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3화 포맷
제2 실험실의 참극 이후, 강태준은 지체하지 않았다. 그는 즉시 새로운 '재료'를 공수해 왔다.
"이름도, 연고도 없는 놈이야."
강태준이 가리킨 침대에는 30대 초반의 남자가 묶여 있었다. 노숙 생활을 오래 했는지 행색이 초라했지만, 신체 검사 결과 장기와 뇌는 더할 나위 없이 깨끗했다. 그는 겁에 질린 눈으로 의료진을 둘러보고 있었다.
"제발... 살려주세요. 시키는 건 뭐든 다 할게요." 남자가 애원했다.
서현은 차트를 덮고 강태준을 보았다. "의식이 너무 명료합니다. 회장님." "그러니까 지우라는 거야."
강태준이 차가운 미소를 지었다. "지난번 실험에서 봤잖아? 헌 집에 새 주인이 들어갔더니, 원래 살던 놈이랑 싸우다가 집이 박살 나는 꼬라지." 그는 혀를 찼다. "집주인이 방을 안 빼면, 강제로라도 짐을 들어내야지."
서현은 이해했다. 육체는 남겨두고, 자아만 파괴한다. 그것은 살인보다 더 끔찍한, '영혼의 삭제'였다.
"미쳤어... 이건 말도 안 돼!" 김도윤이 소리쳤다. 그는 약품실 구석에서 머리를 감싸 쥐고 있었다. "서현아, 제발 정신 차려. 저 사람은 환자가 아니야! 멀쩡히 살아있는 사람을... 백치로 만들겠다고?"
서현은 덤덤하게 주사기를 세팅했다. 투명한 액체가 실린더를 채웠다.
[NMDA 수용체 차단제 + 고농도 신경파괴제 칵테일]
"도윤아." 서현의 목소리는 건조했다. "저 남자는 이미 사회적으로 죽었어. 빚쟁이들에게 쫓기다 스스로 강 회장의 '농장'으로 들어온 거야. 어차피 여기서 나갈 수 없는 운명이다."
"그렇다고 뇌를 녹여버려? 그게 의사가 할 짓이야?"
"우린 지금 인류를 구원할 '그릇'을 만드는 거야." 서현이 김도윤의 눈을 똑바로 응시했다. "기억이 뒤섞여 발작하다 죽는 것보다, 고통 없이 자아만 사라지는 게 저 사람에게도 자비야. 선택해. 여기서 나갈 수 없다는 건 너도 마찬가지니까."
김도윤은 절망했다. 지하 3층의 철문은 이미 굳게 닫혀 있었다. 그 역시 공범이자, 갇힌 죄수였다.
다시 실험실. 남자는 진정제가 투여되어 반수면 상태에 빠져 있었다.
"준비됐습니다." 이연수가 모니터링 장비를 켰다. 뇌파 그래프가 활발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공포, 후회, 살고 싶다는 갈망... 수만 가지 기억의 신호들이었다.
"타겟은 해마와 전두엽의 연결 고리입니다." 서현이 뇌 단면도를 띄워놓고 설명했다. "생명 유지에 필요한 뇌간은 건드리지 않습니다. 오직 '내가 누구인가'를 기억하는 데이터 저장소만 삭제합니다."
강태준이 팔짱을 끼고 흥미롭다는 듯 지켜봤다. "시작해."
서현이 남자의 경동맥에 굵은 바늘을 꽂았다. 뇌로 가는 혈류에 직접 약물을 태워 보내는 방식이었다.
"주입."
약물이 투입되자, 모니터의 뇌파가 거칠게 요동쳤다.
[삐- 삐- 삐- 삐-!]
"해마 부위 활성도가 급격히 떨어집니다!" 이연수가 외쳤다.
남자의 몸이 간헐적으로 경련했다. 입에서 신음이 흘러나왔지만, 그것은 고통이라기보다는 무언가가 끊어지는 소리 같았다. 어린 시절의 추억, 부모의 얼굴, 사랑했던 사람, 실패의 기억... 한 인간을 구성하던 30년의 서사가 화학 약품에 의해 하얗게 표백되고 있었다.
10분 뒤. 경련이 멈췄다. 거칠게 뛰던 뇌파 그래프가 잔잔한 물결처럼 변했다. 완전한 뇌사도, 정상적인 수면도 아니었다. 그것은 한마디로 '무(無)'였다.
"바이탈 안정적. 자발 호흡 유지 중." 김도윤이 떨리는 목소리로 보고했다.
"깨워." 서현이 지시했다.
김도윤이 각성제를 투여하자, 남자가 천천히 눈을 떴다. 그 순간, 실험실의 공기가 싸늘하게 식었다.
남자는 깨어났다. 하지만 그곳에 '사람'은 없었다. 초점은 맞고 있었지만, 아무런 감정도, 의지도 담겨 있지 않았다. 마치 렌즈가 끼워진 CCTV 카메라가 돌아가듯, 그저 눈앞의 사물을 반사할 뿐이었다.
강태준이 남자 앞으로 다가갔다. "이봐."
남자는 대답하지 않았다. 강태준을 바라보고는 있었지만, 그를 인식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내 말 들려?" 강태준이 손가락을 튕겼다. 남자는 소리가 나는 쪽으로 고개만 돌릴 뿐, 눈동자에는 아무런 파동도 일지 않았다. 공포도, 호기심도 없었다.
"완벽하군." 강태준이 만족스러운 듯 남자의 볼을 툭툭 쳤다. "깨끗해. 아주 하얗게 비었어."
서현이 차트를 기록하며 말했다. "성공입니다. 하드웨어는 최상의 상태를 유지하고 있지만, 운영체제는 삭제되었습니다. 이제 어떤 영혼을 주입해도 충돌은 없을 겁니다."
"그래... 이거야." 강태준이 남자의 텅 빈 눈을 들여다보며 속삭였다. "이제야 이사 갈 집이 준비됐어."
강태준은 뒤를 돌아 서현을 보았다. 그의 눈빛은 이제 단순한 사업가가 아니었다. 영생을 목전에 둔 광신도의 눈이었다.
"서 선생. 이제 마지막 단계만 남았네." "......" "나를 저 안으로 집어넣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