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기억도 있다. 아마 내가 대여섯살 무렵의 일일 것이다. 점심 때 나와 할머니, 할아버지, 삼촌 둘이서 식사를 하고 있었다. 와중에, TV에는 영화 관련 프로그램이 나오고 있었다. 출발 비디오 여행이였나, 그런 종류의 프로그램이었을 것이다. 그 프로그램에서는 "바람 계곡의 나우시카"를 다루고 있었는데, 거대한 오무가 힘차게 달려가는 장면이 나오고 있었다. 외삼촌들은 오무를 보고 무언가와 닮았다고 하는데, 내가 대뜸 "스타"에 나오는 "리버" 같다고 했다.
삼촌들은 그러고보니 그렇네, 라면서 나를 똑똑하다고 칭찬했다. 나보다 스타를 많이 하던 두 삼촌보다 내가 그 이미지를 먼저 떠올린 건 지금 생각해보니 꽤 신기한 일이다. 나는 고작해야 치트키를 치고 컴퓨터와 비비적거리고 있을 때였으니까. 하지만 그 당시 일상적인 시각 매체라곤 끽해야 TV밖에 없고, 영화도 몇 편 본 적 없는 꼬마 아이에게 컴퓨터 화면 속 스타크래프트의 세상은 말로 표현하기 힘들 정도로 새로운 세상이었을 것이다. 지난 글에서 "에쒸비"라는 스타크래프트 만화의 한 장면을 인용하면서 했던 설명을 다시 쓰자면, 화면 속에 움직이는 유닛 하나하나가 살아 움직이는 느낌을 받을 정도였다. 가상의, 저해상도의 존재가 무엇을 하는지도 제대로 모르면서 그 일사분란함에 어린 나는 쉬이 매료되었던 것일테다. 그렇기 때문에 삼촌들보다 더 빨리 그 이미지를 끄집어 내 오무와 리버를 연결시킬 수 있었는지 모르겠다. 내게는 정말 생생하고 강렬하고 자극적인 경험이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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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량조절의 실패다.
소싯적 게임 이야기를 하면 누구나 슈퍼 마리오 이야기를 꺼낼 것 같다. 국내 가정용 게임기 시장의 여명기에는 슈퍼 마리오가 정말이지 절대 강자로 군림했다. 물론 내가 어렸을 때의 슈퍼마리오의 위상과 지금 어린 시절을 보내는 분들에게 슈퍼 마리오의 위상이 같지는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아마 그 분들에게는 앵그리버드 정도가 그나마 비슷한 예시로 들 수 있지 않을까? 내 사촌 동생들이 앵그리버드에 홀딱 빠져있던 모습이 떠오른다. 새의 소리를 흉내내고, 나를 그 녹색 돼지라고 놀리던 귀여운 동생들. 물론 내게도 앵그리버드는 2차 마리오 정도로 충격을 준 게임이긴 하지만 게임 그 자체에 매료된 것과 몰입하는 것은 일대일대응의 관계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앵그리버드에 나는 매료되었지만 몰입하긴 힘들었기 때문이다. 슈퍼 마리오도 마찬가지다. 나는 몹시 매료되었지만, 내 실력의 한계상 그렇게까지 몰입하기는 어려웠다.
내가 처음 슈퍼 마리오를 했던 것은 아마 대여섯 살쯤이었을 것이다. 친할머니 댁에서 사촌 누나가 쓰던 컴퓨터로 했던 슈퍼 마리오가 먼저인지, 외할머니 댁인 아파트에서 사귄 친구네 집에서 게임기로 했던 슈퍼마리오가 먼저인지는 모르겠다. 다 대여섯살쯤의 일이긴 한데, 추정상 친구네 집에서 했던 건 슈퍼 마리오 브라더스 3인 거 같고, 확실한 건 사촌 누나 컴퓨터로 하던 건 슈퍼 마리오 브라더스(가장 처음 나온 슈퍼 마리오 게임)였다. 둘 다 이미 그 시점에서 구닥다리 게임이기는 했지만 굳이 따지면 연식은 컴퓨터로 한 녀석이 더 오래되기는 했다. 나는 내 개인 컴퓨터가 있다든지, 주변에 게임을 특별히 좋아하는 사람이 있던 건 아니라서, 젤다의 전설 같은, 슈퍼 마리오의 제작자인 미야모토 시게루의 다른 작품을 해본 적은 없지만 슈퍼 마리오만큼은 어딜 가도 할 수 있었던 걸 생각해보면 정말 유명하고 인기 많았던 게임인 것 같다. 이렇게 조금 에둘러서 이야기 하는 이유는 내가 그 게임을 좋아했으면서도, 또 거기에 미친듯이 매달리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스타크래프트를 할 때 컴퓨터를 이기지도 못 하면서 계속 거기에 매달리고 했던 것과는 조금 대조적이다.
그 시절 즐기던 여러 쥬얼 게임들도 생각난다. 불법 복제의 희생양인 게임들. 혹은 잡지 부록으로 딸려오던 게임들. 컴퓨터 기사 아저씨가 컴퓨터를 수리하거나 유지보수를 해주고 나면 윈도우나 한글 같은 프로그램을(역시 불법복제다.) 깔아주고, 게임도 몇 개 깔아주곤 했었다. 드라마틱한 핀볼 게임부터 타잔 게임, 요상한 레이싱 게임 등등. 초등학교 무렵에는 게임은 무슨 부록처럼 딸려오는 패러다임에서 아예 따로 출시를 하는 쪽으로 패러다임의 전환이 있었던 것 같다. 그 쯤 정말 다양한 게임들이 출시를 했다. 짱구는 못말려 시리즈와 하얀 마음 백구 시리즈가 되게 유행을 했던 기억이 난다. 두 게임 다 어린아이의 스케일을 넘어서는 커다란 볼륨으로(게임이 유아용으로 나오긴 하지만 당시에는 게임의 주 향유층이자 제작층인 성인의 눈높이에 조금 더 맞춰져 있었던 것 같다) 정말이지 하루종일이라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 외에도 문방구에서 백원 넣고 플레이를 하던 아케이드 게임들이 CD로 나와서, 동글동글 헤롱이 같은 게임이나 섹시 파라다이스, 펭귄 브라더스, 스노우 브라더스, 테크모 월드컵 같은 것들을 가지고 있는 친구들도 종종 있었다. 90년대와 00년대 초반의 기억이 강하진 않지만, 정말 다양한 국산 게임들과 기타 게임들이 출시했던 것은 기억이 난다. 지금과는 사뭇 다른, 이색적인 느낌이다. 온갖 참신한 시도와 자원의 부족 등이 맞물려 독특한 게임들이 잔뜩 나왔었는데, 그 시절 나는 특별히 경제력도 없고 컴퓨터도 구닥다리여서 그런 게임들을 많이 해보지 못한 것이 슬프다. 이제야 얼마든지 그런 게임을 구해서 할 수 있겠지만, 심심풀이 땅콩에 지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최근에 그 컴퓨터 수리 기사 아저씨가 자주 깔아주던, 버츄어 캅스2를 구해서 해본 적이 있었는데 향수는 생기지만 그 시절의 그 느낌이 아니었다. 나는 너무 자라서 이제 그 게임이 전혀 어렵지도 않고, 구닥다리 그래픽과 인터페이스에 몰입하기에 나는 너무 자라 있었다. 어렸을 때는 그렇게 재밌을 수가 없었는데, 이제는 김새는 게임이 되어버렸다. 그런 의미에서, 그 시절의 문화 콘텐츠를 그 시절에 즐길 수 있다는 것은 굉장한 축복이 아닌가 싶다.
지금 내 컴퓨터는 몹시 휘황찬란하다. 이보다 더 휘황찬란한 컴퓨터도 있고, 사실 아직 컴퓨터에 더 돈을 쓰고 싶은 마음도 있지만 그럭저럭 만족하고 있다. 모니터까지 합쳐서 400만원쯤 되는 내 컴퓨터 일체. 훌륭한 게이밍 머신이자 돈벌이 수단이기도 한 녀석이다. 돈을 벌 때마다 나는 컴퓨터를 업그레이드 하곤 했다. 내가 이토록 컴퓨터에 집착하게 된 이유는 바로 내 어렸을 적 첫 번째 컴퓨터 때문이다.
지난 글에서 말했다시피, 나는 아주 구닥다리 컴퓨터를 물려받아 6년쯤(다시 계산해보니 6년정도 사용한 게 맞겠다.) 사용했다. 윈도우 XP의 시대에 물려받은 윈도우 98 컴퓨터는 학교 컴퓨터실 컴퓨터보다 조금 나은 수준이었다. 스타크래프트나 겨우 돌아가고, 피망 맞고나 하기 적합한 컴퓨터였다. 외려 웹서핑을 할 때 죽을 쑤는 녀석이었다. 그 컴퓨터로 마비노기가 처음 나왔을 때 접속 로딩만 20분씩 기다려가며 게임을 했던 생각이 난다. 사실상 게임을 할 수도 없었다. 그 쯤 나는 PC방으로 많이 나돌았고, 집의 구닥다리 컴퓨터에 거의 한이 맺혀 있었다. 늘 컴퓨터 부품 관련 정보들과 가격들을 검색하곤 했고, 컴퓨터 관련 잡지들과 인터넷커뮤니티의 게시물들을 즐겨 읽곤 했다. 워낙 컴퓨터가 구닥다리다보니까 나는 좋은 컴퓨터에 대한 동경심을 갖게 된 것이다. 어렸을 적 집은 가난해서 컴퓨터를 새로 사줄 여유가 없었고, 나는 거의 2006년까지 그 컴퓨터를 썼다. 거대한 CRT 모니터와, 칙칙한 베이지색으로 변색된 플라스틱 하우징 일체가 아직도 머릿속에는 생생하다. 다음 글에는 그 시절의 내 컴퓨터와, 지금의 내 컴퓨터, 그리고 그 시절의 온라인 게임들에 대해서 이야기 해야겠다.(카르마 온라인이나, 앙팡 테리블이나.... )정말 할 얘기가 잔뜩이라서 신기한 기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