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을 잡는 방법에 대하여

상상은 혼자보다 둘일 때 오래간다

by 미동

밤이라는 시간에는 사물의 경계가 느슨해진다. 낮에는 분명히 떨어져 있던 것들이, 어둠 속에서는 이유 없이 가까워 보인다. 오늘 저녁, 창문을 열었을 때 보였던 달도 그랬다. 초승달은 하늘에 걸려 있었지만, 멀다는 느낌보다 손에 닿을 것 같은 모양으로 떠 있었다.


우리는 잠시동안 밤하늘을 바라보았고, 아이는 문득 달이 너무 예뻐서 잡고 싶다고 했다. 그리고는 어떻게 하면 달을 잡을 수 있냐고 물었다. 어떻게 하면 달을 잡을 수 있냐니. 이 물음은 설명을 건네면 금세 닫혀버릴 종류의 말이었고, 다만 지금 눈앞에 있는 이 예쁜 장면을 그 작은 손으로라도 꼭 붙잡고 싶은 마음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나는 이 질문이 답을 요구하는 질문이 아니라는 걸, 그리고 이 질문에는 사실 기대도 계획도 없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아마도 아이는 자기 눈앞에 있는 이 장면을 엄마와 함께 살아보고 싶었던 것 같다.


그래서 늘 그렇듯, “그러게,”라고 먼저 말했다. 이 말은 사실 내게 생각을 미루기 위한 말이 아니라, 상상을 밀어내지 않겠다는 신호에 가깝다. 그다음에야 달이 정말 반짝반짝 예쁘다고, 가까이 가면 한 손으로 훅 잡을 수 있을 것 같기도 하다고 덧붙였다. 사실과 거짓의 경계를 긋지 않고, 그저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풍경을 말로 한번 더 만졌을 뿐이다.


아이와 대화하다 보면 이런 질문들이 종종 있다. 답을 얻기 위해 던진 질문이 아니라, 마음을 같이 두기 위해 건네는 말들. 이런 질문들은 언제나 짧고 단정하다. 하지만 그 안에는 설명으로는 닿지 않는 층이 있다. 달을 잡고 싶다는 말은 달을 소유하고 싶다는 뜻이 아니라, 이 아름다움이 사라지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 더 가까울 것이다. 아이는 아직 그것을 다른 말로 바꾸지 못한다. 그래서 가장 가까운 문장을 꺼내 든다. 나는 그 문장을 바로 고치지 않으려 한다. 아이의 상상은 교정되기보다 잠시 함께 놓일 때 더 오래 살아남는다.


‘그러게’라는 말은 그래서 내가 아이에게 자주 건네는 말이 되었다. 아직은 무언가를 가르치기보다는, 지금 네가 서 있는 여기에 같이 서 있겠다는 표시. 결론을 내리지 않고, 방향을 정하지 않고, 잠시 같은 것을 바라보는 데서 대화가 멈춰도 괜찮다는 허락. 아이는 그 허락을 아주 잘 알아차린다. 상상이 부정되지 않았다는 사실만으로도 아이의 얼굴은 금세 가라앉는다.


그날 밤의 대화는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아이는 달을 한 번 더 올려다보더니 로켓을 타고 가보면 어떻겠냐고 물었다. 그러다 곧 생각을 바꿔, 어른이 되면 손이 커질 테니 한 손으로도 잡을 수 있을 것 같지만 지금은 아직 어린이니까 두 손으로 잡아야 할 것 같다고 했다. 질문이라기보다 상상이 방향을 바꾸며 이어지는 말들이었다. 나는 그 흐름을 끊지 않고 그 말들이 어디까지 가는지를 같이 따라갔다. 5살 아이의 상상은 이제 현실을 벗어나 있기는 하지만, 완전히 떠나 있지는 않다. 로켓이라는 단어를 붙이고, 손의 크기를 이야기하고, 나이의 변화를 끼워 넣는다. 전혀 엉뚱한 이야기처럼 보이지만 그 안에는 이미 세계를 이해하려는 방식이 들어 있다. 멀리 있는 것과 가까운 것, 지금과 나중, 할 수 있는 것과 아직은 어려운 것을 자기 나름의 언어로 엮어본다. 나는 그 엮임이 풀어지지 않도록 옆에서 조금만 힘을 보탰다. 두 손으로 잡아야 할 것 같다는 말에는, 그러면 꽉 잡아야겠다고, 떨어뜨리면 안 되니까 조심해야겠다고 덧붙였다. 상상은 그렇게 점점 구체가 된다.


우리는 한동안 달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돌렸다. 로켓에는 누구와 탈까, 달을 잡으면 어디에 놓아야 할까 같은 말들이 이어졌다. 현실과는 동떨어진 이야기였지만, 대화는 공중에 붕 뜨지 않았다. 아이는 혼자 떠들지 않았고, 나는 설명으로 끌어내리지 않았다. 말과 말 사이에는 자주 웃음이 섞였고, 질문은 자연스럽게 다음 질문을 불러왔다. 아이와의 이런 대화는 언제나 방향이 정해져 있지 않다. 결론에 도착하지 않아도 괜찮고, 맞는 답을 찾지 않아도 된다. 중요한 건 이야기가 어디로 흘러가느냐보다, 그 이야기를 누가 함께 걷고 있느냐일지도 모른다. 아이는 혼자서도 상상할 수 있지만, 누군가가 옆에 있을 때 그 상상은 더 오래 이어진다. 부정되지 않고, 서두르지 않고, 적당히 받아들여질 때 아이의 말은 스스로 힘을 얻는다.


그날 밤 우리는 달을 잡지 못했고, 로켓을 타지도 않았지만 우리의 이야기는 충분히 멀리까지 다녀왔다. 아이는 겨울바람을 이기지 못하고 창문을 닫자고 했고, 나는 아이의 몸을 담요로 덮어주었다. 상상은 그 자리에서 멈췄지만,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고, 아마도 아이 안 어딘가에, 달과 로켓과 두 손으로 무언가를 잡아보려던 감각이 겹쳐 남아 있을지도 모른다.


이런 순간들이 쌓여 아이 안에 남게 될 것이 무엇인지는 아직 알 수 없지만, 적어도 질문을 서두르지 않아도 괜찮다는 기억, 상상이 머물 자리가 있다는 감각만은 오래 남기를 바란다. 나중에 아이가 세상을 향해 더 큰 질문을 던질 때, 답보다 먼저 함께 서 있던 이 밤을 어렴풋이 떠올릴 수 있다면, 그걸로 이 대화는 제 몫을 다한 셈일 것이다. 지금은 그저 아이의 마음 곁에 내 마음을 같이 두고 아이의 질문 앞에서 멈춰 서는 태도가 남길 수 있는 것들을 부모가 되면서 조금씩 배워간다.


언젠가 아이가 다시 밤하늘을 올려다볼 때, 달을 잡고 싶다는 말은 더 이상 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대신 아이는 달이 얼마나 먼지, 왜 잡을 수 없는지를 알게 될 것이다. 그때의 아이가 던지는 질문은 무엇일지, 내가 어떤 방식의 대답을 할지는 아직은 상상할 수 없다. 하지만 여전히 그러게, 하고 말문을 열며, 그 질문이 어디까지 가는지를 같이 지켜보는 사람으로 아이의 질문과 함께 서있을 것 같다.

수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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