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화 잠들어 있는 것들
사망 시각은 오전 3시 17분이었다.
서현은 그 숫자를 몇 초간 바라보다가 태블릿을 내려놓았다. 모니터의 그래프는 이미 평평해졌고, 경고음은 울리지 않았다. 울릴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심장은 멈췄고, 호흡은 사라졌으며, 의료적으로는 모든 절차가 끝난 상태였다.
그런데도 방 안은 이상하리만큼 조용하지 않았다.
그는 손목 시계를 보았다. 초침이 지나치게 또렷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살아 있는 사람에게만 허락된 소리처럼 느껴졌다. 서현은 잠시 그 소리를 따라가다 고개를 들었다. 금속 테이블 위에 누운 남자의 가슴은 미동도 없었지만, 피부에는 아직 온기가 남아 있었다.
“사망 확인 끝났습니다.”
연구원이 말했다. 서현은 고개를 끄덕이지도, 대답하지도 않았다. 그는 천천히 장갑을 끼고 테이블 옆으로 다가갔다. 기계는 꺼져 있었고, 관은 아직 닫히지 않았다. 모든 것이 ‘죽음 직후’라는 상태에 정확히 멈춰 있었다.
서현은 남자의 손등에 손가락을 얹었다.
차갑지 않았다.
“기다려 주세요.”
그의 목소리는 낮았지만 단호했다. 연구원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한 발 물러섰다. 이 방에서는 늘 그랬다. 서현이 기다리라고 말하면,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이유를 묻지 않는 것이 이곳의 규칙이었다.
서현은 모니터를 다시 켰다. 일반적인 생체 신호는 모두 사라졌지만, 다른 창 하나가 아직 활성화되어 있었다. 숫자와 파형이 느리게, 그러나 분명히 움직이고 있었다.
DIR-B.
그가 붙인 이름이었다. 생명 에너지 결속 지표. 공식 용어도, 학회에서 승인받은 개념도 아니었다. 아직은 가설에 불과했다. 그러나 서현은 그 파형을 누구보다 오래 봐 왔다.
사망 판정 이후에도, 이 수치는 바로 사라지지 않았다.
그는 처음 그 사실을 발견했을 때, 자신의 눈을 믿지 않았다. 재현을 했고, 기록을 남겼고, 조건을 바꿨다. 결과는 같았다. 심장이 멈춘 뒤에도, 뇌 활동이 완전히 꺼진 뒤에도, 무언가는 잠시 남아 있었다. 열도 아니고, 전기도 아니고, 화학 반응도 아닌 무언가.
흩어지지 않고, 방향을 유지하는 상태.
서현은 모니터에 시선을 고정한 채 말했다.
“아직입니다.”
연구원이 숨을 삼켰다.
“사망한 지 4분 지났습니다.”
“알아요.”
서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지금입니다.”
그는 준비된 장치를 꺼냈다. 크지도, 복잡하지도 않은 장비였다. 생명을 살리는 기계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오히려 무언가를 붙잡으려는 손에 가까웠다.
그 순간, 문이 열렸다.
윤정호였다.
그는 흰 가운을 입고 있지 않았다. 늘 그렇듯, 단정한 정장 차림이었다. 윤정호는 방 안을 한 번 훑어본 뒤, 서현과 테이블 위의 남자를 차례로 바라봤다. 표정은 변하지 않았다.
“여기까지 하자.”
그의 목소리는 낮았고, 감정은 실려 있지 않았다. 명령처럼 들리지도 않았다. 그럼에도 방 안의 공기가 미세하게 바뀌었다.
서현은 고개를 들지 않은 채 말했다.
“아직 남아 있습니다.”
윤정호는 한 발 다가왔다. 그는 모니터를 보지 않았다. 대신 남자의 얼굴을 바라봤다. 숨이 멈춘 얼굴을, 오래된 습관처럼.
“그건 생명이 아니다.”
“그건 우리가 아직 이름 붙이지 못한 상태입니다.”
서현이 말했다.
“죽음도 아닙니다.”
윤정호는 잠시 침묵했다. 그리고 아주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서현아.”
그는 서현을 이름으로 불렀다. 그때마다 서현은 어릴 적 병실의 냄새를 떠올리게 되었다. 약품과 금속과 밤의 냄새가 섞인, 그때의 공기.
“잠들어 있는 거다.”
윤정호가 말했다.
“깨우는 게 아니라.”
서현은 손을 멈췄다. 모니터의 파형이 아주 조금, 눈에 띄게 흔들렸다. 수치는 천천히 내려가고 있었다. 시간이 많지 않다는 뜻이었다.
서현은 윤정호를 바라봤다.
“잠이라면,”
그가 조용히 말했다.
“왜 이렇게 빨리 사라집니까.”
윤정호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는 한 걸음도 물러서지 않았다. 대신 서현의 손과 장치를 번갈아 보며 말했다.
“네가 그걸 붙잡는 순간,”
“우리는 경계를 넘는다.”
서현은 숨을 들이마셨다. 그리고 처음으로, 망설였다.
모니터의 수치가 한 단계 더 내려갔다.
방 안에는 살아 있는 사람과, 죽은 사람과, 아직 이름 없는 상태가 함께 있었다.
그리고 서현은 그 셋 중 무엇을 선택해야 할지 알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