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살률1위와 저출산은 같은 이유다

삶의 의미가 중요한 이유

by 구대은

“옛날이 좋았지. 그래도 그때는 인심도 좋고 이웃 간 우애도 좋아서 살기는 힘들어도 마음은 좋았지.”
흔히 말하는 쌍팔년도 시절, 지금 기준으로 보면 참 막고 살기 힘든 시대였다. 집도 변변치 않았고, 일은 고됐고, 사회 안전망이라는 말조차 생소하던 때다. 그런데 지금과 비교하면 아이러니하게 느껴지는 통계가 하나 있다. 바로 자살률이다.


1980년대까지 한국의 자살률은 인구 10만 명당 한 자릿수 수준에 머물렀다. 지금처럼 OECD 최고 수준이라는 말은 상상하기 어려웠다. 자살률이 눈에 띄게 오르기 시작한 시점은 1990년대 중후반, 정확히는 IMF 외환위기 전후다. 못살던 시절보다, 객관적으로 훨씬 풍요로워진 이후에 더 많은 사람들이 삶을 스스로 놓아버리기 시작했다는 뜻이다.


이 변화는 단순히 경제 상황이 나빠졌기 때문이라고 보기 어렵다. IMF 외환위기는 소득이 줄어든 사건이 아니라, 삶을 지탱하던 규칙이 바뀐 사건에 가까웠다. 평생직장은 사라졌고, 구조조정과 실업은 개인의 책임으로 받아들여지기 시작했다. 경쟁은 정상적인 삶의 조건이 되었지만, 경쟁에서 밀려났을 때 다시 설 수 있는 자리는 충분히 준비되지 않았다.


과거의 한국은 가난했지만 방향은 비교적 분명했다. 지금의 고생은 지나가는 과정이고, 언젠가는 나아질 것이라는 감각이 사회 전반에 깔려 있었다. 삶이 힘들어도 견딜 이유가 있었고, 그 이유는 개인의 마음가짐이 아니라 공동체의 분위기에서 나왔다. 반면 지금은 물질적으로는 풍요로워졌지만, 삶의 경로는 오히려 더 좁아졌다.


공부하고, 취업하고,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안정되는 삶은 여전히 표준처럼 남아 있다. 문제는 그 경로를 끝까지 갈 수 있다는 확신이 점점 사라지고 있다는 점이다. 더 큰 문제는 그 경로에서 벗어났을 때다. 실패는 다시 선택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라 낙오로 인식된다. 이 순간부터 삶은 흔들리는 것이 아니라, 의미를 잃는다.

자살률이 높은 이유는 고통이 많아서가 아니다. 고통을 견딜 이유가 잘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사회는 개인에게 책임을 돌리고, 국가는 미래를 이유로 현재를 버티라고 말한다. 살아 있음은 점점 의무가 되고, 살아갈 이유는 점점 희미해진다.


저출산과 인구감소 역시 같은 맥락에 있다. 아이를 낳는다는 것은 이 사회에서 살아가는 삶을 긍정하는 선택이다. 그러나 자신의 삶조차 감당하기 벅찬 상황에서, 같은 삶을 다음 세대에게 권하기는 쉽지 않다. 그래서 아이는 태어나지 않고, 어떤 이들은 아예 삶을 내려놓는다. 방향은 다르지만 출발점은 같다.


자살률 1위와 저출산·인구감소는 서로 어긋난 지표가 아니다. 한쪽에서는 삶을 떠나고, 다른 한쪽에서는 삶을 시작하지 않을 뿐이다. 국가는 인구를 걱정하지만, 개인은 지금의 삶을 걱정한다. 오래 살기를 요구하면서도, 오래 살아도 괜찮다는 확신을 충분히 주지 못하는 사회에서 이런 현상은 반복될 수밖에 없다.


결국 한국의 문제는 숫자가 아니다. 사람이 실패해도, 늙어도, 잠시 멈춰도 살아갈 수 있다고 느끼게 만드는 구조를 만들어 왔는가의 문제다. 옛날이 좋았다는 말 속에는 향수가 아니라, 그 시절에는 그래도 버틸 만했다는 감각이 숨어 있다. 지금의 한국 사회가 돌아봐야 할 지점은 바로 거기부터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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