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편적 복지에 대한 인식 전환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는 속담은 한국 사회의 한 단면을 보여준다. 누군가 잘되었을 때 기꺼이 축하하기보다, 왜 저 사람이 잘됐는지 이유를 따지고 흠을 먼저 찾는 태도는 지금도 낯설지 않다. 이런 모습은 흔히 자존감이 낮아서 생기는 문제로 설명된다. 어느 정도는 맞는 말이다. 다만 그 자존감이 왜 이렇게 취약해졌는지까지 함께 보지 않으면 설명은 반쪽에 그친다.
이 속담이 언제 만들어졌는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이 말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던 시대가 어떤 시대였는지는 짐작할 수 있다. 먹고 살기 힘들었고, 누군가 잘되면 그만큼 내 몫이 줄어든다고 느껴질 수밖에 없는 시대였다. “가난은 나랏님도 구제하지 못한다”는 말이 상식처럼 통하던 시기라면, 사촌이 땅을 사는 일은 축하할 일이 아니라 위협이었을 것이다. 그 시대의 시기심은 도덕의 문제가 아니라 생존의 문제였다.
그러나 지금은 그때와 같은 시대가 아니다. 지금의 사회는 절대적 결핍이 일상이던 시기를 이미 지났다. 부의 분배는 여전히 불균형하지만, 사회 전체의 생산력과 축적된 부의 규모만 놓고 보면 과거와는 비교할 수 없다. 이제 국가는 개인의 가난을 운명처럼 방치해야 하는 존재가 아니다. 최소한의 삶을 지탱할 수 있는 제도적·물질적 조건을 갖춘 시대다. 보편적 복지가 불가능해서 못 하는 시대는 이미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여전히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픈 감정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 이는 부족해서라기보다, 믿지 못해서 생기는 문제에 가깝다. 규칙이 공정하게 작동하지 않을 것이라는 의심, 누군가는 편법으로 이익을 챙길 것이라는 불안, 결국 나만 손해를 볼 것이라는 생각이 관대함을 가로막는다. 자존감의 문제처럼 보이지만, 그 밑바닥에는 사회 구조에 대한 불신이 깔려 있다.
이 문제는 앞으로 더 본질적인 차원에서 다시 등장할 가능성이 크다. 인공지능과 로봇의 시대가 본격화되면, 생산의 상당 부분은 인간이 아닌 기계가 담당하게 될 것이다. 어쩌면 로마 제국에서 로마 시민이 정복지의 노예를 부리며 살았던 구조와 비슷한 형태가 만들어질지도 모른다. 다만 그 노예가 인간이 아니라 기계라는 점만 다를 뿐이다.
문제는 생산이 아니라 소비다. 기계는 생산하지만 소비하지 않는다. 인간의 소득이 줄어들고, 가처분 능력이 사라지면 시장은 멈춘다. 이때 국가는 더 이상 복지를 도덕이나 연민의 문제로 다룰 수 없다. 경제를 굴리기 위해서라도 인간에게 소비할 수 있는 능력을 부여해야 한다. 이는 배려의 문제가 아니라 경제 순환의 문제다.
이 관점에서 보면 보편적 복지는 가난한 사람을 돕기 위한 제도에 그치지 않는다. 오히려 기계가 생산한 부가 다시 시장으로 돌아오게 만드는 거의 유일한 장치가 된다. 인간에게 최소한의 소득과 안정성을 보장하지 않으면, 아무리 생산성이 높아져도 경제는 움직이지 않는다. 국가는 시혜자가 아니라 순환의 설계자가 되어야 한다.
이렇게 보면, 지금 우리가 복지를 두고 벌이는 논쟁은 너무 과거의 언어에 머물러 있다. 아직도 복지를 “누가 더 가져가느냐”의 문제로만 바라본다. 그러나 다가올 시대의 복지는 “어떻게 경제를 계속 굴릴 것이냐”의 문제다. 관대함은 더 이상 도덕적 선택이 아니라, 구조적 필수가 된다.
그때가 되면 말의 의미도 달라진다.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픈 사회가 아니라, 사촌이 땅을 사니 이 또한 사회가 제대로 작동하고 있다는 신호로 받아들이는 사회다. 사촌이 땅을 사니 이 얼마나 좋은가라고 말할 수 있는 사회다. 부가 넘치는 시대, 그리고 기계가 생산을 맡는 시대에 걸맞은 관대함은 바로 그런 인식 위에서 가능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