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화 설득의 시간
서로의 대화가 끝나자, 이연주는 노트를 덮었다. 고개를 들지 않은 채 정리부터 했다.
“그 단계면 연구실 안에서 끝나는 일은 아닙니다.”
“누군가의 사망선고를 지켜보고 있어야 한다는 건데.”
서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연주는 감정을 섞지 않았다. 필요한 조건만 말했다.
“장비는 준비 가능합니다. DIR-B도 안정 구간까지는 확보돼 있습니다.”
“다만 팀장님 혼자서는 안 됩니다.”
“사망을 선언할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그 사람이, 짧은 시간 동안 눈을 돌릴 수 있어야 합니다.”
서현은 이미 알고 있었다.
“알아.”
“그 정도 리스크를 감수할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한 명 있어.”
이연주가 고개를 들었다.
“연구 협력자요?”
“아니.”
“그럼요?”
“친구.”
이연주는 더 묻지 않았다.
이건 연구를 마무리하기 위해서 어떻게든 꼭 해야 할 일이기 때문이다.
서현이 친구 김도윤에게 전화를 건 건 그날 밤이었다.
김도윤은 서현의 의대 동기였다. 같이 입학했고, 같은 병동에서 수련의를 보냈다. 전공은 달랐지만, 밤샘 당직을 함께 서며 서로의 판단을 수없이 확인해 온 사이였다. 김도윤은 감정이 앞서는 사람이 아니었고, 쓸데없는 희망을 말로 만들지 않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응급실에 남았고, 그래서 지금까지 버티고 있었다.
“야.”
“지금 좀 괜찮아?”
“응급실이야. 급한 건 아닌데, 왜?”
서현은 바로 말을 꺼내지 않았다.
“시간 좀 내라.”
“연락도 뜸하더니 갑자기?”
“전화로 할 얘기 아니다.”
김도윤이 짧게 웃었다.
“그 말 나오면, 보통 좋은 얘기 아니더라?”
“응. 안 좋아.”
잠시 침묵. 모니터 알람 소리가 멀어졌다.
“언제 보자고?”
“네 퇴근 시간 맞출게.”
“무슨 일인지 대강이라도 알려주면 안 돼?”
“지금 말하면, 넌 안 나올 거라서.”
김도윤이 한숨을 쉬었다.
“알겠다. 병원 근처다. 오래는 못 앉아.”
“충분해.”
일식집은 조용했다. 안쪽 개인룸, 문이 닫히자 외부 소음이 끊겼다.
김도윤은 가운을 벗어 옆에 걸고 앉았다.
“여기까지 부를 정도면, 진짜 심각한 거 맞지?”
“응.”
“말해.”
서현은 물을 한 모금 마셨다.
“의학적 사망이랑, 실제로 끝나는 순간 사이에 시간차 있다는 거 알지?”
“알지.”
“교과서에도 나오는 얘기잖아.”
“우리는 그걸 그냥 오차로 처리해 왔고.”
“오차니까.”
서현은 고개를 저었다.
“나는 그게 오차가 아니라, 다른 기준선이라고 본다.”
김도윤의 표정이 굳었다.
“서현아. 또 무슨 사고를 치려고 그러는걸까.”
“그래서 전화로 안 한 거야.”
김도윤은 젓가락을 내려놨다.
“사망선고 이후 얘기지?”
“응.”
“그 선은 그냥 넘어갈 수 있는 선 아니다.”
“알아.”
“알면 왜 나를 불렀어?”
“네가 그 선을 어디까지로 보는지, 정확히 아는 사람이니까.”
김도윤은 잠시 서현을 바라봤다.
“사망선고가 끝이 아닌 건 나도 알아.”
“임상적 사망이랑 생물학적 사망은 다르니까.”
서현은 말하지 않았다.
“심장 멎고 숨 끊겨도, 세포는 바로 다 죽지 않지.”
“근데 뇌는 다르잖아.”
“혈류 끊기고 4~6분 지나면, 거기서부터는 비가역이 되거든.”
“10분 넘으면, 그건 끝이야.”
서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네가 필요해.”
김도윤의 눈썹이 올라갔다.
“지금 그 말은?”
“사망선고 이후, 뇌 손상 구간 안쪽을 건드리겠다는 얘기야?”
“맞아.”
"뭘 건드린다고?"
"사망 후 빠져나가는 생명 에너지."
"그게 뭔데?"
김도윤이 바로 웃었다.
“야.”
“갑자기 왜 그런 단어가 나오냐?”
“나도 그 말 말고는 설명이 안 된다.”
“서현아.”
“그건 의학 용어도 아니고, 과학 용어도 아니야.”
“알아.”
“알면서 왜 쓰는데.”
서현은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
“다른 말로 하면 더 헷갈린다.”
김도윤은 한숨을 쉬었다.
“다시 물을게. 그래서 의학적으로 그게 뭔데?”
“의학적으로 정확히 뭐라고 말할 수는 없고,"
"사망선고 나면.”
“몸에서 뭔가 빠져나간다.”
“뭔가가 혹시 영혼 말이야?”
김도윤은 또 한 번 웃었다.
“그럼 니가 그 영혼을 잡겠다고?”
“이해하기 쉽게 말하면 그렇게도 볼 수 있는데, 그건 또 아냐.”
“그럼 측정 가능한 무형의 뭔가가 있다는 말이야?”
“맞아.”
“뭘로 측정하는데?”
“내가 임의로 만든 지표가 있어.”
“DIR-B.”
“그게 뭐 약자냐?”
“굳이 따지면 생명 에너지 결속 지표.”
“공식 용어는 아니다.”
김도윤이 고개를 저었다.
“서현아.”
“지금 네가 하는 말, 학회에서 하면 바로 쫓겨난다?”
“그래서 학회 안 간다.”
“그럼 그 DIR-B라는 게.”
“언제 반응하는데?”
“사망선고 이후에만.”
“그 전에는?”
“전혀 안 움직인다.”
김도윤의 웃음기가 조금 사라졌다.
“심정지 상태에서도?”
“안 움직인다.”
“뇌사 판정 이후에는?”
“이미 늦다.”
“그럼 딱 그 사이네?”
“그래.”
김도윤이 테이블을 가볍게 두드렸다.
“서현아.”
“그럼 그게 있다는 가정하에.”
“사람이 죽으면 그건 무조건 흩어지냐?”
“지금까지는.”
“붙잡은 적은?”
“없다.”
“그래서 이번이 처음이다?”
김도윤은 한숨을 쉬었다.
“야.”
“그걸 왜 하려고 하는데.”
서현은 잠시 말을 멈췄다가 말했다.
“안 붙잡으면.”
“아무도 그게 뭔지 모른 채로 끝나니까.”
김도윤은 더 묻지 않았다.
이미 질문의 방향이 바뀌고 있었다.
“시간은 사망선고 후 10분이다.”
“그리고 그 몇 분은, 내가 통제할 수 있을 때만이다.”
서현은 바로 말했다.
“그래서 네 판단 이후에만 한다.”
김도윤은 한숨을 쉬었다.
“그건 나보고 너의 그 허무맹랑한 실험의 공범이 되라는 말이네.”
“맞아.”
조용해졌다. 개인룸 안에는 접시 부딪히는 소리만 남았다.
“혹시라도 네가 성공해서 그 사람이 살아나면.”
김도윤이 말했다.
“혹시라도 네가 성공하면 내 사망선고가 잘못됐다는 말이 되는데?”
“그건 네가 좀 이해해줬으면 좋겠어."
"그래도 어떻게 보면 한 사람 살리는 거잖아."
김도윤은 술잔을 들어 한 모금 마셨다. 오래 잡고 있다가 내려놓았다.
“한 번이다.”
서현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사망선고 이후, 뇌 손상 구간 안에서만.”
“그 안에서 네가 끝내라.”
“그 이상은 없다. 기록은 내가 감당한다.”
“네가 틀리면, 이 일은 여기서 끝이다.”
“알겠다.”
김도윤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야.”
“응.”
“이거 성공하면, 너 혼자 일 아니다.”
서현은 그 말의 무게를 알고 있었다.
문이 닫혔다.
서현은 혼자 남았다.
설득은 끝났다.
이제 남은 건, 의학이 아닌 순간을 실제로 통과하는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