 의도와 결과가 어긋나는 경험, 되돌릴 수 없는 선택, 그리고 그 앞에서 느끼는 책임감. 아이를 키우다 보면 이런 순간들이 예고 없이 찾아온다. 낮에는 아무렇지 않았던 일이 밤이 되어서야 마음을 두드리고, 사소해 보였던 장면이 아이 안에서 오래 남아 울음으로 돌아온다. 그럴 때마다 나는 완벽한 말보다, 옆에 남아 있는 사람이 되기를 택한다. 아이가 실수해도 관계는 사라지지 않는다는 걸, 말보다 먼저 몸으로 알게 되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걸 조금씩 배워간다. 아이는 이 밤에 무엇을 배웠을까. 실수하면 안 된다는 교훈이었을까, 아니면 실수해도 돌아갈 자리가 있다는 감각이었을까. 실패는 가르쳐서 알게 되는 것이 아니라, 지나가면서 남는다. 그리고 그 실패가 어떤 기억으로 남을지는, 실패 자체보다 그때 옆에 있던 사람의 태도에 의해 결정된다.
아침이 되면 아이는 아마 다시 웃을 것이다. 사진 이야기는 더 이상 나오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어떤 밤들은 흔적 없이 사라지지 않는다. 설명되지 않은 채로 남아 있다가, 훗날 비슷한 순간에 조용히 작동한다. 그때 아이는 이 밤을 기억하지 못할지도 모른다. 다만 실수 앞에서 완전히 혼자가 되지는 않았다는 감각, 무언가를 잃어도 관계는 남아 있었다는 느낌은 어딘가에 남아있기를 바란다. 아이의 울음이 남긴 것은 교훈이 아니라 경험이라면, 나는 그 경험이 너무 이르게 단정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아이의 마음이 아직은, 설명되지 않은 채로 남아 있어도 괜찮은 영역을 갖고 있기를. 그 밤의 울음은 그렇게, 의미를 부여받지 않은 채 조용히 지나갔다. 사진은 지워졌지만, 이 밤의 감각은 남을 것이다. 실수를 인정하며 흐느껴 울 수 있었던 기억으로, 글씨를 못 읽는 자신의 실수가 아직은 괜찮았다는 안도감으로. 그런 기억 하나쯤은, 아이가 앞으로 맞닥뜨릴 더 큰 세계를 건너는 데 조용한 힘이 되어줄 것이라 믿으며, 나는 아이의 숨이 고르게 돌아올 때까지 가만히 곁에 머물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