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1화 리셋
이연수 수석연구원이 B1층 강태준의 인간농장(?)에 도착했다. 그녀는 김 실장의 감시를 받으며 큼직한 하드 케이스 두 개를 끌고 들어왔다.
"팀장님!" 이연수는 공포에 질린 얼굴로 서현을 불렀다. "이게 다 무슨... 김 실장님이 제 동생 학교까지 들먹이며 협박을..."
"미안해, 연수야. 하지만 지금은 네가 필요해." 서현이 그녀를 진정시키며 케이스를 열었다.
조립은 신속하게 진행되었다. 이미 수차례의 성공을 거둔 장비였다. 이연수는 눈을 감고도 조립할 수 있을 만큼 능숙하게 본체를 세팅했고, 포획기가 연결된 케이블을 풀어 서현에게 건넸다.
"준비됐어?" 서현이 포획기를 손에 쥐며 물었다. 묵직한 그립감이 손바닥에 전해졌다.
이연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 DIR-B 수신 대기 중. 센서 감도 정상입니다."
"도윤아." 서현이 김도윤을 불렀다. "시작해."
김도윤이 주사기를 든 채 머뭇거렸다. 그는 서현이 쥐고 있는 포획기를 불안하게 쳐다봤다. "저거... 미리 씌워두면 안 돼? 타이밍 놓치면 어떡해."
"안 돼." 서현이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이건 호흡기가 아니라 진공 흡입기야. 미리 씌우면 숨을 못 쉬어서 질식사해. 고통 속에 죽으면 에너지가 오염된다. 심장이 멈추고 폐가 정지하는 그 순간, 마지막 날숨만 정확히 빨아들여야 해."
"......미친 완벽주의자." 김도윤은 질린다는 듯 혀를 찼다. 하지만 그 설명 덕분에 그가 왜 정확한 타이밍에 주사를 놓아야 하는지 명확해졌다.
"할게... 금방 깨워줄게요." 김도윤은 눈을 질끈 감고 환자의 정맥 라인에 KCl(염화칼륨, 심정지 유도제)을 주입했다.
[삐----------]
심전도 모니터가 긴 직선을 그렸다. 심정지. 환자 박철민의 가슴이 푹 꺼졌다.
그 순간, 이연수가 외쳤다. "타겟 포착! 에너지가 이탈합니다!"
"포획."
서현이 기다렸다는 듯 포획기를 환자의 얼굴 위로 가져다 댔다. 그의 손가락이 핸드피스의 버튼을 누르자, 이연수가 본체의 출력을 올렸다.
우우웅- 낮은 구동음과 함께, 환자의 입에서 빠져나오던 '마지막 숨'이 허공으로 흩어지지 않고 서현의 손에 들린 기계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서현은 손끝으로 느껴지는 미세한 진동을 통해 알 수 있었다. 52년의 생이 지금 자신의 손안에 들어왔음을.
"포획 완료. 보존율 99.8%." 이연수가 다급하게 모니터를 보며 외쳤다. "수치가 흔들립니다! 엔트로피 증가! 0.1%씩 소실되고 있어요!"
"모드 전환해." 서현은 침착했다. 그는 포획기를 떼지 않고 그대로 기다렸다.
"전환 완료! 주입 모드. 압력 최대!" 이연수가 스위치를 돌리며 소리쳤다.
서현은 포획기의 노즐을 환자의 코와 입에 산소 마스크처럼 강하게 밀착시켰다. 질식의 위험은 이제 사라졌다. 지금부터는 죽은 폐에 강제로 숨을 불어넣어야 할 시간이었다.
'돌아와라.'
그것은 의학적 처치라기보다, 일종의 주문(呪文)에 가까웠다. 신이 흙으로 빚은 인형의 코에 숨을 불어넣었듯, 서현은 자신의 손으로 인간을 다시 일으켜 세우려 하고 있었다.
"주입."
서현이 트리거를 당겼다.
푸슉-! 짧고 간결한 기압 소리. 박스 안에 압축되어 있던 고밀도의 에너지가 서현의 손을 거쳐 환자의 기도로 강제로 밀려 들어갔다.
납작했던 환자의 폐가 풍선처럼 급격하게 부풀어 올랐다. 꺼져있던 엔진에 고옥탄가 연료가 주입된 것이다.
"허억-!!"
죽었던 환자의 상체가 침대에서 튀어 오를 듯 솟구쳤다. 기도가 열리며 터져 나온 소리는 비명 같기도 했고, 첫울음 같기도 했다. 서현은 환자가 튀어 오르는 순간에도 노즐을 떼지 않고 끝까지 에너지를 밀어 넣었다. 단 한 줌의 생기라도 새어 나가지 않도록.
멈춰버린 심장, 피가 돌기 시작한 뇌. 생기가 돌아오자, 육체에 각인되어 있던 생령(生靈)이 다시 깨어났다.
"바이탈!"
김도윤이 비명을 지르듯 외쳤다.
[삐... 삐... 삐-익, 삐-익]
직선을 그리던 그래프가 다시 뛰기 시작했다. 그리고 감겨있던 환자의 눈꺼풀이, 5년 만에 처음으로 번쩍 뜨였다. 초점이 돌아온 맑은 눈동자가 허공을 응시했다.
그 눈동자는 바로 위에서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는 서현과 마주쳤다. 이전의 실패작들과 달리, 5년의 공백을 건너뛴 명료한 생명력이 그곳에 있었다.
강태준은 그 기괴하고도 경이로운 광경에 천천히 박수를 치더니, 이내 참을 수 없다는 듯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으하하하! 완벽해! 이거야!"
지하 벙커에 광기 어린 웃음소리가 울려 퍼졌다. 누군가에게는 목숨을 건 실험이었고, 누군가에게는 공포였지만 강태준의 눈에는 달랐다. 그에게 저 살아난 환자는 더 이상 사람이 아니었다.
깨진 그릇에 물을 붓던 과거는 끝났다. 그가 본 것은 죽음조차 '리필 가능한 상품'으로 팔아치울 수 있는, 인류 역사상 가장 거대하고 비싼 사업의 시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