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연재] Life Still

제9화 포획

by 구대은

인터넷 신문 [위클리 팩트]의 기사가 터진 다음 날, 병원 감사팀이 들이닥친 건 오전 9시였다. 응급의학과 의국은 쑥대밭이 되었다. 공용 컴퓨터 하드디스크가 압수되었고, 간호사들은 불려 다니며 진술서를 써야 했다. 김도윤은 대기발령 조치를 받았다. 사실상의 업무 정지였다.


"미치겠군." 김도윤은 병원 옥상 난간에 기대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손이 덜덜 떨렸다. "내 의사 인생은 끝났어. 감사팀이 로그 기록 뒤지는 건 시간문제야. 면허 취소는 기본이고, 형사 고발까지 당할 거야. 보험 사기라니..."

"오히려 잘됐어." 옆에 서 있던 서현이 건조하게 말했다. 그는 아래쪽 주차장으로 몰려든 기자들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병원의 감시망이 네 차트 기록에만 쏠려 있어. 역으로 생각하면, 시선이 닿지 않는 곳은 자유롭다는 뜻이지."

김도윤이 기가 차다는 듯 서현을 쳐다봤다. "자유? 서현아, 넌 상황 파악이 안 되냐? 우린 지금 범죄자 취급을 받고 있다고!"


"도윤아." 서현이 김도윤의 담배를 뺏어 바닥에 비벼 껐다. "어차피 병원 안에서의 실험은 끝났어. 늙고 병든 육체로는 한계가 명확해. 에너지를 주입해도 밑 빠진 독처럼 새 나갈 뿐이야."

서현은 김도윤의 눈을 똑바로 응시했다. "우린 '빈 집'이 필요해. 주인이 자리를 비웠지만, 보일러는 멀쩡하게 돌아가고 있는 집."

"빈 집이라니... 설마."

"식물인간." 서현의 입에서 금기어가 나왔다. "뇌사는 안 돼. 뇌세포가 죽으면 하드웨어가 망가진 거야. 대뇌는 멈췄지만 뇌간은 살아있는 식물인간 상태여야 해. 그래야 전원을 다시 넣었을 때 온전히 돌아와."

김도윤이 펄쩍 뛰었다. "야! 식물인간은 법적으로 살아있는 사람이야! 뇌사랑은 다르다고! 뇌사는 장기 기증이라도 하면 사망 인정이라도 받지, 식물인간을 건드리는 건 그냥 살인이야!"

"알아. 그래서 딜레마야." 서현은 괴로운 듯 마른세수를 했다. "합법적으로는 구할 길이 없어. 하지만 확인해야 해. 내 가설이 맞는지, 그리고... 내가 괴물이 아닌지."


그는 말끝을 흐렸다. 15살, 전신 사망 직후 되살아난 자신. 그리고 불완전한 시신 소생 실험들. 그 사이의 간극을 메우고 비교할 '완벽한 대조군'이 절실했다.


지하 3층 주차장. 저녁이 되어서야 조사실에서 풀려난 김도윤은 차에 시동을 걸려다 멈칫했다. 백미러 속에 검은 양복을 입은 사내들이 비쳤다. 그들은 김도윤의 차를 에워싸고 있었다. 조폭이라기엔 너무 세련된, 대기업 회장의 경호실 직원 같은 차림새였다.

똑똑. 운전석 창문을 두드리는 소리. 김도윤이 창문을 조금 내리자, 말끔하게 생긴 중년 남자가 명함을 내밀었다.


[해온 바이오 그룹 비서실장 김진수]

"김도윤 교수님 되십니까." "누구시죠? 전 할 말 없습니다." "강태준 회장님께서 차 한잔하시잡니다."

"강태준 회장...?"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모를 수 없는 이름. 하지만 의사인 자신이 그와 엮일 일은 없었다. "거절하겠습니다. 지금 상황이 안 좋아서요."

김도윤이 창문을 올리려 하자, 김 실장이 품에서 서류 봉투 하나를 꺼내 창틈으로 밀어 넣었다. "이걸 보시고도 거절하실 수 있을까요?"

김도윤은 떨리는 손으로 봉투를 열었다. 그 안에는 김도윤이 조작했던 응급실 사망 진료 기록의 원본, 그리고 수정된 로그 데이터가 비교되어 있었다. 병원 감사팀조차 아직 확보하지 못한 결정적인 증거였다.

"이게 경찰로 넘어가면 어떻게 될까요?" 김 실장이 정중하게 미소 지었다. "단순한 의료법 위반이 아니라 사기죄까지 추가되겠죠. 회장님은 조용히 대화로 풀고 싶어 하십니다."

김도윤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선택지는 없었다. "......타겠습니다."


차는 도심을 벗어나 해운대 달맞이 언덕의 요새 같은 저택으로 들어갔다. 김도윤은 거실 소파에 앉아 10분째 기다리고 있었다. 실내 온도가 기이할 정도로 높았다. 마치 사우나에 들어온 듯 후끈한 열기가 감돌았다.

"어서 오게, 김 교수."

등 뒤에서 굵직한 목소리가 들렸다. 김도윤이 벌떡 일어나 뒤를 돌아보았다. 그리고 흠칫 놀랐다.

강태준이었다. 그는 휠체어에 앉은 노인이 아니었다. 방금 격렬한 운동을 마친 듯 트레이닝복 차림이었는데, 50대 중반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근육이 터질 듯 팽팽했다. 기괴한 것은 그 건장한 육체 위에 두꺼운 밍크 코트를 걸치고 있다는 점이었다.


"더운가?" 강태준이 입김을 호호 불며 다가왔다. 그의 손에는 따뜻한 위스키 잔이 들려 있었다. "난 추워. 뼛속까지 시리거든. 아무리 보일러를 때고 운동을 해서 열을 내도, 이놈의 몸뚱이가 열기를 담아두질 못해."

김도윤은 마른침을 삼켰다. 눈앞의 남자는 멀쩡히 서서 걸어오고 있었지만, 생기가 없었다. 마치 정교하게 세공된 밀랍 인형이 움직이는 듯한 이질감. 하드웨어는 완벽한데, 연료가 새고 있는 기계. 그것이 강태준의 실체였다.


"회장님께서... 왜 저를..."

"궁금한 게 있어서 불렀네." 강태준이 소파에 털썩 앉으며 다리를 꼬았다. 넘치는 활력과 텅 빈 눈동자의 부조화가 김도윤을 압도했다. "기사에 난 그 환자들. 자네가 살린 건가?"

"그, 그게 무슨..." "거짓말할 생각 마. 내 정보력은 자네 상상을 초월해. 유가족 증언에 따르면, 환자가 깨어나서 춥다고 했어. 배가 고프다고 했고. 맞나?"

김도윤은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네, 맞습니다. 극심한 한기를 호소했습니다."

"역시." 강태준이 씩 웃었다. "밑 빠진 독이야. 에너지를 부으면 뭐해? 줄줄 새는데. 그 환자들도 나처럼 이 지독한 추위를 느꼈겠지."

"회장님... 처럼이라뇨?"

"나도 20년 전에는 자네 환자들과 똑같았거든." 강태준의 눈빛이 번들거렸다. "뇌사 판정을 받고 일주일이나 지났었지. 뇌가 흐물흐물해진 뒤에, 윤정호 박사가 억지로 날 다시 일으켜 세웠어. 내 심장에 남아있던 집념을 뇌로 쑤셔 박아서 말이야."


김도윤의 입이 벌어졌다. 며칠 전 서현이 보여준 윤정호 교수의 연구 노트, 그 속에 있던 '두 번째 성공 사례'가 바로 눈앞에 있었다.

"덕분에 살아는 났지만... 부작용이 좀 있더군." 강태준이 자신의 머리를 톡톡 쳤다. "머리는 예전보다 더 비상해졌는데, 거추장스러운 것들이 사라졌어. 슬픔, 죄책감, 동정심 같은 것들. 뇌세포가 너무 많이 죽은 뒤에 깨어나서 그런가 봐. 뭐, 사업가로서는 축복이지."

강태준이 씩 웃었다. 섬뜩한 미소였다. "하지만 이 몸뚱이는 이제 유통기한이 끝났어. 에너지 효율이 똥망이야. 그래서 자네 친구가 필요한 거야."

강태준이 손을 내밀었다. "진짜를 불러. 이 기술을 설계한 놈."


김도윤은 떨리는 손으로 전화를 걸었다. 신호가 몇 번 가기도 전에 서현이 받았다.

"어, 도윤아." "서현아... 나야. 여기 해온 바이오 강태준 회장님 댁이야. 회장님이 널 찾으셔."

"바꿔줘."

김도윤이 휴대폰을 강태준에게 넘겼다. 스피커폰이 켜졌다.

"서 선생인가. 윤정호 박사의 제자라고 들었네." "강태준 회장님. 살아계셨군요. 아직은."

수화기 너머 서현의 목소리는 건조했다.

"내 꼴을 김 교수에게 들었겠지. 자네 가설이 맞아. 뇌사자도 살릴 수 있어. 내가 그 증거니까."

"......그랬군요." 서현의 목소리에 확신이 찼다. "회장님이 보여주신 '감정 결여'와 '에너지 누수'. 그건 회장님이 뇌사 상태에서 되살아났기 때문입니다. 하드웨어가 손상된 상태에서 억지로 부팅했으니, 인격 데이터가 깨진 거죠."

"호오. 정확하군."

"그래서 전 뇌사자는 안 씁니다. 실패작이 나올 게 뻔하니까요." 서현이 단호하게 말했다. "전 식물인간을 원합니다. 뇌간이 살아있는, 싱싱한 하드웨어 말입니다."

전화기 너머로 잠시 침묵이 흘렀다. 강태준이 입맛을 다셨다. "서 선생. 식물인간은... 법적으로 살아있는 사람이야. 건드리면 살인이지. 게다가 의식이 없어도 무의식은 살아있어. 꽤 까다로운 재료야."

"법? 윤리?" 서현이 코웃음을 쳤다. "회장님 창고에는 그런 걸 무시할 수 있는 재료들이 있지 않습니까? 보호자도 없고, 세상에서 잊힌 사람들. 돈으로 다 해결해 둔."

"......"

"어떤가요? 회장님도 원하지 않습니까? 저번처럼 깨진 그릇(뇌사자) 말고, 이번엔 완벽한 새 차(식물인간)로 갈아타는 거."

강태준의 눈이 커졌다. 이놈은 물건이었다. 자신보다 더 미친놈일지도 몰랐다.

"하하하! 좋아. 아주 마음에 들어." 강태준이 무릎을 쳤다. "그래, 내 창고에 '관리' 잘 된 재료들이 꽤 있지. 어떤 건 주워왔고, 어떤 건... 내가 직접 만들기도 했고."

강태준이 의미심장하게 덧붙였다. "아주 싱싱하게 재워뒀으니 걱정 마."

"조건이 있습니다." 서현이 쐐기를 박았다. "실험체 선별과 소생 후 관찰 통제권은 제가 갖습니다. 전 확인해야 할 게 있으니까요."

"관찰이라... 자네가 괴물인지 아닌지 확인하고 싶은 건가? 좋아, 마음대로 해."

"그리고 김 교수 털끝 하나라도 건드리면 거래는 없습니다."

"하하하! 배짱 한번 두둑하군. 어서 오게. 내 농장으로 안내하지."


전화가 끊겼다. 강태준은 밍크 코트를 여미며 소파 깊숙이 몸을 묻었다. 드디어 만난다. 자신을 구원하고, 동시에 파멸로 이끌 수도 있는 유일한 동류(同類)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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