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어디에서 왔을까

우리가 서로에게 온 이야기

by 미동

아이가 만 세 살 무렵의 어느 날, 나를 바라보다가 아무 예고 없이 자기가 어디서 왔는지 물었다. 질문은 아주 반짝거렸고, 그래서 나의 시선 끝에 더 오래 남았다. 물론 그 물음은 설명을 요구하는 목소리라기보다는, 아직 말로 닿지 않는 세계의 가장자리를 손끝으로 더듬어보는 느낌에 가까웠다. 나는 그 질문 앞에서 잠시 멈춰 입 안에서 말을 고르기 시작했다. 사실을 그대로 말하는 것이 좋을지, 그리고 옳은지, 아니면 아이가 지금 이해할 수 있는 언어가 따로 있는지 생각했다. 이 나이의 아이에게 ‘어디서 왔느냐’는 질문은 사실과 상상의 경계가 아니라, 이 세계에 자신이 어떻게 도착했는지에 대한 감각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하늘에 살던 아기천사의 이야기를 꺼냈다. 어느 심심한 여름날, 땅을 내려다보면서 어디로 갈지 고민하던 아기천사였던 네가, 나와 아빠의 사이가 참 좋아 보여서 이 집에서 함께 지내고 싶어서 작은 날개로 포로로 내려왔다고 말해주었다. 우리에게 와줘서 고맙다고 덧붙이자 아이는 신이 난 듯 활짝 웃으며 한동안 아무 말이 없었다. 그 침묵이 길지 않았음에도, 나는 그 시간 안에서 아이가 자기 존재의 출발점을 마음속으로 그려보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이야기를 사실로 받아들이는지, 상상 속의 어딘가로 구슬을 굴리는지 알 수 없었지만, 그 미소에는 무언가를 가만히 내려놓는 듯한 고요함이 있었다. 잠시 뒤 아이는 자기가 우리를 고른 거냐고 물었고,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엄마와 아빠도 너를 정말 오래 기다렸다고, 오기를 바랐다고 말했다.


그 말을 하면서 나는 이 대화가 우리의 형태를 다시 확인하는 어떤 의식처럼 느껴졌다. 누가 누구를 선택했는지의 무게가 아니라, 이미 서로를 향해 왔다는 감각을 아이의 몸 안에 남겨주는 일 같았다. 아이의 세계는 아직 경계가 현실과 상상이 나란히 숨 쉬는 곳이고, 그 안에서는 이런 이야기가 사실보다 더 진실하게 작동할 때가 있다. 그래서 어떤 이야기는 맞느냐 틀리느냐를 묻지 않고, 그저 마음 안에 자리를 잡는다. 선택받았다는 감각이 아이에게 안전함이 되어 그 자리는 불안 대신 머물 수 있는 쪽이길, 우연이 아니기에 제자리에 도착했다는 기쁨이 되길 바랐다. 아이의 얼굴에는 설명할 수 없는 안도 같은 것이 잠시 머물렀던 것 같았다. 나는 이 작은 아이에게 가장 적절한 언어를 건넸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의 질문은 언제나 자라 있는 만큼만 도착하고, 대답 역시 그 높이를 넘어서면 오히려 흔들린다. 그래서 그날의 말은 오래 붙잡아야 할 설명이 아니라, 지나가도 괜찮은 이야기로 남기를 바란다. 필요해질 때, 아이 안에서 다른 모양으로 다시 떠오를 수 있도록.


그날 이후 나는 이 질문을 우리 가족의 또 다른 시작처럼 기억하게 되었다. 우리가 서로를 찾았고, 그렇게 서로에게 도착한 우리가 어떤 방향으로 함께 서 있는지를 잠시 확인했던 시간으로. 아이가 그날의 이야기를 또렷하게 기억하지는 못하더라도, 삶을 건너는 동안 몇 번쯤 이유 없이 기대어볼 수 있는 이야기로 남아 있기를 바랐다. 설명되지 않아도 괜찮고, 다시 꺼내지 않아도 괜찮은 채로. 다만 흔들릴 때마다 돌아와 앉을 수 있는 제자리가 하나쯤 있다는 감각으로. 그래서인지 이 오래된 질문은 사라지지 않고 지금도 우리 집 어딘가에 남아 있다. 말로는 잘 닿지 않는 순간마다, 이미 서로에게 도착해 있었다는 사실을 조용히 상기시키는 방식으로. 아이가 나를 찾으며 하루를 시작하듯, 이 질문 역시 그렇게 우리 삶의 한쪽에 놓여 있다.

수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