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년 차 췌장암 환자입니다.

췌장암 2기

by 다정오

통증이 느껴져 새벽에 잠이 깼었다. 췌장이 아니라 피부가 너무 따갑고 가려워서 잠을 자기 어려웠다. 게다가 살짝 움직이기라도 하면 온몸에서 눈이 내렸다. 전부 내 피부에서 벗겨져 나온 각질들이었다.


문득 내 몸이 쓰레기 같아 보였다.

너덜너덜하고 닳고 닳아진, 재활용조차 불가능 그런 쓸모없는 물체같이.


슬펐다. 어쩌다 이렇게 됐을까. 왜 이토록 상처투성이가 됐을까. 병원에서는 그나마 잠잠했던 공격성이 마취에서 깨어나기라도 한 듯 활동을 재개했다.


그렇게 끝도 없는 자괴의 굴 속으로 파고 들어가다가도 그냥 닥치고 살아있음에 감사하기나 하라는 목소리가 교차했다.


날 휘감 슬픔과 기쁨. 이 둘은 서로 공존했지만 그 속에서 실제 내가 감각할 수 있는 건 오로지 피부를 칼로 긋는 듯한 통증 췌장에서 보내오는 신호뿐이었다.


다음 날 아침 곧장 피부과로 향했다. 10년 넘게 다닌 단골 피부과였다. 직원들 라보게 살 빠 날 보고 흠칫 놀랐다. 여차저차 설명하기 귀찮아 못 본 척하고 진료실에 들어갔다. 10년 넘게 이어온 만큼 이번에도 뻔하게 진행될 거라 예상했겠지만 이번만은 달랐다. 마치 깜짝 쇼라도 벌이려는 듯 얼마 전 췌장 수술을 받았다고 선생님께 말씀드렸다. 찰나였지만 선생님의 눈에서 잠시 당황을 읽을 수 있었다. 늘 웃상이던 선생님 얼굴에 아주 약간의 빗금이 쳐졌달까. 나는 계속해서 담담하게 말을 이어갔다. 건선 때문에 고통이 무척 심하니 대학병원 가서 주사 치료든 약물 치료든 받겠다고.


드디어 내가 마음을 바꾼 것이다.


전부터 대학병원 가서 치료받으라는 권유를 여러 차례 받았었다. 하지만 난 거길 가는 게 별 소용없다고 느꼈다. 뭐랄까, 난 나에 대한 어떤 의지 같은 게 없었다고 해야 할까. 게다가 병원에서 맞는 주사 비용이 1회에만 100만 원이라는 소리를 들었던 터라 일찌감치 포기했었다. 어차피 주사 맞아도 완치는 될 수 없기에 그럴 거면 뭐 하러 맞나 싶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주사를 맞는 사람들이 있었으니.. 그것도 생각보다 많다고 들었다.


그 사람들과 나의 차이는 뭐였을까.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어 100만 원쯤은 괜찮아서? 아님, 의사가 하라니까 그냥 하는 건가?


아니, 다 아닌 것 같다.

일반화시킬 수는 없겠지만, 대개는 자신에 대한 의지가 있고 미래를 그려볼 힘이 존재했기에 그 비싼 돈을 지불하며 치료를 받는 것 같았다. 이 점이 나와 그들을 가르는 큰 차이였다.


내가 좀 더 일찍 나에 대한 의지를 품고서 불확실함 속에서도 희망이라는 더 나은 선택을 해 치료에 목을 맸면 내 삶은 다른 궤를 돌고 있지 않을까,라는 부질없는 생각을 때가 종종 있다.


그렇게 진료의뢰서를 또다시 손에 든 채 대학병원에 가서 피부과 진료를 봤다. 선생님은 내가 원하는 주사치료를 받기 위해선 일정 기간 약을 먼저 복용해야 된다고 말씀하셨다. 그리하여 아주 독한 약을 처방받았는데, 이 약을 먹으면 3년 후에나 임신할 수 있다고 했다.(그전에도 임신은 가능하지만 기형아 출산 위험이 있다고 했다.)


그 약을 호기롭게 받아 들고서 돌아왔다. 하지만 허무하게도 난 약을 단 한알도 먹지 않았다. 주사와 마찬가지로 약을 먹는다 해서 완치될 수는 없다고 한 의사의 말과 더불어 단약 후 3년 뒤에나 임신이 안전하다는 말이 마음에 걸렸기 때문이다. 이렇게 독한 걸 막 먹어도 되 싶었다. 이젠 췌장도 얼마 안 남아있는데.. 비싸게 주고 산 약이 갑자기 무의미해 보였다. 전문가가 어련히 알아서 처방해 준 걸 텐데도 난 그를 믿지 못했.


하는 수 없이 다시 단골 피부과를 찾아가 광선치료를 받았다. 연고도 열심히 발라보고. 더디지만 다행히 증상 조금 나아졌다.


그로부터 얼마 후 또 대학병원에 갔다. 이제는 친구네 가듯 가는 길이 익숙하고 참 편해져 버린 곳. 이번엔 췌장 진료를 받았다. 수술 후 경과를 지켜보기 위한 첫 번째 추적관찰이었다. 다행히 CT검사 결과에는 이상이 없었다. 수술 후 부작용 증세도 없었고 다 괜찮았다. 그런데 내 진단서는 괜찮지 않아 보였다. 나의 진단 결과는 췌장암 2기, 경계성종양이 아닌 악성종양이었다.


종양을 다 제거하다 못해 췌장 일부와 비장 전체를 제거했다는 걸 알지만, 그럼에도 종양의 정체가 악성이었다는 사실을 확인받으니 공포스러웠다. 언제든 죽음의 문턱이 다시 들이닥칠 수도 있을 거란 일종의 경고를 받은 느낌.


건선은 문제가 아니었다. 암 앞에서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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