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의 눈을 통해 처음 발견하는 가치에 대하여
물러진 흙 위를 뛰어가던 아이의 발이 자꾸만 뒤로 미끄러졌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단단하던 땅이 어느새 조금씩 풀어져 있었고, 공기에는 아직 차가운 기운이 남아 있는데도 손끝으로 만져지는 계절은 분명히 달라져 있었다. 서쪽숲의 봄은 늘 그렇게 온다. 크게 알리지 않고, 먼저 땅의 결부터 바꾸어 놓는다.
정원에 나가면 두 아이는 각자의 방식으로 이 계절을 탐색한다. 둘째는 들꽃을 따서 입에 넣어보고, 흙을 두 손으로 퍼올리고, 작은 구멍을 파며 논다. 나뭇가지를 찾으러 이리저리 다니던 첫째는 문득 그 모습을 한동안 바라본다. 그러다 어느 순간 슬며시 가까이 와서는 옆에 앉는다. 혼자 놀던 아이가 다른 아이의 시간을 들여다보며 자기 몸의 방향을 바꾸는 순간이 있다.
어느 날 둘째는 정원 한쪽에 세워진 손수레를 발견했다. 첫째가 세 살이 되던 해에 선물로 받았지만 한동안 거의 쓰이지 않은 채 놓여 있던 것이었다. 둘째는 마치 오래전부터 자기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처럼 손잡이를 덥석 잡고 달리기 시작했다. 한 살 아기의 전속력은 어딘가 위태롭고 또 우스워서, 뒤뚱거리는 엉덩이와 덜커덕거리는 바퀴 소리만으로도 웃음이 났다. 얼굴로 바람을 받아내며 환하게 웃는 아이를 보고 있자니, 한쪽에 머물러 있던 물건 하나가 다시 제 시간을 되찾은 듯했다.
원래 자기 것이라며 기어코 손잡이를 되찾아 든 첫째를 지나 둘째가 향한 곳에는 전동 오토바이가 서 있었다. 남편이 첫째가 두 살 무렵 직접 만들어준 것이었다. 둘째는 그 주위를 한참 빙빙 돌며 살피더니 마침내 핸들을 쥐고 올라탔다. 아직 몸에 익지 않은 움직임으로 느릿느릿 앞으로 나아가는데, 그 조심스러운 속도마저 그렇게 즐거워 보일 수가 없었다. 멀찍이서 지켜보던 첫째가 다시 다가왔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제 것이라며 수레를 붙들던 아이가 이번에는 팔짱을 풀고 말했다. 나도 탈래.
오래 자기 것이었던 무언가가, 다른 사람의 눈을 통해 처음으로 다시 빛나는 순간이 있다. 그날 첫째의 얼굴이 그랬다. 빼앗긴다는 감각과 내가 가진 것이 좋은 것이었다는 발견은 얼핏 비슷해 보여도 아이 안에는 전혀 다른 자국을 남긴다. 하나는 움켜쥐게 하고, 다른 하나는 다시 바라보게 한다.
형제가 생긴다는 건 세계가 나뉘는 일이 아니라, 세계를 보는 눈이 하나 더 생기는 일인지도 모른다. 혼자일 때 아이는 자기 속도로 세상을 탐색한다. 둘이 되면 그 방식이 조금 달라진다. 관찰하고, 따라 하고, 부러워하고, 그러다 함께하게 된다. 씨앗 하나가 떨어진 자리 근처에서 다른 싹들도 따라 올라오듯, 한 아이의 즐거움은 다른 아이의 몸을 움직인다. 먼저 웃는 아이가 있고, 그 웃음 쪽으로 천천히 걸어가는 아이가 있다.
남편이 만든 탈것들은 어쩌면 그가 어릴 때 갖고 싶었던 것들의 모양을 하고 있다. 그래서인지 첫째에게 그것들은 너무 일찍부터 곁에 있었고, 그만큼 특별한 것으로 느껴지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둘째가 핸들을 쥐고 기뻐하는 모습을 보고 있으니 나 또한 새삼 알게 되었다. 자기 몸으로 균형을 잡고, 손으로 방향을 익히고, 넘어지지 않으려 집중하는 시간은 생각보다 깊이 몸 안에 남는다는 것을. 숲의 나무가 겉으로 드러내지 않은 채 안쪽으로 나이테를 쌓아가듯, 그런 감각도 눈에 보이지 않는 층이 되어 아이 안에 남을 것이다.
나는 좋은 형제 사이에서 자랐다. 존재만으로 응원이 되는 사람이 곁에 있다는 것이 어떤 일인지, 말로 배우기 전에 먼저 알았다. 설명하지 않아도 내 편인 사람, 잘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먼저 놓여 있는 관계. 그것이 얼마나 귀한지는 자라고 나서야 더 분명해졌다. 그래서인지 아이들을 바라볼 때면 지금 저들이 주고받는 것이 장난감이나 차례만은 아니라는 생각을 자주 하게 된다. 함께 자란다는 것은, 서로의 기쁨을 알아보는 법을 아주 오래에 걸쳐 몸으로 익혀 가는 일일지도 모른다.
이 아이들도 아직은 모를 것이다. 서로가 얼마나 좋은 존재인지를. 둘째는 오빠가 있는 세계를 당연하게 여기고, 첫째는 동생이 생긴 뒤의 세계를 처음부터 자기 삶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그러나 이 정원에서 함께 흙을 파고, 같은 탈것을 번갈아 타고, 서로의 웃음소리를 들으며 자라는 시간은 말보다 먼저 몸 안에 남는다. 숲의 나무가 한 해를 지나고 나서야 비로소 나이테 하나를 더하듯, 이 계절들도 그렇게 쌓여 언젠가 서로를 알아보는 방식이 될 것이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다. 그저 조금 물러서서 바라보는 일, 먼저 달리던 아이가 어느새 뒤를 돌아보는 장면을 오래 지켜보는 일. 봄이 왔다고 말하기 전에 먼저 흙이 물러지듯, 마음도 그렇게 천천히 제 모양을 바꾸어 갈 것이다. 나는 그 변화가 너무 빨리 설명되지 않기를 바라며, 오늘도 정원 가장자리에서 두 아이의 등을 조용히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