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은 물질에서 오지 않는다: 유전자 기계론 비판

이기적 유전자 비판

by 구대은

최근 생물학계에서는 리처드 도킨스의 '유전자 결정론'과 데니스 노블의 '시스템 생물학' 사이의 논쟁이 뜨거웠다. 도킨스는 유전자가 주인이고 생명체는 그 생존을 위한 기계라고 주장하는 반면, 노블은 생명체라는 시스템이 유전자를 도구로 활용한다고 반박한다. "이기적 유전자 시대는 끝났다"는 선언은 과학의 패러다임이 변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그러나 이 정교한 과학적 논쟁을 한 걸음 물러서서 바라보면, 두 석학 모두 결정적인 하나를 간과하고 있음을 알게 된다. 그들은 생명을 구성하는 '메커니즘'을 논하고 있을 뿐, 정작 그 시스템을 살아 펄떡이게 하는 '생명(Life)' 그 자체의 기원에 대해서는 침묵하고 있다.


유전자는 창조가 반복되도록 허락된 언어

유전자는 생명의 설계도이지만, 결코 생명의 창조주는 아니다. 유전자는 스스로 살아 숨 쉬지 않는다. 그것은 마치 악보와 같다. 악보가 아무리 정교해도 연주자가 없으면 음악이 흐르지 않듯, 유전자라는 정보는 생명이라는 연주자가 있을 때 비로소 의미를 갖는다.

나는 유전자를 "우연한 화학물질의 집합"이 아니라, "창조가 반복 가능하도록 허락된 언어"라고 앞서 썼던 내 글<유전자와 영혼불멸>에서 정의했었다. 신의 생기(Breath of God)는 매번 개별 생명체를 직접 빚어내지 않고, 유전자라는 질서를 통해 생명이 세대와 세대를 이어 전승되도록 하셨다. 즉, 유전자가 영혼을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영혼이 이 물리적 세계에 머물고 작동하기 위해 유전자가 조건으로서 존재하는 것이다.


죽음이 증명하는 생명의 비물질성

생명이 물질로 환원될 수 없다는 사실은 역설적으로 '죽음'의 순간에 가장 명확히 드러난다. 죽기 직전의 인간과 죽은 직후의 시신을 비교해 보자. 물리적, 화학적 구성 성분은 단 1그램도 다르지 않다. DNA 배열도, 뇌세포의 구조도 그대로다. 그러나 전자는 '사람'이고 후자는 '사물'이다.

유기체를 구성하는 모든 물질이 그 자리에 있어도 생명은 없다. 이는 "유기체를 구성한다고 해서 생명이 있는 것은 아니다"라는 명백한 증거다. 과학은 심장이 멈추고 산소 공급이 끊겼다는 현상(How)은 설명하지만, 왜 방금 전까지 통합된 질서를 유지하던 그 존재가 순식간에 흩어지는가(Why)에 대해서는 답하지 못한다. 물질은 남았으나, 그 물질을 유의미한 존재로 통합하던 '생기'가 떠났기 때문이다.


기계를 넘어선 존엄

도킨스의 기계론이나 마르크스의 유물론은 모두 인간을 물질의 산물이나 생존을 위한 도구로 격하시켰다는 점에서 궤를 같이한다. 그들은 인간이라는 존재의 '껍데기(Hardware)'와 '조건(Environment)'을 분석하는 데는 성공했을지 몰라도, 그 안을 채우는 본질은 놓쳤다.

인류는 과학 기술을 통해 무기물에서 유기물을 합성하는 법은 터득했다. 하지만 그 유기물들을 아무리 정교하게 결합해도 스스로 대사하고 복제하는 생명체 하나를 만들어내지는 못한다. 유기물은 생명의 필요조건일 뿐, 충분조건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 '건널 수 없는 강'은 생명이 단순히 물질의 화학적 결합에서 우연히 발생한 것이 아님을 시사한다.


결론: 생명이 유전자를 의미 있게 한다

결국 유전자가 생명을 탄생시키는 것이 아니라, 생명이 유전자를 의미 있게 하는 것이다. 생명은 물질에서 저절로 솟아나지 않는다. 정보는 스스로 의미를 생성하지 않는다. 그 시작은 여전히 과학이 규명하지 못한, 혹은 규명할 수 없는 '생기'에 있다.

우리가 생명 그 자체에 초점을 맞추지 않고 유전자나 물질에만 매몰된다면, 인간은 성능 좋은 기계 부품이나 우연한 먼지 덩어리로 전락할 것이다. 인간이 기계가 아닌 존엄한 존재인 이유는, 우리의 육체가 정교해서가 아니라 그 안에 물질로 환원되지 않는 생명이 깃들어 있기 때문이다.


<덧붙임> 내가 인간의 생명에 대해서만 가치를 부여했으나, 이 내용은 당연히 모든 생명체에게 적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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