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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지윤 Aug 09. 2019

맨 정신으로 글쓰기

글쓰기에 대한 고백

사실 나는 글을 쓰는 데에 구구절절하게 제약이 많은 사람이다. 일단 키보드가 아니면 글을 쓰지 못하고, 그것도 대체로 내 손에 맞는 키보드(키보드를 크게 가리진 않지만 그래도)가 아니면 글을 잘 쓰지 못한다. 지금은 버밀로 갈축 텐키리스 키보드를 쓰고 있고, 글을 정말 많이 적어야 할 때는 마이크로소프트의 에르고노믹 키보드를 쓰기도 한다. 싸구려 멤브레인 키보드는 잘 쓰지만 애플의 펜타그래프 키보드는 또 잘 못 쓴다. 키캡이 낮은 키보드 중에서 그나마 손에 맞는 건 위에서 언급한 마이크로소프트의 키보드 밖에 없는 것 같기도 하다.

손으로 글을 쓰면 글을 쓰는 속도가 생각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해서 답답함을 느끼기도 하고, 잘못 쓴 것을 고치거나 문단을 고치는 데에 큰 노력이 들어가기 때문에 답답함을 느낀다. 만년필로 글을 쓰는 그 느낌을 좋아하지만, 펜을 꽉 잡는 안 좋은 버릇이 있어 금방 지치기도 한다. 그러니까 참 까다로운 사람이다. 그러니까 이런 저런 핑계로 글을 잘 안 쓰기까지 한다. 참으로....     

게다가 맨 정신일 때 글을 잘 못 쓴다. 이건 내 고질적 문제이기도 하다. 몰입에 굉장한 자원을 요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넷플릭스도 매일 찜만 하고 잘 보질 않으며, 요즘은 게임 하는 것도 꽤 큰 일이 되어버렸다. 몰입이 시작되고 시간이 지나면 쉽게 지치지 않지만, 무슨 큰 용광로처럼 한 번 그 불을 지피는 데에 너무 많은 에너지가 든다. 그렇다고 막 결과물이 좋은 것도 아니고.

이럴 때 쉬운 방법은 술을 마시는 것이다. 술을 마시면 글쓰기가 아주 쉬워진다. 결과물의 퀄리티야 어쨌든 간에, 한 시간에 3천자에서 7천자도 쓰는 사람이 되어버린다. 물론 그것도 자기가 좋아하는 이야기를 주절거릴 때이며, 이제는 그마저도 옛날 일이 되어버렸지만. 술을 마시면 흉중에 있던 이야기를 꺼내기 쉬워지는 것과 비슷한 것 같다. 글쓰기가 대체로 자기 고백이나 자기 진술에 가까운 내게는 특히 더 그런 것 같다.      

맨 정신으로 글을 쓰는 것은 내게 힘든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제는 습관을 조금 들여야 하는 일이다. 나날이 퇴화하고 있는 내 언어능력을 지켜보고 있는 것도 괴로운 일이고, 부지런히 읽고 쓰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위기의식을 계속해서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정말 25년 만에 그런 생각이 들어서 최근에는 체중관리를 시작했고, 글쓰기도 아직 그까지는 아니지만 슬슬 느끼고 있는 것 같다. 

몇 자 안되는 내 글을 돌아보는데, 너무나도 투박하게 느껴진다. 글을 잘 쓴다의 기준은 다 다르겠지만, 쉬이 읽히고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글을 좋아하는 내게 이렇게 반복적인 표현과 생각으로 이루어진 글은 끔찍하게 보인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첫 술에 배부를 수 없고 걸을 줄도 모르는 데 뛸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약해진 마음을 추스르는 한 편 약해진 내 글쓰기 근육들도 다시 살려내도록 노력해야겠지. 그러니까 이건 일종의 일기나 자기 다짐이다. 몇 번이고 다짐을 해왔고 나는 나를 믿지는 않지만, 그래도 이번에도 나는 그런 하찮은 다짐을 할 수 밖에 없다. 작은 뭉그적거림 같은 발버둥. 어쩌면 이번에는 정말 떠오를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그런 섣부른 기대를 안고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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