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
호텔에서의 짧은 요양 생활을 정리하고 집으로 돌아갔다.
집으로 가는 길.
나에겐 그닥 유쾌하거나 즐겁지 않은 길이다.
어려서부터 학교 수련회를 다녀오면 친구들은 집에 돌아가는 걸 좋아했지만 난 아니었다.
우리 집은 항상 낯선 물건들로 가득 차 있는 데다 지저분했기 때문이다.
새 물건뿐만 아니라 출처를 알 수 없는, 그러니까 어디서 주워 왔는지 모를 잡동사니들이 들어차있었다.
원래도 엄마는 뭐든 잘 못 버리는 분이었으나 아빠와 별거를 시작하고 사기를 크게 당한 뒤부터 이러한 습관이 강화됐다.
어느덧 임계점을 넘어섰다는 생각이 든 후로 집에 가는 게 싫어졌다. 심지어 현관문을 여는 게 두려운 적도 있다. 물건한테서가 아닌 저 속에 파묻혀 사는 엄마한테서 느낀 두려움이었다.
오랜만에 도착한 집은 여전히 깜깜했고 바닥은 차가웠으며 물건들은 그대로, 아니 종류가 조금 더 다양해진 것 같았다. 그리고 퀘퀘한 냄새는 덤..
방으로 들어가 철퍼덕 누웠다. 아직까지는 오래 걷거나 무리하면 숨이 가빴다. 한 순간에 꼬부랑 할머니가 된 것 같았다.
잠시 후 집에 온 엄마에게 여행 잘 다녀왔다고, 피곤하니 먼저 자겠다고 태연하게 말했고 다행히도 엄마는 잘 속아줬다.
모든 게 정상으로 돌아가는 듯했다.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아주 무난하게.
난 어떻게든 수술 전과 똑같은 일상을 이어 붙여보려 했다.
그런데 기어코 내 마음이 자꾸 변수를 만들려 했다.
이 집에 더 있다간 암이 재발할 것 같은 위기감이 든 것이다. 심지어 쿡쿡 찌르는 통증 빈도도 잦아졌다.
탈출 신호인 걸까. 제발 이 집에서 나가라고. 엄마와 떨어지라고.
심리상담을 받을 때면 상담사들은 하나같이 독립을 해결책으로 제시했다.
흠.. 독립이라.
난 그 해결책에 쉽게 긍정할 수 없었다. 엄마와 떨어지는 건 내겐 너무 어려운 과제이기에.
정작 그 이유를 말해보라고 하면 대부분 시답지 않은 것들만 나열하게 됐지만.. 어쩌겠나. 난 저 가여운 엄마와 이 지긋지긋한 집을 차마 버릴 수 없고, 벗어날 수 없는 것을.
그런데 이제는 버틸 수 없었다.
내 몸은 많이 약해졌고, 약해진 만큼 살고 싶은 생각은 더 간절해졌다.
'무조건 살아야겠다. 살기 위해선 여길 떠나야 된다.'
장고 끝에 이런 결론이 지어지자 눈이 뜨였다. 흐물거리던 팔다리에도 힘이 생기는 듯했다.
그래. 이게 마지막 관문일지도 몰라.
이걸 통과해야만 비로소 완전히 퇴원인 거야.
수술 부위를 꿰맨 실밥을 푼 지 겨우 2주 만에 월세집을 구하러 다녔다. 한참을 돌아다니니 자꾸 숨이 차 눕고 싶었다. 그래도 기분은 그럭저럭 좋았다. 설렘도 있었다. 비록 내가 원한 금액대의 사람이 살만한 집을 찾기란 몹시 어려웠지만 그럼에도 어딘가엔 존재하겠지, 포기하지 않았다.
20개 발품 팔아 겨우 찾은 보금자리.
집은 작고, 빨래 널 곳도 마땅치 않고, 방음조차 잘 되지 않지만 이만하면 훌륭하다고 생각했다.
회사 복직까지 얼마 남지 않아 그전까지 부지런히 이삿짐을 꾸려야 했다.
가져갈 건 가져가고, 버릴 건 버리고. 새로 사야 될 것까지 모두 혼자서 구하고 포장했다.
그리고 엄마에게 말했다.
"엄마. 우린 같이 있으면 서로에게 상처만 줘. 더는 안 그러고 싶어. 미안한데 이제부터는 혼자 살아볼래. "
허락을 구하는 게 아닌 일방적 통보를 날렸다.
엄마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서운한 기색만 얼굴에 보일 뿐.
곧 이성을 되찾았는지 집은 구했냐며, 언제 나갈 거냐며 현실적인 질문을 했다. 멀지 않은 곳에 싸고 괜찮은 집을 구했다고 했다. 엄마는 흔들림 없는 내 태도에 어떤 설득이나 만류도 통하지 않을 거란 걸 알고 있었다.
"그래. 잘 살아봐. 종종 집에 들르고."
이 말을 남긴 채 방으로 들어간 엄마의 그 다음 표정과 대사가 궁금했지만 애써 닫힌 방문을 열어 대화를 이어나갈 용기는 없었다. 난 이미 지쳤던 것 같다. 짐을 싸는 것에도, 엄마에게도.
그렇게 평생 분리될 수 없을 것만 같던 그녀 곁에서 제 발로 걸어 나왔다.
일요일 아침. 몇 개 안 되는 박스를 아빠차에 실고서 집을 떠났다. 이 날도 햇살은 따뜻했고, 시원한 바람이 불었다. 모든 게 다 잘 될 것만 같은 예감이 불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