췌장암 SPN, 경계성 종양, 3.7cm
긴급 가족 대책 회의가 열렸다.
우선 CT검사부터 아빠와 동행하기로 했다. 그리고 검사비를 비롯한 각종 병원비를 아빠와 언니가 지원해 주겠다는 고마운 회의결과가 도출되었다.
CT검사일.
역시나 적응 안 되는 대학병원 분위기다. 그래도 저번에 한 번 와봤다고 미로 같은 길 속에서 아빠와 함께 검사실을 잘 찾아갔다.
8시간 공복을 하고 피검사를 먼저 했다. 생각보다 많은 양의 피를 뽑았다. 겨우 팔 한쪽에서 저렇게나 많은 피가 뽑히다니... 인체의 신비를 느꼈다. 그다음, 상의 탈의 후 검사복으로 갈아입고 또다시 팔에 주삿바늘을 꼽은 채 알약 하나를 먹었다. 곧 엄청난 기계가 모셔져 있는 방으로 들어갔는데 백색소음처럼 알 수 없는 소리가 방안에 가득했다.
검사 방법을 안내받은 뒤에 떨리는 마음으로 만세 동작을 하고서 누웠다. 잠시 후 삐삐- 소리가 나며 기계에서 나오는 자동 안내 음성이 반복적으로 들렸다. 첫 경험이라서 그랬을까, 아님 이미 제정신이 아니어서 그랬던 걸까. 꽤 길었던 검사 시간 내내 나는 웃고 있었다. 솔직히 처음 해보는 검사가 흥미롭기도 했다. 무엇보다 그렇게 웃고 있어야 좋은 일이 생길 것 같았다.(부디 검사실 선생님이 날 조커라고 오해하진 않으셨길)
검사 후 집으로 가는 길.
그간 아빠가 많이 놀랐는지 함께 있는 내내 말이 없고 내 눈치를 보았다. 나 역시 많은 말을 하지는 않았다. 그저 별일 없을 거라고 퉁명스럽게 건넨 말 한마디가 전부.
사실 나는 아빠와 별로 친하지 않다. 물론 언니와 엄마와도. 우리 가족은 심각한 부모갈등으로 인해 오래전부터 분리된 생활을 해왔다. 게다가 네 사람 모두 정서적으로 불안정한 성격을 가지고 있어 함께 모이면 반드시 싸움이 일어났다. 그래서 나는 언제부턴가 가족에게 마음의 문을 닫아버렸고 비밀 많은 성인으로 자라났다.
내 췌장에 문제가 있다는 걸 알게 됐을 때도 가족에게 알리지 않은 건 이 같은 이유에서다. 결국 아빠와 언니에게는 털어놓게 됐지만 끝끝내 엄마에게만은 말할 수 없었다. 심지어 한 공간에 같이 사는 엄마임에도 불구하고.
며칠 후, 검사 결과가 나왔다며 소화기내과 진료 안내 연락을 받았다.
지난번 홀로 우두커니 시간을 보냈던 그때와는 달리 이번엔 내 옆에도 남들처럼 보호자가 있었다. 누군가 내 옆에 있다는 느낌이 나쁘지 않았다.
오랜 대기 후 드디어 내 차례.
검사 결과는 SPN(고형가유두상종양), 혹의 크기는 3.7cm었다. 너무나 낯설고 어려운 이름. 흔히 경계성 종양이라고 불리는 암이었다. 선생님의 설명을 직관적으로 이해하기는 어려웠지만 그래도 당장에 죽을병이 아니라는 것에 안심하던 차였다.
하지만 경계성이기에, 다시 말하면 현재는 착한 놈으로 볼 수 있을지라도 언제든 악하게 돌변해서 췌장암으로 진행할 수 있는 종양이기에 절제 수술을 받는 게 좋다고 했다. 혹이 작으면 모를까 3.7cm로 크기가 있는 편이라 내 경우엔 수술이 꼭 필요하다고 했다.
사람 마음이란 게 참.. 악성종양이 아니라는 것에 감지덕지하던 그 마음은 어디로 가고 수술을 해야 한다는 말에 곧바로 밀려드는 불만.
길게 생각 안 하고 그 병원 외과에서 수술을 받으려고 했다. 그런데 의사인 친구에게 조언을 구하니(가족에게 커밍아웃 한 김에 평소 간헐적으로 연락하던 친구에게도 내 상황을 알렸다) 췌장은 수술 중에서도 어려운 수술에 속하기 때문에 언론에서 말하는 빅 5 병원에서 받는 게 좋을 거라고 말해줬다.
빅 5 병원.. 평소 뉴스를 잘 안 본 탓일까. 처음 들어보는 병원 분류법이었다. 선택지가 무려 5개나 있어 어디로 가야 할지 고민됐다. 친구는 이런 날 위해 주변 동료들에게 의견을 구해줬고, 그 덕에 빅 5안에 드는 A병원 간담췌외과에 새로 예약하게 되었다.
많은 사람들이 췌장은 고난도의 장기(?)라서 한 곳에서만 진단받기보다는 여러 병원에서 크로스체크 해야 된다고들 한다. 나 역시 인터넷 커뮤니티에 있는 글들과 친구의 조언으로 서울에 있는 또 다른 B병원 진료도 예약했다. 만약 이 병원이 더 좋다고 생각 들면 여기서 수술받을 생각이었다. 운 좋게 B병원 예약이 빨리 잡혀 A병원보다 먼저 가게 되었는데 확실히 병원 규모가 커서인지 그 분위기에 압도될 것 같았다. 그만큼 더 정신없고 길도 복잡하고 무엇보다 사람들 소음으로 몹시 시끄러웠던 기억이 난다.
B병원 의사는 내 CT검사지를 보자 두말 않고 바로 수술을 권했고, 수술 후 합병증 가능성에 대해서도 설명해 줬다. 이때까지 생각해보지 않았던 합병증.. 또다시 좌절과 절망의 순간이었다.
얼마 후, A병원 진료일. 집에서 한 번에 가는 버스가 있어 가는 길이 수월했다. 특히 진료실이 있는 신축건물이 무척 깨끗하고 편안한 느낌을 준 데다 B병원보다 덜 복잡하고 조용해서 마음에 들었다.
알맞은 비유인지는 모르겠으나 이사 갈 집을 고를 때 마음이 착 감기는 집으로 골라야 한다는 말처럼 왠지 병원을 고를 때도 비슷하다고 느꼈다.
이미 의사를 만나기도 전에 A병원에서 수술하기로 결정을 내렸던 것 같다.
이 날도 아빠와 함께였다. A병원 의사 선생님은 여태 만난 선생님들 중에 가장 젊었다.(처음엔 명의라고 소문이 자자한 다른 선생님께 수술받고 싶었으나 그 선생님은 진료 예약만 최소 6개월이 걸린다기에 포기했다.) 선생님은 걱정 가득한 얼굴로 앉아있는 우리에게 매우 담백한 어조로 수술 방법과 수술 후 합병증에 관해 말씀하셨다.
복강경과 로봇수술, 2개의 수술 방법이 있는데 로봇수술은 복강경보다 비용이 2배 비싸지만 월등히 좋은 점이라곤 딱히 없다. 단지 본인이 수술하기에 손이 조금 더 편하다고 설명해 주셨다.
또다시 찾아온 선택의 순간이다. 아빠는 비싸더라도 로봇수술로 하자고 말했지만 나는 복강경으로 해도 충분할 거 같았다. 의견 격차가 있는 우리에게 잠시 시간을 줄 테니 밖에서 고민하고 들어오라며 기회를 주신 친절한 선생님.
난 결국 아빠의 말을 듣지 않고 복강경 수술을 선택했다. 비용이 저렴해서 선택한 게 크지만 그냥 로봇이든 복강경이든 수술법은 별로 중요한 것 같지 않았다. 그저 선생님 자체에 신뢰가 갔고, 로봇수술에 극명한 장점이 있지 않는 한 기본을 선택해도 괜찮을 것 같았다. 뭔가 이런 고민이 크게 중요하지 않았다. 오히려 당뇨라는 수술 후 합병증이 더 신경 쓰이고 불편한 주제였다.
수술 후 생길 수 있다는 합병증 당뇨..
췌장은 소화를 돕는 인슐린을 분비하는 곳이기에 당뇨병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췌장이 온전하게 있어도 당뇨 걸리는 사람이 수두룩 빽빽인데 난 췌장을 3분의 2나 잘라내야 하는 상황이었다.(췌장을 3 등분하면 머리, 몸통, 꼬리로 나뉜다. 내 경우엔 몸통에 혹이 있어 몸통부터 꼬리까지 잘라야 했다.)
췌장을 잘라내면 인슐린 분비가 더 어려워지니 당뇨 발병 위험성이 월등히 높아진다. 의사 선생님은 내게 50~60%의 확률로 당뇨 합병증이 생길 거라고 말씀하셨지만 내게는 100% 확정으로 들렸다.
왜냐하면 난 늘 대체로 운이 없었으니까.
행운과 불운이 있다면 행운은 주로 날 스치고 멀리 달아나 버릴 때가 많았고, 불운은 내 발목을 잡고서 잘 놓아주지 않았다. 이번에도 당뇨라는 불운이 지겹게 날 따라와서는 내 발목에 철컥 사슬을 걸어놓겠구나, 싶었다.
나름 길었던 진료가 끝나고 원무과로 가서 수술 예약을 했다. 분명 이제야 본격적인 레이스가 시작됐는데, 완주한 것 마냥 이상하리만치 마음이 홀가분해지고 편해짐을 느꼈다.
나는 나 못지않게 고생하는 보호자와 함께 마치 고된 업무를 마치고 허기진 배를 채우려는 직장인의 심정으로 근처 식당으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