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젠 아이 아니지만
나는 어렸을 때부터 컴퓨터를 좋아했다. 그게 언제냐면 대략 다섯 살쯤부터다. 그쯤 나는 외갓댁에서 지내고 있었는데, 큰외삼촌이 대학 입학할 쯤이던가, 작은외삼촌이 대학 입학할 쯤이던가 할아버지께서는 큰맘먹고 당시 300만원 정도(그렇게 들었는데 정확한지는 모르겠다.) 하던 데스크탑을 들여놓으셨다. 램이 64MB ~ 256MB 사이였고, 하드디스크 용량은 25GB였나 그랬다. 어느정도 제원을 아는 이유는 나중에 이 데스크탑을 우리 가족이 받아서 사용하기 때문이다. 인텔 팬티엄 3 CPU가 장착되었고 스타크래프트나, 아니면 에이지 오브 엠파이어 2를 겨우 돌리던 컴퓨터였다. 여담이면서도, 꽤 중요한 이야기인데 그 컴퓨터와 나는 대략 8년을 같이 보냈다.
여튼 그 컴퓨터는 내가 다섯살 무렵에는 최신 사양이었고, 삼촌이 그 컴퓨터로 스타크래프트를 하던 모습이 생각난다. 삼촌이 인터넷을 쓰면은 집안 전화기가 먹통이 되어서 뚜 뚜 뚜 하는 소리가 나던 것도 기억이 나고, 삼촌이 내게 스타크래프트를 가르쳐주던 것도 생각이 난다. 그런 일은 주로 작은외삼촌 담당이었는데, 큰외삼촌이라고 스타를 안 하는 건 아니었지만 작은외삼촌이 좀 더 열심히 했던 것 같다. 내 기억상으로 늘상 스타를 하고 있던 건 작은외삼촌이었고, 내게 스타를 가르치고, 한컴타자연습 프로그램으로 타자 연습을 시키던 것도 작은외삼촌이었다. 삼촌은 내게 마우스로 유닛을 생산하면 느려서 안 된다고 키보드 단축키를 쓰라고 했지만 뭐, 너 댓 살 먹은 애가 해봐야 얼마나 하겠는가. 컴퓨터하고 대전을 붙으면 초반 질럿 러쉬를 막아내지 못하고 늘상 털리기 일쑤였는데, 뭐가 그렇게 재밌었는지는 참 지금도 모르겠다. 그 때는 질럿은 정말 공포의 아이콘이었고, 마린(해병) 아이콘을 보면 사람이 거대한 스패너를 들고 서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면 마린은 갈색 분말을 토해내 적들을 공격했고, 나는 스패너와 갈색 분말 사이에 무슨 연관관계가 있는지 궁금해했다. 아직은 그런 전쟁과 관련된 지식들이 전무했을 때였으니까.
한참 뒤에, 초등학교를 다닐 때 "에쒸비"라는 만화가 나왔다. 태무진이라는 이름을 가진 게임 천재 소년이 스타크래프트 프로게이머가 되는 과정을 그린 만화였는데, 7살때 임요환 인터뷰를 읽은 뒤로 장래 희망이 프로게이머였던 나에게 참 로망 그 자체인 책이었다. 그 만화책에 보면, 태무진의 플레이를 본 여성 프로게이머가 마린이 살아 움직이는 것 같다는 느낌을 받는 장면이 있었다. 스타를 처음 할 때 받았던 그 느낌. 유닛 하나하나가 살아 움직이는 거 같은 느낌. 물론 그가 프로게이머 생활을 오래 하면서, 게임을 직업적으로 대하게 되면서 그런 느낌은 사라지지만, 태무진의 감각적 플레이를 보고 마치 유닛이 살아움직이는 것 같다는 감탄을 한 적이 있었다. 나는 그 묘사가 참 좋았는데, 내가 스타를 처음 시작했던 다섯살 무렵에도 나는 그런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다.
하여튼 삼촌은 그런 나를 위해 종종 치트키를 쳐줬고, 머리가 조금 굵어지고 나서는 나 스스로도 치트키를 칠 수 있게 되었다. 그 외에도 에이지 오브 엠파이어 2도 종종 했었는데, 한글화가 되어 있어 혼자서도 게임을 시작할 수 있었던 게 기억에 남는다. 나는 그 게임의 이름을 그 때는 몰라서 "기사 게임"이라고 했던 기억이 난다. 어머니가 아주 어렸을 때부터 영어를 가르쳐 주셔서 영어를 아주 조금 할 수 있긴 했지만, 스타를 할 때는 영어를 읽고 게임을 하는 게 아니라 그냥 위치를 외워서 게임을 시작하는 것이었으니까. 에이지 오브 엠파이어 2는 삼촌이 특별히 가르쳐주진 않았고, 대신 삼촌이 한컴타자연습을 내게 종종 시켰던 기억이 난다. 가족들이 나를 빙 둘러 싸고, 나는 거대한 의자에 앉아 거대한 자판을 하나 둘 씩 눌렀다. 화면에 나오는 글자를 차근차근 누르면 되었다. 내가 할당된 손가락이 아닌 다른 손가락으로 타자를 치면 삼촌은 그 손가락을 깨물면서 "이 손가락 말고 이 손가락!" 하고 장난기 섞인 목소리로 나를 괴롭혔고, 그래도 나는 꾸준하게 내 지조대로 타자를 쳤다. 삼촌은 요즘 애들이 컴퓨터를 정말 잘 한다면서, 나를 칭찬했다. 할아버지는 당신의 휴대폰을 자신보다 더 잘 쓴다며 나를 칭찬하셨고, 가족들은 다 내 디지털 친화적인 모습을 신기해했다. 나도 생각해보면 신기하다. 나는 어떻게 그렇게 컴퓨터나 휴대폰 같은 기기에 그렇게나 매료되었던걸까?
그리고 내가 일곱살 쯤에 이모부는 "게임조선Jr."를 내는 디지털조선게임에서 일하고 계셨다. 이모부는 명절에 내게 10월호(이자 창간 2호)를 가져다 주셨는데, 정말 책이 닳고 헤지도록 봤던 기억이 난다
당시 기사.
https://m.chosun.com/svc/article.html?sname=news&contid=2001092170136#Redyho
"화이트데이:학교라는 이름의 미궁" 공략이나 "C&C 유리의 복수" 공략 같은게 실려 있었던 걸로 기억한다. 국산 아케이드 슈팅 게임 분석 글도 있었고 임요환 선수의 인터뷰나(이름이 기독교와 아무 관계가 없고 무교다, 주량은 소주 얼마고, 맥주는 배 불러서 싫어한다는 내용이 담겨 있던.... 그리고 그 유명한 배럭 널뛰기 관련 내용도 있었다.), "버그를 잡아라"는 독자 참여 코너(잡지에 있는 옥의 티를 찾는, 약간 컨셉 잡는 코너로 기억하는데, 배틀크루저를 전투순양함으로 번역하는 게 맞는지 뭐 이런 소리를 하는 벌레들 중 헛소리를 하는 벌레를 잡아서 응모하는 코너였다.) 이순신 장군 모델링을 하던 회사 정보나 뭐 그런 알찬 정보들이 담겨 있었던 걸로 기억한다. 그 잡지에서 다뤘던 게임들 중 유명한 게임은 당시에는 그 게임이 뭔지 몰랐지만 나중에 나이가 차면서 알게되기도 했다. "오퍼레이션 플래쉬포인트(지금은 아르마:콜드워 어썰트)"라든지, "유리의 복수" 같은 게임이 그랬다. 거기 잡지에 독자 응모 카드가 있어서, 좋아하는 게임을 묻는 질문에 "기사 게임"이라고 적어놨던게 떠오른다.
아침부터 글을 쓰려고 컴퓨터 앞에 앉으니, 그동안 내가 왜 이렇게 게임을 좋아하고 컴퓨터에 집착하는 아이로 자랐는지에 생각이 미쳐 글을 쓰기 시작했다. 타잔 게임이나 슈퍼마리오 게임에 관한 이야기, 동네 아파트(외갓댁)에 살던 친구와 처음으로 배틀넷을 했던 이야기, 같은 아파트 다른 동에 살던 친구네에서 처음 게임기를 써봤던 이야기 등 할 이야기가 참 차고 넘치는 것 같다. 추억팔이 같기도 하지만 당분간 글쓰기가 손에 익을 때까지는 마음에 드는 이야기를 계속 써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