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년 차 췌장암 환자입니다.

또다시 수술디데이

by 다정오

아침 8:30.

수술 전 마지막으로 의사 선생님께 진찰받고 수술 방법에 대해 안내받았다. 양방향내시경시술로 진행할 거지만 전신마취를 해야 하기 때문에 시술이 아닌 수술로 생각하라고 하셨다.

흠.. 전신마취, 수술, 내시경 등등 이젠 나에게 너무 익숙한 단어들이라 그다지 쫄리진 않았다.


그런데 예상치 못한 복병 등장.


친절한 미소를 선보이는 원무과 직원이 손가락으로 무언가를 가리켰는데 거기엔 예상 수술비가 적혀있었다.

대학병원보다 무려 2배나 더 비싼 수술비.

아무래도 개인 병원이다 보니 좀 더 비싸겠지 싶었지만 이 정도일 줄은... 직원 언니의 미소와는 달리 내 앞에 놓인 숫자들은 전혀 친절하지도 않았고 오히려 공포스러웠다.(실비보험에 가입돼 있으나 보험사에 허리디스크 치료 이력을 사전 고지했기 때문에 보험이 제대로 적용될지 미지수였다. 자칫하면 자비로 다 내야 되는 상황)


이제 와서 수술비 때문에 수술 안 받는다고 할 수도 없 몇 달 치 월급을 다 쏟아붓겠다 생각하면서 수술 동의서에 서명했다.


곧이어 직원이 나에게 간병인을 구했냐고 물었다.

간병인? 1도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자 직원은 젊은 사람들은 회복 속도가 빨라 수술 후에도 금방 걸어 다닌다며 반드시 안 구해도 될 것 같다고 말했다. 난 곧 마주하게 될 현실도 모르고 이 말을 곧이곧대로 믿어버렸다.


수술 전 받아야 할 검사들을 부랴부랴 받고 나서야 환자복을 건네받고 병실로 들어갈 수 있었다.

6인실이었고 그곳엔 이미 어르신들로 가득 채워져 있었다.

흠, 이 풍경 역시 너무 익숙해.

난 누가 시키지 않아도 척척 준비물을 캐비닛에 잘 정리해 넣어놓고서 침대에 누워 침착하게 기다렸다.


얼마 후 나를 데리러 온 이동식 침대. 이 역시 익숙한 듯 씩씩하게 옮겨 타 수술실로 이동했다.

그렇게 또다시 바라보게 된 병원 복도의 하얀 천장과 백열등이었다. 췌장암 수술받으러 갈 때와는 다르게 이번엔 신을 향한 기도가 절실하게 흘러나오지 않았다. 그동안 잠을 못 자 이미 반수면 상태였을까. 아님 너무 지쳐버린 탓에 될 대로 되란 식으로 마음을 다 놔버렸던 걸까. 그저 멍하게 끌려가다 보니 어느새 수술실에 도착해 있었다.


그런데 여기서부터 갑자기 정신이 바짝 들었다.

전신 마취 전에 척추에도 마취를 해야 한다며 허리뼈가 있는 곳에 주사를 놓기 시작했다. 그것도 한방이 아닌 여러 방을. 마치 뼈 마디마디마다 주사를 놓는 것 같았다. 여태 맞아본 주사 중엔 신경주사가 제일 아픈 줄 알았는데 이건 어나더레벨이었다. 심지어 허리를 새우처럼 구부려야 했는데 가뜩이나 허리 아파서 죽을 맛이었음에도 주사 맞는 동안 이 자세를 계속 유지해야 돼서 고역이었다.

이젠 진짜로 탈탈탈 모든 게 털려버린 바닥상태에 이른 것 같았다. 분명 남자 직원이 옆에 있음에도 내 상의를 탈의시킨 것에 대해 거부할 힘도 남아있지 않았고, 소변줄 꼽는 것도 덤덤하게 받아들였다. 그래. 진짜 될 대로 돼라. 그냥 모든 게 빨리 끝나길 바랄 뿐이었다.


허리를 수술해야 하니 정면으로 눕는 게 아닌 엎드린 자세로 있어야 했다. 얼굴이 눌리지 않도록 침대에 턱 받침대 같은 게 달려있었는데 그리 편하진 않았다. 차라리 마사지실에 있는 침대처럼 얼굴 구멍이 뚫려있는 게 낫지 않을까 생각하다 곧 전신마취가 시작돼 곯아떨어지고 말았다.


잠시 후 잠에서 깼다. 눈을 뜨기도 전에 턱이 너무 아픈 나머지 아프다고 소리를 냈다. 수술이 다 끝난 줄 알았는데 놀랍게도 수술 중이었다. 간호사들이 일어나면 안 된다고 황급히 소리치길래 난 다시 고개를 숙여야 했고 그 후로 마취제가 재투여됐는지 곧장 잠들었다.


참, 우여곡절 많은 수술실 상황.


다시 눈 떠보니 병실이었다.(이번엔 정상적으로 깨어났다) 턱도 안 아프고 무엇보다 똑바로 누웠을 때 더 이상 송곳으로 찌르는 것 같은 허리 통증이 느껴지지 않았다. 그야말로 개운함 그 자체. 순간 너무 행복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아프지 않은 걸 넘어서 허리 밑으로 피조차 돌지 않는 것 같은 무감각이 느껴졌다. 아직 마취가 덜 풀려서 그럴까?

무엇보다 내 오른 다리. 장애를 걱정해야 할 정도로 감각이 무뎌진 내 오른 다리 역시 잠잠했다. 얼마 후 의사 선생님이 날 찾아왔고 날 덮고 있던 이불을 휙 걷은 채 오른쪽 엄지발가락을 움직여보라고 했다. 역시나 조용했다.

이번엔 왼쪽 발가락을 움직여보라고 했다.

잉? 왼쪽은 괜찮은데.

난 아무렇지 않게 왼쪽 발을 요리조리 움직였다.

의사 선생님은 다행이라는 듯 내게 말씀하셨다.


"수술해 보니 디스크 상태가 너무 심각한 상태였어요. 이 정도면 왼쪽 다리도 감각 이상이 왔을 법한데 그래도 왼쪽은 괜찮아 보이네요. 일단 오늘은 쉬고 내일부터 천천히 걸어보죠."


어디선가 비슷한 상황을 봤던 것 같은 느낌.


췌장암 수술받았을 때도 의사 선생님이 저렇게 찜찜한 말씀을 전해주고 가셨었는데, 이번에도 뭔가 개운치 않은 발언을 들었다.


하지만 더 이상 아프지 않음에 온전히 기뻐하고 싶었다. 이젠 충분히 원하는 만큼 잘 수 있을 거란 사실에 행복해하며 다른 생각은 하지 않으려 애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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