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년 차 췌장암 환자입니다.

수술 디데이

by 다정오

마지막으로 수행했던, 가장 최악이자 힘들었던 것은 한 밤중에 좌약을 넣고 장을 비우는 일이었다.

처음 넣어본 좌약. 윽.. 느낌이 매우 이상할뿐더러 잠시 후 쏟아지는 그 ......... 음, 더 이상 언급하지 않겠다.


다 비워내고서 맥아리 없이 침대에 누워 잠을 청했지만 잠이 오지 않았다. 어제도 못 잤는데.. 내일 어떻게 감당하려고 이러나.

하는 수 없이 핸드폰을 들었다. 이때만 해도 신앙심이 깊었던 때라 앱을 켜서 좋아하는 성경 구절들을 읽었다.


내가 보기에 사람은(종교가 있다는 전제 하에) 큰 위기나 시련을 맞으면 종교에 더욱 의지하거나 아님 버리던가 둘 중 하나로 귀결되는 듯싶다.(물론 둘 다 아닐 수도)


난 전자였고, 오히려 이 모든 과정이 신의 섭리일 수도 있을 거란 상상을 했다.

나름의 이유가 있었는데, 우선 내가 프리랜서에서 직장인으로 전향한 구체적 사건이 있었다.

당시 부업으로 강사 일을 했었고, 우연히 어느 기관의 소속 강사로 활동하면 보수와 여건이 훨씬 좋아진다는 말을 듣고 채용 시험을 봤으나 결과는 불합격이었다. 다음 시험에는 꼭 붙어야지 싶어 스터디그룹까지 만들어 열심히 했는데 이게 웬걸, 코로나로 인해 이전처럼 대면 시험이 아닌 과제 제출로 대체하겠다는 공지가 떴다. 완전 개이득. 이건 뭐, 설렁설렁 준비해서 기한 내 제출만 하면 200% 합격인 거나 마찬가지.


참고로 건선만큼이나 나의 고질병중 하나는 계획적이지 못 하고 쓸데없이 여유를 부려 과제 같은 건 닥쳐서야 허겁지겁 해치우는 벼락인간이라는 인데, 하필 이것이 또 발동해 버려 결국 마감시간을 넘기고 1분이나 지나 제출하게 되었다.(갑자기 느려진 인터넷도 한 몫함)

.. 실화냐...? 곧장 고객센터에 전화해 1분밖에 안 늦었는데 제발 받아주면 안 되냐고 진상을 부렸지만 역시나 기각. 또다시 불합격. 그날 밤 나의 바보 같음을 탓하며 눈물 꽤나 흘렸었다.


이제 서른이고, 만약 시험에서 또 떨어지면 다 때려치우고 회사 들어가겠다고 은연중에 생각하고 있었다. 가뜩이나 주변 동료들도 하나둘씩 전향하고 있었고, 코로나 때문에 업계가 불황이라 기관에 들어가지 않는 이상 혼자서는 무리였다.


그리하여 들어가게 된 첫 직장에서 건강검진을 받게 되었고, 어느덧 여기까지 오게 된 것이다.(첫 번째 글에 썼던 것처럼 건강검진에 관심 없었고 한 번도 받아본 적 없었으며 40~50살 되기 전까진 받을 생각도 없었다. 왜냐면, 난 암에 안 걸리는 건선환자라고 믿었으니까. 허허)

하루 쉴 수 있는 건강검진도 연말에 퇴사 직전쯤에 받으려 했다.(계약직이라 연말에 퇴사 예정이었음) 그러다 친한 직원 따라 앞 당겨 받기로 생각을 바꿨고, 그 덕에 조금 더 일찍 혹을 발견 수 있었다.


정리하면, 허무하게 놓친 그 1분이 날 살린 것이나 마찬가지다. 만약 나답지 않게 여유 부리지도 않고 인터넷도 쌩쌩 잘 터져 과제가 예정대로 잘 제출됐다면 난 매우 높은 확률로 합격이었다. 그럼 강사 일을 계속했을 것이고 회사는 들어가지도 않았을뿐더러 건강검진 따윈 무시하고 살았 것이다.(기관에는 건강검진 복지가 없다.)


누군가 그랬다. 췌장은 수술이 가능한 것만으로도 감사한 거라.

보통 췌장에 이상이 생김을 인지하고 병원에 가면 수이 불가한 암 말기 판정받는 경우가 허다하다고 했다. 그러니 나처럼 건강검진을 통해 우연히 문제를 발견한 사람은 운이 좋은 것이고 한다.


흠.. 난 평생 운과 거리가 멀었는데. 운에도 총량의 법칙이란 게 있는 것일까? 평생 쓸 운을 췌장에 올인이라도 한 것일까?


아니,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신의 뜻이야. 그 1분마저 하느님께서 전부 계획하신 거지. 이토록 전지전능하신 그분께서 한낱 먼지 같은 나를 살리시려고 자비를 베푸신 거야.

그렇게 하느님의 섭리에 감사하며 성경 몇 줄 읽고 나서야 겨우 잠이 들었다.


다음 날 아침.

다행히 간호간병통합병실에 자리가 났다고 연락이 왔다.(오늘까지 자리가 안 나면 아빠나 간병인을 섭외해야 하는 매우 번거로운 상황이 코 앞에 있었다.) 얼른 짐을 챙겨 이사를 갔는데, 오.. 이런 분위기구나. 같은 6인실이었지만 조금 더 조용하고 차분한 분위기였다. 사람이 한 명이라도 더 있고 없고의 차이가 크구나. 그리고 이곳에서도 내가 한참 막냉이였다.


간호사가 9시쯤 수술실에 들어갈 거라고 말씀해 주셨지만, 어쩐 일인지 계속 늦어졌다. 앞 수술이 길어졌다며.

그 사이에 압박스타킹도 신고, 소변줄도 꽂았다.

기다리는 내내 어찌나 쫄리던지. 심장은 쿵쾅쿵쾅. 화장실은 계속 들락날락. 전 날 저녁부터 먹은 것 하나 없이 장을 싹 비워내 기력은 1도 없는 데다 이틀 연속 잠까지 설쳐 정신이 몽롱해질 법도한데 이상하게도 의식은 명료했다. 아주아주 똑디 정신 차리고 있었다.


아침부터 바쁜 카톡창.

이런저런 질문들로 가득한 가족 연락에 답을 하고 있는데,


"OOO님 지금 수술실로 이동하실게요."


드디어 내 차례다.

곧이어 이동식 침대가 등장하고 마음의 준비 그딴 거 할 새도 없이 당장 누워서 이동해야 했다.

가족한테 수술실 간다고 말도 못 했는데..


찜찜한 기분과 함께, 점차 들뜨고 흥분된 묘한 감정이 올라왔다.

오랜 기다림에 지쳐서였을까, 아님 빨리 끝내고 쉬고 싶었 걸까. 침대에 누워 하얀 천장만을 바라보며 긴 복도를 지나는데 오만가지 생각도 피어났다.


인생의 파노라마라기 보단 그냥 반성과 다짐의 말들이 주로 떠올랐다. 그리고 간절히 기도했다.


"수술 잘 끝나서 제가 다시 살 수 있으면 저 정말 착하게, 열심히 살게요. 꼭 그럴게요. 그러니까 저 꼭 살려주세요."


반복해서 마음속으로 외쳤다.

나 정말 살고 싶구나.

솔직히 최근 몇 년 동안 확 죽고 싶다고 생각한 적 몇 번 있었는데 그런 건 다 착각이고 거짓부렁이었구나.

새삼 깨달았다. 나의 간절한 생존본능을.


태어나 처음 들어가 본 수술실은 드라마에서 본 것과 비슷했다. 그 와중에도 신기하긴 했는지 누운 채로 여기저기 스캔했다.


간호사들이 수술을 위해 내 상의를 벗기려 했다.

난 언제나처럼 덤덤하게 그리고 약간은 부끄러운 듯 고지했다.


"제가 피부병이 심해서 몸이 빨갛고 딱지가 있어요. 그러니 놀라지 마세요."


가끔 병원에서 치료나 검사받을 때 내 몸을 보고 놀라는 분들이 있어 항상 먼저 안내하는 습관이 있었다.(그래야 그들의 반응에 나도 좀 덜 다친다.)


몇 분 후, 의사 선생님이 들어오시는 게 보였다.

역시나 내 몸을 보고(정확히는 배를 보고) 왜 이러냐며 놀라셨다.


후, 이젠 설명할 기력도 없군.


"마취 들어갑니다."


점점 흐려지는 의식.

선생님이 상냥하게 "이제 잠들 거예요~"라 말씀하신 후로 아무 기억이 없다.

딱 1초. 정말이지 1초 만에 블랙아웃.

곧바로 잠들었던 것 같다. 휴. 이제야 푹 자게 되었군.


3시간쯤 수술 종료.


눈 꿈뻑꿈뻑.

깼다.

으윽, 어지러웠다.

천천히 위를 살펴보니 백열등이 달린 익숙한 천장이 보였다. 수술실이 아닌 병실이었다.

다행이다. 별일 없었구나. 무사히 마쳤음에 안도했다.

옆에서 간호사선생님들이 분주하게 움직이셨다.

물어볼 게 많은데 입이 마음처럼 움직이지 않았다.

그러나 이건 꼭 말해야겠는 걸.

겨우 힘을 내어 내뱉은 한 마디.


"아파요..."


이거였다. 수술 선배님들이 말한 통증이란 거.

누군가 나에게 췌장이 정확히 어디 있는지 가리켜보라고 말하면 당장이라도 가리킬 수 있을 것 같은 그 위치가 쿡쿡쿡 너무 아팠다.

듣던 대로 처음 느껴보는 종류의 통증이었다.

간호사선생님은 당연하다는 듯이 내 손에 마약성 진통제 버튼을 쥐어주셨다. 아플 때마다 버튼을 누르면 소량의 마약이 몸에 주입돼 통증이 줄어들 거라고 하셨다.


곧이어 회진 오신 OOO교수님과 의사 선생님 두 분.

난 여전히 비몽사몽이었고, 선생님이고 뭐고 그냥 자고 싶었다.

그런데 교수님이 날 보자마자 하신 말씀이 잠깐이었지만 제정신 들게 했다.


"보니까 혹이 썩어 있었어요. 어쨌든 다 제거했고, 그리고 옆에 비장도 같이 절제했습니다."


...


뭔가 심상치 않은 말을 들었는데..

곧 아무런 저항 없이 곯아떨어지고 말았다.

잠시 후 간호사가 날 대차게 깨우곤 밤 12시까지는 절대 잠들면 안 된다고 말했다.

이유를 말씀해 주셨는데 역시 기억에 없다.

이게 무슨 고문이란 말인가...

마약성 진통제는 소량이어도 금세 졸음이 쏟아질 정도로 나른하게 만들었다.

진짜 미쳐버리겠군.

잠깐씩 눈이 감길 때마다 간호사 선생님들의 알람 멘트가 울렸다.


"자지 마세요!!"


겨우겨우 정신줄을 붙들고서 시곗바늘이 12시에 닿을 때까지 버텼다.


1분 1초가 1년 같은.

마치 거대한 블랙홀 앞에서 시간이 느리게 가듯 지겹 흐르지 않는 이 순간.


...

...

....


드디어, 12시 땡.


해방이다.

옆에 있던 간호사선생님께 자도 되냐고 허락을 구하고

그러라는 대답을 다 듣기도 전에 냉큼 자버렸다.


그렇게 고된 하루가 저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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