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옥 이야기2

왜 이 세상이 지옥인가

by 구대은

지옥이 있느냐 없느냐는 여전히 알 수 없는 문제다.
그러나 한 가지는 분명하다.
인간이 살아가는 이 세계는 스스로를 지옥이라고 불러도 될 만큼의 조건을 이미 갖추고 있다는 것이다.

단순한 비유가 아니라 신학적으로도, 철학적으로도, 그리고 현실적으로도 이 세상은 지옥의 속성을 모두 담고 있다.

실낙원.png


1. 타락 이후 인간이 들어온 세계는 형벌이 시작된 곳이다

에덴에서 인간은 고통도 죽음도 알지 못했다.
하지만 죄를 짓고 쫓겨난 그 순간부터 인간은 고통이 자연스러운 세계로 들어왔다.

성경은 이렇게 말한다.

땀 흘려야 겨우 먹고 산다.

땅은 가시와 엉겅퀴를 낸다.

출산의 고통이 주어진다.

결국 흙으로 돌아간다.


이 네 가지는 모두 형벌의 요소들이다.
고통, 분투, 불확실, 죽음.
이 네 가지가 일반적이고 당연한 세계라면 그 세계는 이미 지옥적 성질을 갖고 있는 것이다.


2. 존재 자체가 고통을 피할 수 없다

철학적으로 보면, 인간은 태어나는 순간부터 지옥의 조건에 들어선다.
왜냐하면 인간은 언제 어떤 고통을 만날지 전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카뮈는 세상을 “부조리”라고 불렀고, 사르트르는 인간을 “내던져진 존재”라고 했다.

우리는 원하지 않아도 태어나고, 원해도 영원히 살 수 없다.

사랑하면 잃을 수밖에 없고, 가진 것은 언젠가 사라진다.

이런 존재의 방식은 지옥의 고통보다 덜 극단적일지 몰라도 더 길고, 더 깊고, 더 피할 수 없다.

죽음보다 견디기 어려운 것은 ‘살아가는 과정’ 자체일 수 있다.


3. 세상은 스스로 지옥을 재현하는 구조를 갖고 있다

이 세상에는 초자연적 악마가 없어도 충분히 지옥이 된다.
왜냐하면 사회 구조 자체가 인간에게 지속적인 고통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 불평등

누군가는 태어나자마자 특권을 갖고, 누군가는 태어나자마자 고통을 떠안는다.

● 폭력과 전쟁

인간이 만든 지옥의 가장 직접적인 형태다.

● 질병과 죽음

아무리 발전해도 피할 수 없는 두 가지 형벌.

● 가난과 실패

노력해도 안되는 것이 더 많다.

● 상실

가장 사랑하는 것을 잃는 고통이 반복된다.

● 사회적 낙인

드라마 <지옥>이 보여줬던 것처럼 사람은 ‘죄’보다 ‘낙인’ 때문에 더 큰 고통을 받는다.

그 모든 고통이 평생 반복되는 세계라면 그곳을 지옥이라고 부르지 않을 이유가 무엇인가?


4. 지옥은 저승의 불꽃이 아니라 이승의 현실이다

죽음 이후에 지옥이 있다고 말하는 것은 오히려 인간에게 위안이다.
왜냐하면 그 고통은 “죽어야 시작된다”는 전제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실의 고통은 살아 있는 동안 끝없이 이어진다.
피할 수도 없고, 멈출 수도 없다.

누군가에게는 하루하루가 형벌이고, 누군가에게는 삶 자체가 짐이다.

누군가에게는 세상이 버텨내야 하는 고통의 연속이다.

그렇다면 묻지 않을 수 없다. 지옥이 따로 필요할까?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계가 이미 지옥인데.

작가의 이전글에피소드1. 꼰대스러움도 나의 비합리성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