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년 차 췌장암 환자입니다.

돌이켜보기

by 다정오

어릴 때부터 식습관이 매우 안 좋았다. 맞벌이하느라 바쁘신 부모님과 5살 터울의 언니가 밖에서 주로 시간을 보낼 때마다 나 혼자 집에서 라면을 끓여 먹거나 간혹 반찬(영양가 없는 각종 냉동식품, 가공식품)을 꺼내 먹곤 했고, 가끔 아빠가 쥐어준 용돈으로 과자와 햄버거를 사 먹으며 배를 채웠다.

췌장 수술 후에 잘못된 식습관을 바로 잡지만 그때를 돌이켜보면 어떻게 그런 것만 먹고살았을까 생각들 정도로 끔찍했다.


잠시 샛길로 빠지자면,

14살 갓 중학생이 됐을 때 피부병에 걸렸다. 병명은 건선인데, 아마 걸려본 사람들은 알 것이다. 이 병이 얼마나 지독하고 잔인한 병인지를.


학창 시절 내내 건선 때문에 고생을 많이 했다.(놀림도 많이 받았다) 처음 발병했을 때만 해도 금방 낫겠지, 하며 얕잡아 봤지만 금세 전신으로 빨간색 딱지가 퍼졌고, 사태의 심각성을 느낀 후로 양, 한방 가리지 않고 병원 가고 하다못해 민간요법까지 시도했으나 점점 심해지기만 했다. 그러다 우연히 방문하게 된 어느 병원 의사가 내게 말했다.


"너 나중에 암은 안 걸리겠다. 건선 있는 사람들이 암에 잘 안 걸리거든."


이에 대한 근거로 뒤에 뭐라 뭐라 말씀하셨는데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이 말의 핵심인 건선환자는 암에 잘 안 걸린다는 말. 이 말만은 오래오래 기억했다.

돌이켜 보면 웃기다. 과학적 증거가 전혀 없는 의 말을 난 신념으로 여기며, 엉망이던 식습관을 고칠 생각 안 하고, 잠도 주로 새벽에 잤으며 운동 또한 전혀 하지 않았던 것일까. 나의 순진함과 무지함이 병을 더 키우고 말았다.


췌장암 판정을 받고 그간의 삶을 자주 돌이켜봤다.

줄곧 부실했던 식습관, 수면습관, 운동부족 등등. 그리고 무엇보다 가장 강렬하게 뇌리를 스친 건 스트레.


중학생 때부 엄마와 둘이 살았다. 엄마와 자주 갈등 빚었으며 대학 졸업 후에는 우울증이 더욱 심해져 엄마와 강도 높은 다툼을 빈번하게 했다. 뿐만 아니라 전공 지도 교수님에게 물질적, 심리적으로 큰 상처와 손해를 입어 오랫동안 마음고생을 했다. 이 모든 게 융합되어 극도의 스트레스로 작용한 것 같다.

가끔 절망스러운 상황에 못 이겨 울음이 솟구칠 때가 있었는데, 그때마다 이상하게 명치가 아팠다. 가슴 안쪽 아주 깊숙한 곳에서 드글드글 끓는 느낌이 들고, 날카로운 것으로 콕콕 찌르는 이상한 기분까지 들었지만 그게 정확히 무슨 증상인지 알 수 없었다. 나중에서야 그곳이 췌장이구나, 아차렸다.


췌장암에 걸리고 나서 난생처음 췌장의 생김새를 인터넷에 찾아봤었다. 뭐랄까. 되게 심플하게 생긴 젓갈 같았다.


이렇게 작고 소중한 췌장을 3분의 2나 잘라내야 한다니... 여전히 현실 같지 않은 현실이었다.


수술까지 남은 두 달 동안 틈틈이 췌장 질환 환자 커뮤니티에 들어가 수술 후기를 읽었다.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췌장으로 인해 고통받고 있었다. 내 또래가 쓴 글들과 심지어 나보다 어린 사람이 쓴 글도 있었다.


내가 아프지 않았다면 결코 알지 못했을 수많은 아픔들이 여기 있었구나.


우린 아마추어적인 의료 지식과 병원 정보를 공유하며 서로에게 힘이 돼주었다. 간혹 누군가 절규하는 글을 썼다면 우리도 당신의 고통을 짐작할 수 있다며 공감해 줬다.

애초에 이 커뮤니티를 누가 왜 만들었는지는 모르지만, 참으로 감사한 분이다. 이렇게 따뜻한 위로와 공감을 통해 조금이나마 기운 나게 해 주니까. 그리고 무엇보다 나 혼자만 특이하고 특별한 사람이 아니란 걸 거듭 일깨워 주니까.

이렇게 아프니까, 아파보니까 형성될 수 는 공동체였다. 나 역시 그 속의 일원으로 있으면서 덜 외로울 수 있었다.


커뮤니티에 올라온 사람들의 글에서 공통적으로 보이는 문장이 있었다.


'수술 후 마취가 풀리면 시작되는 극강의 통증'


췌장 수술을 받은 사람들이 대체로 주장하는 말이다.

심지어 처음 겪어보게 될 통증이라는 말도 여럿 보였다.

하.. 몹시 공포스럽군.


뇌는 경험에 기반한 것들만 감각할 수 있댔는데.. 내가 아무리 이런 글을 눈팅하며 머릿속으로 시뮬레이션을 돌린대도 수술 전까진 그 통증이라는 걸 결코 짐작조차 못하겠지.

그저 두려움과 긴장으로 가득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째깍째깍


어느덧 수술 디데이 3주 전쯤..


띠리링 띠리링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왔다.


"OOO님, 여기 OO병원인데요. 죄송하지만 저희 교수님께서 개인 사정으로 인해 그날 수술 집도를 못 하실 것 같아요."

"네??"


헐... 이 무슨.. 순간 눈앞에 낭떠러지가 보였다.


"대신에 OOO교수님이라고 저희 교수님 의대 시절 때부터 가르치신 선생님이 계시거든요? 그분께서 수술해 주시기로 했는데 괜찮으시겠어요?"


왓??


OOO교수라면 커뮤니티에서 줄기차게 봤던 이름. 처음부터 그분께 수술받고 싶었지만 진료 대기만 6개월 이상 걸린대서 예약 엄두조차 못 낸 바로 그분..


퍼뜩 정신 차리고 얼른 대답했다.


"네. 좋아요. 그분께 수술받을게요."

"네. 알겠습니다. 그리고 수술 날짜도 변경해야 될 거 같아요. 9월 28일에 입원해서 다음 날 일찍 수술하는 걸로요. 괜찮으세요?"


9월 28일.

이 날은 내 생일이다.

생일에 입원해서 생일 다음 날 받는 수술이라..

평소에도 의미 부여를 꽤 잘하는 나로서는 이만큼 의미 부여하기 은 날도 없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네. 괜찮습니다."


전화를 끊고 나자 두렵고 긴장됐던 마음이 안도감으로 바뀌었다.


세상이 나에게 주어진 두 번째 삶을 잘 시작해 보라고 응원해 주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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