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연재] Life Still

제7화 신의 생기(生氣), 그리고 덫

by 구대은

전화가 끊겼지만, 서현은 휴대폰을 귀에서 떼지 않았다. 액정은 이미 검게 변해 있었다. 그 검은 화면 속에 자신의 무표정한 얼굴이 비쳤다. "왜 저를 살리셨나요." 박민석의 마지막 질문이 환청처럼 귓가를 맴돌았다. 서현은 천천히 휴대폰을 주머니에 넣었다.


발걸음을 옮겼다. 병원 로비는 오후의 면회객들로 붐볐다. 휠체어를 미는 보호자, 커피를 든 전공의, 울음을 터뜨리는 아이. 삶에 매달리는 사람들의 소음이 거대한 파도처럼 밀려왔다. 서현은 그 소음들 사이를 유령처럼 통과했다. 그가 향하는 곳은 이 소란스러운 삶의 정반대 편, 지하 2층 영안실이었다.


육중한 철문을 밀었다. 끼익, 하는 소리와 함께 차가운 공기가 폐부로 들어왔다. 그곳에 김도윤이 있었다. 그는 시신이 안치된 스테인리스 베드 옆에 서서, 모니터에 출력된 사망 직전의 데이터 로그를 뚫어지게 보고 있었다.


"왔냐." 인기척을 느낀 김도윤이 고개를 돌렸다. 그의 눈은 충혈되어 있었지만, 그것은 슬픔 때문이 아니었다.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현상을 목격한 과학자의 광기 어린 혼란이 서려 있었다.

서현은 말없이 다가가 흰 천을 걷었다. 박민석이었다. 목에 남은 선명하고 검붉은 삭흔(索痕). 망설임 없는 죽음의 의지.


"실패야." 서현은 건조하게 내뱉었다. 그러자 김도윤이 거칠게 웃음을 터뜨렸다. 비웃음이 아니었다. 감탄과 공포가 뒤섞인 웃음이었다.

"실패? 이 자식이 목을 매단 건 실패겠지. 하지만 서현아..." 김도윤이 데이터 시트를 서현의 가슴팍에 들이밀며 소리쳤다. "이건 실패가 아니야. 이건... 기적이야."

서현이 눈썹을 꿈틀했다. 김도윤의 손끝은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내가 확인했어. 사망 선고 후 23분." 김도윤이 숫자를 강조했다. "의학적으로 심정지 후 5분이면 뇌 손상이 시작되고, 10분이 넘어가면 뇌사(Biological Death)가 확정돼. 20분이 넘으면? 그건 그냥 단백질 덩어리야. 돌이킬 수 없다고."


김도윤은 시신을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그런데 네가 그 기계를 돌리자마자 뇌파가 정상 범위로 돌아왔어. 손상된 구역 하나 없이, 기억과 인지 능력이 완벽하게 복구됐다고. 넌 현대 의학의 절대적 기준인 '비가역적 시점'을 깨부순 거야."


"그릇이 깨져 있었을 뿐이야." 서현은 덤덤하게 대답하며 가방을 열었다. "세포가 죽는 건 혈류가 멈춰서가 아니야. 에너지가 빠져나갔기 때문이지. 그게 내 가설이었고, 박민석은 그걸 증명했어."

"그 증명이라는 게 도대체 뭐냐고!" 김도윤이 답답하다는 듯 서현의 어깨를 잡았다. "메커니즘을 설명해. 며칠 전 응급실에서 봤던 그 기계 말이야."


김도윤의 머릿속에 그날 밤의 광경이 생생하게 되감겼다. 표면은 빛을 흡수하는 무광 흑연(Graphite) 재질이었고, 측면에는 냉각을 위한 방열판이 촘촘하게 박혀 있었다. 전원을 켰을 때, 기계는 소음을 내는 대신 주변의 공기를 빨아들이듯 낮게 진동했다. 그것은 마치 MRI 기계의 핵심 부품을 억지로 뜯어내 휴대용으로 개조한 듯한, 불안하고 위험해 보이는 형상이었다.


"마치 영화 <고스트버스터즈>에 나오는 유령 덫(Ghost Trap)의 실사판 같았어." 김도윤의 눈빛이 탐구심으로 번들거렸다. "보이지 않는 무언가를 강제로 빨아들여 가두는... 그 말도 안 되는 기계가 실제로 작동했어. 서현아, 넌 의사야. 공학자가 아니고. 도대체 저런 걸 어떻게 만든 거야?"


서현은 김도윤의 눈을 피하지 않았다. 친구의 호기심이 어디서 비롯되었는지 알고 있었다. 죽음을 다루는 의사로서 느낄 수밖에 없는 전율. "내가 만든 게 아니야. 나는 단지 개량했을 뿐이지. 20년 전, 윤정호 교수님이 남긴 설계도를."

"윤 교수님이...?" 김도윤의 눈이 커졌다.

서현은 태블릿을 꺼내 빛바랜 연구 노트를 보여주었다.


[ 창세기 2장 7절. 生氣 (생기) ]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 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된지라”


낡은 종이 위에 만년필로 꾹 눌러쓴 글씨였다.

"생기." 서현이 글자를 손가락으로 짚으며 말했다. "날 생(生)에 기운 기(氣). 말 그대로 생명 에너지야. 교수님은 성경에서 말하는 '숨결'을 종교적 비유가 아니라, 모든 세포를 살아있게 만드는 물리적 동력원으로 해석하셨어."

"세포?" "그래. 이 에너지는 뇌에만 있는 게 아니야. 우리 몸을 구성하는 60조 개의 세포 하나하나에 전압처럼 결속되어 있어."


서현은 화면을 넘겼다. 장기 이식 관련 논문들이 스크랩되어 있었다. "현대 의학의 미스터리 중 하나인 '세포 기억설(Cellular Memory)'. 심장을 이식받은 사람이 기증자의 식성을 갖게 되거나, 낯선 기억을 떠올리는 현상 알지?" "알지. 하지만 그건 가설일 뿐..." "아니, 사실이야." 서현이 단호하게 말을 잘랐다. "장기가 이동하면, 그 세포에 붙어 있던 '생기'의 일부도 같이 이동해. 그 에너지는 정보를 담고 있거든. 이식된 장기의 잔류 에너지가 수혜자의 뇌를 역으로 자극하면, 기증자의 기억이 재생되는 거야."


김도윤은 멍하니 입을 벌렸다. "그럼... 윤 교수님은 그 에너지 전체를..." "통째로 포획해서 다시 몸에 묶어두는 기술을 완성하신 거야. 20년 전에 이미?"

서현은 화면을 넘겨 한 남자의 사진을 보여주었다. 젊은 시절의 강태준이었다. "강태준이 두 번째였어. 뇌사 상태였다가 죽었던 그를 이 기술로 되살려냈지. 육체는 완벽하게 돌아왔어. 하지만..."


"하지만?" 김도윤이 침을 삼켰다.

"돌아온 건 강태준이면서 강태준이 아니었어. 감정은 소거되고 생존 본능만 남은 괴물. 교수님은 그걸 보고 연구를 덮으신 거야."

김도윤은 할 말을 잃었다. 강태준, 대한민국 최고의 바이오 기업 총수. 그가 죽음에서 돌아온 존재였다니. 모든 퍼즐이 맞춰지는 기분이었다. "그럼 너는... 그 위험한 실험을 계속하겠다는 거야? 또 다른 강태준을 만들려고?"

"확인해야 하니까." 서현은 자신의 가슴에 손을 얹었다. "강태준이 두 번째라면, 첫 번째는 누구였을까?"

"설마..."

"나였어." 서현의 짧은 대답에 영안실의 공기가 얼어붙었다.

김도윤은 숨을 멈췄다. 서현의 눈을 다시 보았다. 언제나 차분하다 못해 서늘했던 친구의 눈빛. 그 이질감의 정체가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15살 때, 나도 죽었다가 돌아왔어." 서현은 주먹을 꽉 쥐었다. "내가 느끼는 이 공허함, 타인과 섞이지 못하는 감각. 이게 내 천성인지, 아니면 나 역시 '재조립된 생명'의 부작용인지 알아야겠어."

서현은 태블릿을 닫았다. "박민석은 너무 약했어. 관찰을 위해서는 더 강력한 대상이 필요해." 그의 목소리에는 망설임이 없었다. "죽고 싶어 하는 놈 말고. 살고 싶어서, 지옥을 씹어 먹어서라도 이승에 기어오르고 싶어 하는 지독한 놈이 필요해."


김도윤은 잠시 말을 잃었다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얼굴에서도 두려움보다는 호기심이 더 짙게 배어 나오고 있었다. 판도라의 상자는 열렸다. 의사로서의 윤리보다, 과학자로서의 본능이 앞서기 시작했다.


"찾아보자." 김도윤이 말했다. "지옥에서라도 기어 나올 놈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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