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쪽숲에서 두 아이와 보내는 봄의 오후
독일 서쪽숲의 봄은 종종 믿기 어려운 방식으로 찾아온다. 불과 이 주 전만 해도 무릎까지 눈이 쌓였었다. 아이와 함께 걸으면 발이 푹푹 빠질 만큼 깊은 눈이었다. 눈 위에 남은 작은 발자국들이 저녁까지 이어지던 날들이었다. 그런데 며칠 사이 공기가 바뀌었다. 오늘은 외투를 벗어던져야 할 만큼 햇살이 따뜻하다. 서쪽숲의 날씨는 늘 이런 식이다. 계절이 조금 성급하게, 때로는 한꺼번에 지나간다.
몇 해를 이곳에 살면서 알게 된 것이 하나 있다. 이곳에서는 날씨를 예측하려 애쓰기보다, 그 순간의 날씨를 잘 감지하고 그날의 날씨를 그대로 쓰며 온전히 누리는 편이 낫다는 것. 오늘 무릎까지 쌓인 눈은 내일이면 흔적도 없이 녹아 사라질 수 있고, 오늘 따뜻하다고 방심하면 내일은 하루 종일 비가 내리기도 한다. 그래서 눈이 오면 그날의 눈싸움을 미루지 않고 눈을 쓰는 편이 좋고, 햇빛이 나면 그날의 일광욕을 다음으로 미루지 않고 햇빛을 쓰는 편이 좋다.
요즘은 유치원이 끝난 뒤 아이를 데리고 두 시간쯤 놀이터를 뛰어다닌다. 숨이 차고 땀이 날 때까지 뛰어다니다 보면 어느새 해가 기울어 있다. 아이를 데리러 갈 때면 차 트렁크에 이것저것을 넣어 둔다. 아이가 꺼내지 않을지도 모르는 장난감 자동차와 공, 바닥에 그림을 그릴 수 있는 분필 같은 것들이다. 결국 꺼내 쓰지 않을 때도 많지만, 그래도 바리바리 챙겨 가는 것은 아이가 그날의 날씨를 마음껏 쓰다가 돌아오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이제 막 잘 걷기 시작한 한 살짜리를 쫓아다니다 보면 네 살짜리가 멀리서 나를 부른다. 도움이 필요하다는 신호다. 그럴 때면 한 살짜리를 번쩍 들어 올려 안고 그쪽으로 뛰어간다. 두 아이 사이를 오가며 뛰다 보면 몸이 꽤 고단해진다. 사실은 힘이 드는 날도 많다. 그래도 가능한 한 많이 움직이며, 아이들과 몸으로 노는 시간을 놓치지 않으려 한다. 놀이터 옆 주차장에는 분필로 그린 동그라미들이 남아 있고, 작은 자동차는 잔디가 푸르게 돋은 놀이터의 언덕을 몇 번이고 왕복한다.
가끔은 생각한다. 우리가 한국에 살았다면 어땠을까. 혹은 조금 더 큰 도시에서 살았다면 아이들이 경험했을 것들이 떠오른다. 더 많은 수업과 더 많은 문화적 경험, 더 많은 선택지. 그런 것들을 생각하면 이곳에서 놓치고 있는 것들도 분명 있을 것이다.
하지만 동시에 이곳에서만 붙잡을 수 있는 것들도 있다. 계절이 몸으로 들어오는 시간, 흙과 바람과 햇빛 속에서 보내는 긴 오후, 끝없이 펼쳐진 잔디를 놀이터라며 해가 질 때까지 뛰어다니는 어린 시절 같은 것들이다. 아이는 마지막까지 놀이터를 떠나려 하지 않고, 나는 그 옆에 서서 아직 조금 남아 있는 햇빛을 바라본다. 도시의 아이들이 얻는 세계가 있다면, 숲의 아이들이 얻는 세계도 있다.
그래서 이곳에서는 하늘을 자주 올려다보게 된다. 구름의 모양을 살피고, 햇빛의 온도를 느끼고, 바람의 방향을 읽는다. 오늘이 어떤 하루인지 가늠해 보기 위해서다. 그리고 가능하다면 그 하루를 조금 더 오래 붙잡아 두려고 한다. 오늘 내린 눈이 내일은 모두 사라질 수도 있고, 오늘의 햇빛이 며칠 동안 다시 돌아오지 않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아이들과 함께 살아간다는 것은 어쩌면 그런 일인지도 모른다. 지나가 버릴 시간을 미루지 않는 것. 눈이 오면 눈을 쓰고, 햇빛이 나면 햇빛을 쓰는 것. 그렇게 하루를 조금 더 오래 살아 보는 것.
문득 아이들과 놀이터에 서 있으면 시간이 조금 다르게 흐르는 것처럼 느껴진다. 서둘러 지나가던 계절이 잠시 멈춘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아이는 아직 내일의 날씨를 걱정하지 않는다. 그저 지금 내리는 눈을 잡고, 지금 비치는 햇빛 속을 뛰어다닌다. 나는 그렇게 아이들과 함께 가장 따뜻하고 단순한 방법으로 지나는 계절을 붙잡아보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