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술 이틀차
새벽에도 간호사선생님들이 수시로 체크하러 오셨기 때문에 통잠을 잘 수 없었다. 게다가 목은 또 어찌나 마르던지. 물 한 모금이 간절했지만 마시면 안 됐다. 대신에 준비물로 챙겨간 가재손수건을 물에 적셔 내 입에 올려주셨다.
아.. 시원해. 사막의 오아시스가 따로 없구나.
말라비틀어진 입술에 물기가 스며드니 살 것 같았다.
살만하니 수면욕구에 묻히고 말았던 교수님의 말씀이 슬며시 떠올랐다.
"혹이 썩어 있었고, 비장도 절제했습니다."
현실에서 들은 게 맞는 것 같긴 한데.. 아니면 전부 꿈이었나? 의문스러운 그 말 한마디에 갇혀 꼼짝할 수 없었지만 손가락은 유달리 바빴다.
앗 이런, 또 누르고 말았어.
어느새 습관이 되어버린 진통제 버튼 누르기. 간호사선생님이 나에게 경고했다. 너무 자주 누르면 오히려 약 효과가 저하된다며.
하지만 어쩌겠는가. 이 불쾌한 통증을 당장이라도 치워버리고 싶은데. 게다가 몇 번을 눌러도 금세 뿅 하고 나타나는 성가신 통증이 밤새 내 속을 살살 긁었다.
이대로 잠을 잘 수 있을까? 싶었지만, 수면욕은 가히 대단했다. 눈 떠보니 아침이었다.
깨어나자마자 시작된 검사들. 이번엔 공복 혈당 검사다.
혈당이면 당뇨 검사로군. 많이 긴장됐다. 만약 혈당 수치가 높으면 합병증의 결과이니 앞으로 나는 췌장암 환자이자 당뇨병 환자로 살아가야 했다.
두둥. 과연 내 운명은 관성의 법칙을 따라 쭉 가던 대로 불행과 불운의 궤도에 놓일 것인가, 아님 신의 자비로 퀀텀점프라도 하여 행운아로 거듭날 수 있을 것인가?
나로선 절체절명의 순간이었다.
간호사가 내 손가락 끝에 피를 내어 기계를 갖다 대자 곧바로 수치를 확인할 수 있었다. 수치 확인 후 간호사가 입을 열기까지의 그 짧은 시간 동안 난 또다시 블랙홀 앞에 가 있었다.
"정상이에요. 공복혈당은 정상이고 이따가 아침으로 죽 드신 후에 또 혈당검사 할 거예요."
"그럼 당뇨 합병증이 안 생긴 건가요?
"식후 검사해 보고 그 후로도 계속 정상 수치면 안 생긴 거라고 봐도 돼요."
오, 1차 관문 통과. 긴장을 온전히 다 풀 순 없었지만 그래도 희망적이었다.
곧이어 밥시간.
누가 병원 밥이 맛없다고 했던가. 어려서부터 잘 못 먹고 커서 그런가, 반찬 3개 이상만 되어도 진수성찬처럼 보였던 나는 평소에 보기 힘든 흰 죽마저 맛있게 먹었다. 특히 기분 좋은 혈당검사 결과로 인해 입맛이 더 돌았다.
그런데 좀처럼 밥숟갈이 들어가지 않는군. 하루 사이 소화시킬 수 있는 양이 확 줄었다는 걸 깨달았다. 분명 맛있고 더 먹고 싶었지만 금세 배가 불렀다. 한 숟갈이라도 더 먹으면 왠지 큰일 날 것 같은 위기감도 들었다.
신기하다. 진짜 췌장을 절반이상 잘라낸 게 맞구나. 현실을 자각한 순간이었다.
식후 혈당검사 결과 또다시 정상 수치.
오예! 이대로만 가자, 이대로만!!
합병증과의 거리가 점차 벌어지자 삶의 의지가 더욱 타올랐다.
'이제는 화내거나 슬퍼하거나 예민하게 굴지 말고 행복한 생각만 하자. 과거는 잊어버리고 지금만 생각하자.'
뇌 안에 시냅스를 새롭게 세팅이라도 할 작정인지 입원기간 내내 자주 곱씹었던 혼잣말이다.(불과 하루 만에 와장창 깨졌지만..)
간호사의 지시대로 식후 운동을 위해 병원 복도를 걸었다. 내 몸에 달린 여러 개의 장치들을 주렁주렁 매달고서 한 걸음 한걸음 조심히 걸었다. 금방 힘에 부쳤다. 숨도 가빠오고 기력도 없었다. 특히 이 주렁주렁 장치들이 몹시 거슬려 다 뜯어버리고 싶었다.
계속 걷다 보니 동지들이 여럿 보였다. 머리에 붕대감은 아저씨(뇌수술 환자라고 보기 어려울 정도로 걷는 속도가 매우 빨랐다.) 나보다 더 주렁주렁을 많이 매달고 가시는 아주머니, 금방이라도 픽 주저앉으실 것만 같은 엉금엉금 느린 걸음의 할아버지 등등
이들을 보니 또 생각 구름이 피어나는군.
복도로 모여든 더디고 가냘픈 걸음들.
저 걸음을 해내기까지 숱하게 쏟아냈을 다양한 감정과 고뇌들.
살기 위해 각자의 방식대로 수행하고 있는 간절하면서도 처절한 몸부림.
나도 알아요. 나도 마찬가지예요.
내가 퇴원 이후 건강한 새 삶을 기대하듯 여러분도 더 이상 아프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마음속으로 조용히 응원하며 그들을 따라 걸었다.
늦은 오후.
오랜만에 얼굴을 보여주신 교수님.
내게 컨디션을 물으셨다. 아직까진 괜찮다고 답했고, 휙 가버리시기 전에 얼른 여쭤보았다.
"어제 제가 잠결에 들은 것 같아서요. 혹이 썩어있었고 비장을 제거했다고 말씀하신 게 맞나요?"
"네. 맞아요."
"아...... 네."
뭔가 더 물어봐야 될 것 같았지만 마땅히 떠오르는 질문과 단어가 없었다. 진료 끝.
잠시 후, 찝찝한 기분을 털어내고자 주치의한테 다시 여쭤봤다.(교수님과 같이 수술하신 다른 의사 선생님)
"비장은 어쩔 수 없이 제거했어요. 수술 전 동의서에 서명할 때 제가 설명드렸듯이 췌장 옆에 비장이라고 면역기능을 담당하는 장기가 있는데 OOO님 같은 경우에 몸통에 혹이 있었고 몸통부터 꼬리를 다 잘라내야 해서 옆에 있는 비장을 절제해야만 했어요. 그리고 비장은 성인한테 꼭 필요한 기능을 하지는 않아요. 비장이 없어도 5년에 한 번씩만 면역 주사 맞으면 일상생활은 충분히 가능해요." (그 당시 정확한 워딩은 아니지만 대략 이런 내용으로 설명하심)
그가 말한 수술 전 동의서.
수술 전 날 밤에 불려 나와 컴퓨터 화면에 뜬 복잡한 내용들이 쓰여 있는 동의서를 보며 주치의 선생님의 설명을 들었고, 수술 과정에 대한 간단한 설명까지 해주셨다.
"복강경 수술이고 배꼽이랑 주변에 구멍 몇 개 뚫을 거고, (이하 생략, 기억 안 남) 그리고 확실치는 않은데, 내일 수술하면서 비장을 같이 제거할 수도 있어요."라고 말씀하셨다.
이후에 쭉 말씀하시는 걸 들어보니 오히려 비장 절제는 안 할 확률이 높다는 식이었다. 그래서 어느 정도는 안심하고 있었는데.. 결국 하셨구나.
살짝 복잡한 감정이 들었다. 왠지 모르게 당한 기분이 들어 속상하다고나 할까.(미리 비장 절제 여부에 관해 설명을 들었고 동의서에도 내 손으로 서명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분이 그랬다는 것일 뿐)
그래, 그분들이라고 별 수 있었겠나.
분명히 최선을 선택하셨을 거라고 생각한다.
간호간병통합병동 환자는 면회가 가능한 로비에서 가족과 친구를 만날 수 있다.
내가 극구 말렸음에도 아빠는 기어코 날 만나러 왔다.
고작 며칠 사이에 아빠가 더 늙어 보이는 건 기분 탓이었을까? 아빠 역시 속으로 날 그렇게 생각하는 것 같았다. 퀭한 내 얼굴을 보자 아빠의 동공이 순간 커졌음을 느꼈다.
"많이 아프니?"
"아니. 이젠 괜찮아."
"고생했다."
"응."
언제나처럼 간단명료한 우리의 대화.
그래도 아빠를 만나니 썩 나쁘지 않군.
그래, 나에게도 가족은 있어. 내가 아프면 날 도와주고 날 위해 기도해 줄 사람들, 내 가족.
아빠를 만나니 잠시 가려져 보이지 않던 가족이 보였다.
다수의 반가움과 걱정스러움으로 떠들썩한 그 로비 안에서 우리만은 서먹하고 담백한 태도를 취했지만, 그럼에도 우리가 느끼는 감정이 저들과 별반 다르지 않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아빠. 걱정하지 마. 난 괜찮아. 그동안 걱정시켜서 미안해. 나 앞으로 열심히 잘 살게.'
이 말을 차마 밖으로 꺼내지 못하고, 용기가 없는 나는 아빠와 인사를 하고 다시 병실로 돌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