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용기는 어디에서 오는가

숲 속의 길 위에서 아이가 건넨 한 마디

by 미동

독일에 살며, 그것도 도심에서 한참 떨어진 숲에 살다 보면 운전을 좋아하던 그렇지 않던 간에 결국은 운전을 하게 된다. 장을 보러 가는 일도, 아이를 데리러 가는 일도, 차가 없으면 거의 불가능한 일들이 된다.


어제는 처음으로 남편 없이 두 아이를 데리고 장을 보러 갔다. 자주 다니던 길이었지만, 혼자라는 사실이 그 길을 조금 다르게 만들었다. 시동을 켜고 잠시 숨을 고르다가, 자연스럽게 첫째를 바라보았다. 아이는 안전벨트를 매고 한동안 말이 없었다. 창밖을 보다가, 다시 앞을 보고, 그러다 조용히 내 쪽을 바라봤다. 눈이 마주쳤고 그래서 무심코 말을 꺼냈다.


“엄마가 혼자서 처음 가는 길이라 조금 겁이 나.”


그러자 아이는 아주 당연하다는 듯 말했다.


“나는 엄마의 용기 배터리야. 내가 화이팅을 하면 용기가 충전되는 거야. 용기를 내! 화이팅!”


그 말을 듣고 잠시 웃음이 났다. 어디에서 들은 적도, 누가 가르쳐준 적도 없을 아이가 만든 말이었다. 아이는 ‘용기’라는 보이지 않는 것을 ‘배터리’라는 손에 잡히는 것으로 바꾸어냈고, 감정을 사물처럼 다루는 방식 안에는 설명이 필요 없는 순수한 위로가 있었다. 아이는 분명히 자신과 나와의 견고한 관계를 알고 있고, 그렇기에 엄마는 할 수 있다는 믿음과 확신이 그 문장으로 모습을 바꾸어 마음 안으로 들어왔다.

아이의 언어는 종종 개념보다 먼저 도착하는 것 같다. 아직 완전히 이해하지 못했을지도 모르는 단어들을, 아이는 이미 자기 방식으로 조합하고 있다. 독일어와 한국어, 결코 단순하지 않은 두 개의 언어를 오가며 살아가는 아이를 보며, 언어가 두 개라는 것은 두 개의 세계를 갖는 일이 아니라 하나의 세계를 조금 더 다른 방식으로 바라보게 되는 일에 가깝다고 느낀다.

아이는 더 이상 말을 통해 필요한 것을 전달하는 데 그치지 않고, 관계를 만들고 감정을 건네는 데까지 사용한다. 엄마의 상태를 읽고, 그에 맞는 말을 고르고 그것을 망설임 없이 꺼낸다. 아이가 말을 배운다는 것은 단어를 늘리는 일이 아니라 세계를 연결하는 방식을 배우는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좋은 엄마가 되고 싶다는 생각은 종종 어떤 기준을 떠올리게 하며 때로는 현재의 나를 잠식한다. 가만히 돌아보면, 아이는 이미 충분한 신호를 보내고 있다. 엄마에게 말을 건네고, 엄마의 말을 기다리고, 그 사이에서 자신의 세계를 조금씩 펼쳐 보인다. 대체로 비슷한 온도로 돌아오는 사람이 곁에 있다는 것을 아이에게 느끼게 해주고 싶다. 그 흐름 안에 함께 머무르는 것으로 나는 어쩌면 좋은 엄마가 되고 싶다는 나의 바람을 안도한다.

아이를 키우며 이 숲은 참 좋은 환경이라고 느낀다. 조금은 더 여유 있는 마음으로 아이가 어떤 표정으로 말을 꺼내는지를 바라볼 수 있는 곳이다. 아이가 스스로 만든 말을 망설이지 않고 꺼낼 수 있는 자리, 그 말이 사라지지 않고 한 번 더 머물 수 있는 시간. 그 안에서 아이의 세계는 자라고 그 경험이 쌓이면, 아이는 점점 더 스스로의 세계를 언어로 꺼내놓는 사람으로 자라게 될 것이다.


어제의 길은 평소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여전히 겁이 많은 나는 어둠이 아직은 내리지 않았던 같은 길을 따라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다만 그 길 위에서, 자신은 나의 용기배터리라는 아이의 말을 만날 수 있어서 정말로 행복했다. 아이와 함께하는 시간 속에 자주 등장하는 용기라는 단어가 아이의 입을 통해 그렇게 처음으로 나에게도 닿았다. 아이의 세계는 계속 넓어지고, 그 곁에서 지켜보는 나의 세계도 함께 넓어지고 있다.

수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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