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리디스크 수술 후
4일간의 입원생활이 끝나 퇴원 수속을 했다.
과거의 나라면 분명 이 날만을 손꼽아 기다렸을 것이다. 바깥공기를 한껏 들이마시고 희망찬 미래를 꿈꾸며 병원 밖을 나섰을 테지만 이번엔 아니었다. 전혀 달랐다.
병원 밖을 나서는 것도, 심지어 꿉꿉하고 지저분한 환자복을 벗는 것도 다 싫었다. 그저 제대로 걷지도 앉지도 못하는 내가 앞으로 무얼 할 수 있을까, 마치 무한궤도를 돌듯 부정적인 생각에만 한없이 매몰돼 있었다. 난 이대로 회생 불가 실패자가 되었다고 생각했다.
퇴원 후 집으로 돌아가는 길.
내 옆에는 여전히 아빠가 있었지만 아빠는 내 기분과 내 감각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아니, 이해할 수 없었다. 아무리 부모 자식 관계여도 우린 명백한 타인일 뿐이니. 내가 지금 한걸음 한걸음 내딛는 게 얼마나 조마조마한지, 자칫 부주의하게 행동했다가 수술 부위가 잘못돼 재수술이라도 하게 되는 건 아닌지 등등 온갖 걱정과 불안을 느끼는 건 오롯이 내 몫이자 나만이 알 수 있는 것들이었다.
아빠는 언제나 내 옆을 지켜줬지만 내 속에 들어찬 고통까진 이해할 수 없었다.
집에 다다르자 침대를 실은 트럭이 보였다. 언니가 급하게 주문해 준 내 침대였다.
의사 선생님께서 허리 수술을 받은 뒤엔 바닥에 앉거나 눕는 행동을 지양하라고 했다. 선생님이 애써 말씀하지 않았어도 나무토막으로 변해버린 내 허리를 보면 전처럼 바닥에 철퍼덕 앉는 게 도저히 불가능해 보였다.
언니는 급한 대로 가구 매장에 찾아가 동생 사정을 설명하며 퇴원일에 맞춰 배송해 달라고 거듭 요청했다. 난 이렇게 또 언니에게 빚을 졌다.
코딱지만 한 원룸에 과연 침대가 들어갈 수 있을까 싶었지만 대충 짐들을 한쪽으로 치워보니 침대 자리가 생기긴 했다.
난생처음 가져본 새 침대.
누가 물려주거나 버린 침대가 아닌 탄성 짱짱하고 색도 바래지 않고, 새것 냄새가 배어있는 있는 침대를 보고 있으니 그 와중에도 기분이 좋았다.
당장이라도 샤워를 깨끗이 하고 향긋한 바디로션도 바르고 깔끔하게 빨래한 옷으로 갈아입고서 침대에 휘릭 누워보고 싶었으나 실밥을 풀기 전까진 샤워는 금물. 어차피 씻을 기력도, 밥 먹을 여력도 없었다.
또다시 쭈글쭈글 할머니가 돼버린 나는 매가리 없이 픽 쓰러지듯 누웠다.
새 침대가 선사해 준 기쁨은 그새 어디로 가고 서서히 원래 위치로 돌아왔다. 모든 걸 회피하듯 눈을 감고 자려고 노력했으나 울컥울컥 속에 꽉 차있는 에너지들이 자꾸 밖으로 분출하려 야단이었다. 결국 눈물이 많이 흘러나왔는데 난 이걸 닦지도 않고 그냥 이 상황을 방치했다. 뭐랄까. 이 감정 속에 철저히 잠식되고 싶었던 것 같달까. 그렇게 영원히 눈을 뜨고 싶지 않았고 영원히 내일이 오지 않길 바랐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