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지옥에 사는 사람들의 의미?
이 글은 내가 인생을 관조하기 위해 쓴 글이다.
내가 이런 삶을 실천하고 있지도 않다.
다만, 살아가는 대로 생각하지 않고, 생각하며 살아가기 위함이다.
세상이 지옥인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중요한 건, 때로는 정말 지옥처럼 느껴지는 순간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태어나면서부터 고통 속에서 하루도 평온하지 않은 사람들.
병, 장애, 가난, 폭력, 혹은 설명되지 않는 불행이 그들의 삶을 잡고 놓아주지 않는다.
이런 사람들을 바라볼 때 우리는 궁금한 질문을 스스로 던지곤 한다.
“저 삶의 의미는 도대체 무엇일까?”
하지만 이 질문은 한참 잘못된 것이다. 고통은 의미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고통은 그 자체로 사실이며, 현실이며, 부정할 수 없다.
사람이 겪는 고통 앞에서 우리가 말할 수 있는 것은
‘의미’라는 말의 아름다운 포장지가 아니라,
그저 “당신이 겪는 현실을 우리는 외면하지 않겠다”는 약속뿐이어야 한다.
우리는 흔히 고통을 보면 의미를 찾으려 한다.
고통이 인간을 더 강하게 만든다느니, 세상을 깨닫게 한다느니,
남에게 영감을 준다느니 하는 말들이 쉽게 나온다.
하지만 고통을 겪는 사람의 입장에서 보면, 이런 말들은 때로 잔인하다.
고통을 ‘이야기’의 재료로 만들고, 아픔을 ‘교육적 사례’ 정도로 줄여버리기 때문이다.
고통은 의미로 환원될 수 없다. 그 사람은 강해지기 위해 아픈 게 아니라,
그저 아픈 것이다.
지옥에서 태어난 사람에게
지옥을 이겨내라는 격려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저 지옥이 얼마나 차갑고 어두운지를
우리가 함께 본다는 사실이 더 중요할지 모른다.
고통 속에 있는 사람이 의미를 찾아야 한다는 법은 없다.
그 삶을 버텨내는 것 자체가 이미 모든 의미를 초월하고 있을 것이다.
오히려 의미는 그 사람이 아니라, 그 사람을 바라보는 우리의 책임 속에서 생긴다.
누군가의 고통은 우리의 무관심에 죄책감을 들게 하고,
우리에게 도덕적, 양심적 책임을 불러 일으킨다.
말하자면 그 사람이 우리에게 이렇게 말하고 있을지 모른다.
“나는 나의 고통을 위한 의미를 찾을 수 없지만,
너희는 이 고통을 보고 어떤 세상을 만들 것인지 결정할 수 있다.”
고통은 그 자체로 참혹하다.
하지만 그 참혹함을 보고 우리가 어떤 선택을 하느냐는
지옥 같은 세상을 조금이나마 덜 지옥답게 만드는 힘이 된다.
이 세상이 지옥이든 아니든,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결국 하나인 것 같다.
고통을 의미로 덮지 말고, 그 현실을 외면하지 않는 것.
고통받는 사람을 동정의 대상으로 만들거나, 영웅으로 만들거나,
철학적 도구로 삼지 않는 것.
그냥 그 사람이 겪는 고통을 그의 삶의 한가운데 놓여 있는 현실로 인정하고,
그로 인해 세상이 조금이라도 따뜻해지도록 우리가 행동하는 것.
그게 이 지옥 같은 세상에서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가장 인간적인 길이다.
또, 우리 중 누구도 그와 같이 되지 않으리란 확신이 없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모두 각자의 방식으로 작은 지옥을 안고 살아간다.
극단의 고통을 겪는 사람이든, 보이지 않는 상처를 품고 있는 사람이든
지옥은 크기만 다를 뿐, 각자에게 다가오는 중량은 비슷하다.
우리가 지옥 속을 함께 걷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순간,
우리는 지옥에 내던져진 존재에서
지옥을 이해하고 힘을 합쳐 다룰 수 있는 존재가 된다.
그리고 그 순간부터,
이 지옥 같은 세계도 조금은 견딜만해지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