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년 차 췌장암 환자입니다.

두 번째 입원생활

by 다정오

수술 후 다음 날에도 내 오른 발가락들은 잠잠했다.

아무리 오른발을 쏘아보며 주문을 걸어봐도 내 의지대로 움직여주지 않았다.

게다가 내 몸통이 속이 텅 빈 나무토막으로 변해버린 것처럼 누군가의 도움 없이는 움직이기조차 어려웠고, 상체를 일으켜 밥을 먹는 것도 힘들었다.


이번만은 그냥 내 선에서 조용히 끝내고 퇴원하려 했는데 이건 도저히 불가능이었다.

하는 수 없이 내 전담 간병인인 아빠를 호출했고 아빠는 일이 끝나자마자 부랴부랴 날 만나러 와줬다.

다 늙은 아버지의 두 번째 자식 간병.


얼마 후 의사 선생님이 회진을 오셨고, 내 옆에 있는 아빠에게 첫마디를 건네셨다. 그런데 그 말이 꽤나 인상 깊었다.


"따님이 평소에 너무 많이 참으시는 것 같아요. 이 정도면 정말 아팠을 텐데.. 알고 계셨어요?(중간 생략) 아무튼 수술은 잘 끝났고 오늘부터 조금씩 걷기 운동할 거예요."


아빠는 마치 교무실에 불려 온 학부모라도 된 듯 보였다.

나는 선생님께서 다짜고짜 아빠에게 저런 말씀을 하신 이유가 궁금했다. 내가 관찰하기엔 선생님은 아주 점잖고 부드러운 태도로 아빠를 혼내시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그 앞에서 아빠는 꿀 먹은 벙어리가 된 것 마냥 연신 "네.. 네.."만 반복했다. 그런 아빠의 마음속 이야기도 궁금했다. 하지만 난 이내 고개를 돌려버렸다.


잠시 싸해진 분위기를 차치하고서 선생님은 나에게 병실 복도를 걸어보라고 하셨다. 한발 한발 아기가 걸음마 연습을 하는 것처럼 어색하지만 천천히 걸어봤다.

좀처럼 발에는 힘이 들어가지 않았고 걷는 느낌이 많이 이상했다. 그리고 신고 있던 슬리퍼가 자꾸 벗겨져 다시 신어야 했다.

문득 선생님 얼굴을 쳐다봤는데 거기에 꼭 대략 난감이라고 쓰여 있는 것 같았다. 왠지 모를 당황감이 엿보였다.


내가 반했던 선생님의 자신감 넘치던 모습과 확신의 찬 말들.(수술 후 감각이 곧 원래대로 돌아올 거라던 말)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게 점차 휘발되고 있는 것 같았다. 하루하루 갈수록 그가 내뱉는 언어가 묘하게 변했다.


"조금 더 시간이 걸릴 수 있어요."

"회복까지 보통 1년은 기다려야 돼요."

"퇴원하고 재활치료 열심히 하면 돌아올 거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


기약 없는 상황에 놓인 게 확실하다는 판단이 들었다.

밤마다 할머니들의 코 고는 소리와 함께 머릿속을 장악한 잡념들로 인해 잠이 오지 않았고, 매 끼니마다 입이 없어 식판에는 음식이 거의 그대로인 채 퇴식구로 버려졌다.


췌장암 수술까지 받은 나였지만 허리디스크 수술은 그보다 몇 배는 더 불편하고 삶의 질을 떨어트리는 것 같았다. 아주 기본적인 움직임에 제한이 생긴다는 건 정말 미치도록 괴로운 일이라는 걸 배웠다.


매일 복도를 걷고, 온몸에 땀이 날 정도로 뒤꿈치 들기 운동을 했지만 내 슬리퍼는 여전히 벗겨졌고 발가락을 비롯해 내 오른 다리 측면은 마취제라도 맞은 것처럼 감각이 무뎠다.


난 아침이고 밤이고 몹시 두려웠지만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건 머릿속에 긍정적인 생각을 억지로라도 처넣어 이 빌어먹을 절망감을 지우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잠깐이라도 방심하면 금방이라도 쏟아져 버릴 것 같은 눈물과 분노를 꾹꾹 누른 채 계속 걷고 또 걸으며 감각이 돌아오길 기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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