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원
아침부터 병실 안은 부산스러웠다. 난 여전히 꿈나라에 있었는데 누군가 내 팔에 무언가를 하고 있었다.
"아, 그냥 주무셔도 되는데. 피검사할 거니까 편안히 누워계세요."
이젠 익숙한 광경이 되어버린 주삿바늘이 꽂힌 내 팔과 그 틈으로 빠져나가는 빨간색 피.
별별 호들갑을 떨며 피검사를 받곤 했던 그 풋풋함은 어디로 가고 어느새 아주 덤덤하고 무던하게 그 순간을 받아들이고 있었다.
곧이어 이런저런 검사들을 받고 퇴원 후 수행해야 할 것들에 대해 배웠는데, 이건 뭐, 퇴원한다고 끝이 아니구만. 먹어야 할 약도 많고, 소독과 실밥 제거하러 병원도 몇 번 더 와야 하고, 추적 관찰을 위해 외래 진료도 계속 와야 하고.. 그냥 또 다른 시작이었다.
그런데 막상 퇴원한다고 하니 조금은 섭섭한 걸.
예상치 못한 기분이 들었다.
하루 종일 아기가 된 것 마냥 케어받는 곳을 떠나 원래 세계로 가야 한다니.. 그 거세고 각박한 현실로 되돌아가야 한다니! 지금 느끼는 이 안전함과 고요함에 커다란 균열이 생길 것이 분명했기에 두려웠다. 게다가 더 이상은 정상적이지 않은 사람이니까. 어느 정도의 불편함을 갖고 살아가야 하니까 기분은 더 복잡했다.
(복작복작, 어수선)
그러고 보니 나 말고도 부산스러운 아침을 보내는 동료들이 보였다.
무려 일주일을 한 방에서 함께 지냈어도 각자 크고 작은 고통을 겪어내느라 제대로 된 통성명이나 따뜻한 안부를 나눌 수 없었던 우리.
지금은 기억에서 완전히 지워진 옛 동료들이지만 유독 한 분만은 희미하게 남아있다. 내 옆자리 계셨던 직장암 환자분.
왜 이분이 인상적이었냐면 난 제대로 해내지 못했던, 수술 후 얼마 동안은 절대 잠들면 안 됐던 그 미치도록 어려운 미션을 매우 우수한 성적으로 해냈기 때문이다.
간호사선생님들조차 감탄하게 만든 대단한 능력자. 도저히 궁금함에 못 이겨 화장실 가는 척하며 그분을 슥 훔쳐봤었다. 정말 듣던 대로 눈을 똘망똘망하게 뜬 채 앓는 소리 한 번 않고 잠잠히 누워계셨었다.
와, 암 수술하고 오신 게 맞나..? 아님 수술이 처음이 아니신 건가? 연세도 많으신데 정말로 대단한 정신력이라고 생각했다.
마침 이 분도 나와 같은 날에 퇴원이셨다. 아빠가 원무과에 가 있는 동안 그 분과 단 둘이 병실에 있었는데, 그간 고생 많으셨다고 소심히 한 마디 건넬까 하던 찰나였다. 병실문이 스르륵하고 열리고 머리색이 하얀 주름진 얼굴의 한 남자가 들어왔다. 그분의 보호자이자 남편이었다.
그의 등장과 함께 시작된 느닷없는 흥미진진 상황 전개.
그토록 과묵하고 평온하던 그녀가 남편을 보자마자 버럭 화를 내시는 게 아닌가. 그것도 아주 날카롭고 아프게 말이다.
"아, 왜 이제 와? 뭣하러 왔어? 으휴, 바보같이."
그녀의 속사포 다그침에 우물쭈물 제대로 답변도 못 하는 남편.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기다렸다는 듯 쉴 새 없이 퍼붓는 분노.
그가 참다못해 겨우 한 두 마디 꺼내어 당신 얘기 귀 기울여 잘 듣고 있다며 안심시켜 주려하지만 별 소용없어 보였다.
내가 보기에 아내는 남편을 만나자 곧바로 어린아이가 된 듯 보였다. 온갖 속상함과 투정을 쏟아내며 당장 나를 위로해 달라는 미운 4살 같은 모습.
거 참, 기분이 이상하군. 꼭 나를 보는 것 같잖아.
30년 넘게 단련된 나의 주특기이자 날 망쳐버리는 단점이 하나 있는데, 그것은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하지 않고 마음 약해지는 감정일수록 더욱 분노로 가장하여 가족에게 투척한다는 것이다.
그녀도 왠지 이런 알고리즘으로 작동하는 것 같았다.
생각지도 못 한 그녀와 나 사이의 대칭성. 순식간에 벌어진 상황에 당황스러움은 금세 사라지고 곧 신기함과 자기반성으로 이어졌다.
거울치료가 참 효과가 좋구나.
우연한 깨달음을 얻게 된 나는 병실로 돌아온 아빠에게 약간은 더 상냥한 말투로 대할 수 있었다.
이제 집에 가도 된다는 주치의선생님의 허락을 받고서 환자복을 벗고 내 옷으로 갈아입었다. 그리고 짐가방과 병원에서 바리바리 싸준 약봉지 & 서류들을 한 아름 손에 들고 병실을 나섰다.
어느새 10월이었다.
왠지 10월이면 더 추워질 줄 알았다. 그래서 일부러 따뜻한 옷을 챙겨 왔는데 여전히 햇살은 뜨거웠다. 이마에 땀도 났다. 체감하는 것보다 실제는 그리 변하지 않았구나. 나에게 일어난 일련의 사건들에 비해 시간은 많이 흐르지 않았다는 걸 느꼈다.
그래도 상쾌한 바깥공기를 한껏 들이 마시니 기분이 매우 좋군. 아니, 좋다 못해 행복했다.
아빠 차를 타고 가는 내내 계속 창밖을 봤다. 어디 동굴에 갇혀있다 온 것도 아닌데, 이상하게 창 밖 풍경에 보이는 모든 것들이 반갑고 새로웠다.
그동안 밀려있던(일부러 확인하지 않았던) 카톡들에 답장하며 휴식공간으로 향했다. 휴식 공간은 집이 아닌 호텔이었다.
언니가 집에서는 편히 못 쉴 거라며 무리하게 호텔을 예약해 줬다. 호텔에서는 음식도 잘 나오고 깨끗한 공간에서 지낼 수 있을 거라며..
이런 이유면 난 모텔도 상관없는데.. 괜한데 쓸데없이 돈 쓴 것 같아 마음에 들지 않았다. 하지만 언니는 제발 괜찮으니까 얼른 낫기만 하라며 내 말을 전혀 듣지 않았다.
사실 언니도 그동안 내 문제로 마음고생 많았다는 걸 알고 있다. 그럴 필요 없는데 나에 대한 죄책감도 많이 느끼는 것 같았다. 내가 암에 걸린 건 언니 탓이 아니고 그 누구의 탓도 아닌데. 굳이 탓할 사람을 꼽자면 순전히 나인데.. 왠지 모르게 언니에겐 나와 관련된 어떤 부채감 같은 게 있는 듯 보였다.
나 하나로 참 여러 사람 고생 시키네.
누가 아프니까 청춘이라 했던가. 내 경험으로는 아프면 그저 다 개고생인 듯싶소만..
아빠와 헤어지고서 카드 키를 받아 방으로 들어갔다. 그제야 온몸이 으슬으슬 시리고 옴짝달싹 못 할 정도의 피곤함이 몰려들었다.
그 와중에도 배꼽시계는 멀쩡한지 미리 포장해 온 샐러드를 우적우적 해치우고선 진통제를 비롯한 여러 약들을 꿀꺽 삼켰다.
자기 전에 샴푸로 머리도 빡빡 감고 몸에 비누칠도 하고 싶었지만 실밥 제거 전까지 샤워는 절대금물.
하, 슬기로운 퇴원 생활 쉽지 않구나..
그렇게 찝찝 불쾌함과 더불어 처음 겪는 호텔 침대의 폭신함을 번갈아 느끼고 나니 어느새 잠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