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년 차 췌장암 환자입니다.

또다시 수술 전날

by 다정오

저녁 7시가 다 돼서야 병원에 도착했다.

이곳에서도 내 허리 MRI 사진을 보고선 수술해야 된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그것도 당장 오늘 입원해서 내일 수술하는 것으로.

수술을 마치 번갯불에 콩 구워 먹듯 해도 되는 것인지 판단이 잘 서지 않았지만 그 당시 나로선 어떠한 이성적 판단과 논리적 사고가 거의 불가능했기에 알겠다고 답했다. 내 머릿속은 온통 내가 앞으로 장애인이 될 것인가, 말 것인가의 문제였지, 다른 생각이 비집고 들어올 틈은 없었다.


선생님께 재차 물었다.

"수술 후에도 다리 감각이 안 돌아오면 어떡해요?

그럼 저는 영영 장애인이 되는 건가요?"


선생님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 대답하셨다.

"아니에요, 수술하고 길게는 6개월 내로 거의 대부분 돌아와요. 괜찮을 거니까 너무 걱정 마세요."


어딘가 자신감이 느껴지는 그의 표정과 목소리가 쉼 없이 날뛰는 내 심박수를 안정시켜 줬다. 6개월이면 감각이 돌아온다는 말, 그리고 걱정 말라는 말. 그저 공허한 말뿐일지언정 그냥 단순하게 아무런 의심 없이 믿고 싶었다. 그 순간 나에게 필요했던 건 그 지푸라기 같은 괜찮을 거란 말이었으니까.


들어올 때보단 다소 가벼워진 마음으로 진료실 문을 열 참이었는데,


헐, 큰일 났다..

중요한 걸 잊고 있었어.

회사. 회사는 어떡하지..?


오전까지도 허겁지겁 해치우던 업무들... 내일 바로 수술받으면 이걸 당장 어떻게 감당할 것이며, 무엇보다 회사랑 아무 상의 없이 이렇게 내 맘대로 수술을 결정해도 되는 것인지 두려웠다.


우선 선생님께 어차피 내일 수술할 거라면 오늘이 아닌 내일 아침 일찍 입원하겠다고 말했다. 그리고 곧장 회사로 향했다.


아직 퇴근을 못한 사무실 동료들이 보였다. 그들은 요 근래 발을 절며 고통받는 나를 잘 알고 있었기에 긴말 않고 수술 잘 받으라며 다독여줬다.

그 다음으로 큰 산 2개를 넘을 차례.

그나마 공감능력이 좀 더 있어 보이는 팀장에게 먼저 전화를 걸었다.

느닷없이 내일 수술받게 됐다며 일종의 통보를 날린 나에게 그녀는 의외로 걱정 말고 수술 잘 받으라며 쿨하게 위로해 줬다. 오, 의외로 짧게 끝난 우리의 대화. 일단 산 1개는 패스했다.

그 다음 내 사수인 대리 차례.

우리 대리님으로 말할 것 같으면 일을 참 잘하고, 말도 잘하고, 가끔은 웃기기도 하지만 어느 순간 본인의 발작버튼이 눌려버리면 순식간에 딴 사람이 돼버리는, 여름 날씨만큼 예측하기 어려운 히스테리를 풍기는 사람이었다. 가히 천의 얼굴이라 할 수 있을 정도.

그녀가 이번엔 또 어떤 말로 나에게 상처를 줄지 역시나 가늠이 되지 않았다.(물론, 통화가 끝났을 때 내가 상처받을 것은 아주 명백히 예상 가능한 결과였다.)


"대리님, 정말 죄송하지만 제가 내일 수술받게 됐습니다.. 빨리 수술받지 않으면 다리 감각이 안 돌아올 수도 있대서요...(이하 생략) "


"그래서요? 지금 이렇게 통보해 버리면 다예요? OO 씨 업무는 그럼 누가 해요?...(이하 생략)"


그녀가 내뱉는 말속엔 사람은 없었다. 그저 일하는 기계들만 존재할 뿐.


그렇다고 나 역시 온전하게 서운해 할 순 없었다. 하필이면 가장 바쁜 12월에 아무 예고 없이 하던 일들 다 내팽개치고 수술받으러 간댔으니 이 얼마나 짜증 나고 성가신 상황인가. 내가 남들에게 피해를 준 것은 사실이었다.


급한 대로 인수인계서를 작성하고 한 밤 중에 사무실을 나왔다.

하루 종일 밥도 제대로 못 먹고 종횡무진 돌아다닌 나였지만 집에서조차 쉴 수는 없었다. 입원준비물을 챙겨야 했기에.

어느덧 새벽 2시가 다 돼서야 누울 수 있었다. 막상 눈을 감으니 췌장암 수술 전날처럼 잠은 쉽사리 오지 않았고, 나에게 닥친 이 모든 게 실화가 맞나 싶을 뿐이었다.


더 이상 내 삶의 궤도에 이상 현상은 없을 줄 알았는데, 나의 오만이었다.


난 그렇게 또다시 큰 변수를 맞닥뜨리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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