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는 동시에 자란다

두 아이의 밤과 부모의 균형에 대하여

by 미동

집 안에는 하루가 한 방향으로만 흐르지 않는다. 같은 저녁인데도 네 개의 시간이 겹쳐 흐른다. 네 살의 아들은 잠들기 직전까지 오늘을 붙잡고 싶어 하고, 만 한 살을 막 지난 딸은 아직도 낮의 여운을 몸에 달고 있다. 그리고 그 곁에서 엄마와 아빠의 다른 결이 조용히 제자리를 찾는다.

아들에게는 아버지가 먼저 시간을 세운다. “이제는 잘 시간이다.” 그 말은 단호하지만 날카롭지 않다. 방 안에 놓이는 하나의 기준처럼, 하루를 정리하자는 신호처럼 조용히 내려앉는다. 나는 그 옆에서 작은 숨구멍을 만든다. 이불을 들추고 속삭이듯 말한다. 엄마랑 오늘 이야기 조금만 더 해볼까. 아이는 금세 눈을 반짝이며 낮 동안 흩어졌던 장면들을 끌어 모은다. 유치원에서 있었던 사소한 일, 엉뚱한 농담, 괜히 서운했던 순간까지. 이야기가 시작되면 감정도 제 자리를 찾는다. 십 분 남짓의 시간이 지나면 아이는 조금 느슨해진 얼굴로 다시 제 침대로 돌아간다. 경계는 흐트러지지 않았고, 다만 그 안에서 하루가 천천히 접혔을 뿐이다.

그와 동시에, 다른 방에서는 또 다른 시간이 흐른다. 딸은 하루 종일 집을 비웠던 아빠를 기다린다. 현관문이 열리는 미세한 소리에도 고개를 번쩍 들고, 익숙한 발걸음이 가까워지면 몸이 먼저 앞으로 기운다. 반가움은 계산되지 않는다. 서운함도, 따짐도 없이 두 팔을 활짝 벌려 달려간다. 작은 몸이 온 힘을 다해 안기면 아빠의 표정이 먼저 풀린다. 하루의 피로가 녹듯이, 그는 한없이 말랑해진다. 더 안아주고, 더 받아주고, 조금쯤은 허용한다. 그 장면은 언제 보아도 투명하다. 부재가 사랑을 줄이지 않는다는 것을, 기다림이 오히려 마음을 더 또렷하게 만든다는 것을 어린 몸이 먼저 증명하는 듯하다.

나는 그 곁에서 집의 리듬을 지킨다. 울음이 길어질 때는 잠시 멈추게 하고, 넘지 말아야 할 선은 조용히 짚는다. 차갑게 굴고 싶어서가 아니라, 하루가 무너지지 않기를 바라서이다. 누군가는 말랑함을 맡고, 누군가는 단단함을 맡는다. 역할은 정해진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그날의 공기와 아이의 숨결에 따라 조금씩 달라진다.

가끔은 한 발 물러서서 이 네 개의 시간을 함께 바라본다. 이야기를 붙잡는 아들과, 품을 향해 달려가는 딸. 시간을 세우는 아빠와, 그 사이에 숨을 불어넣는 나. 같은 집 안에서 서로 다른 리듬이 흐르지만, 신기하게도 방향은 어긋나지 않는다. 부드러움과 단단함이 충돌하지 않고 나란히 선다. 아이들은 그 사이를 오가며 세상을 배운다. 경계가 있어도 사랑은 줄지 않고, 부재가 있어도 애정은 식지 않는다는 것을 몸으로 익혀간다.

하루는 그렇게 동시에 자란다. 아이들만이 아니라 우리도 함께 자란다. 나는 오늘도 조금 더 부드럽게 단단해지는 법을 배우고, 남편은 조금 더 단단하게 부드러워지는 법을 배운다. 네 개의 시간이 한 지붕 아래에서 겹쳐 흐르며, 서로를 밀어내지 않고 조금씩 자리를 넓힌다. 그 조용한 성장의 장면을, 나는 오래 바라보고 싶다.

수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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