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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리하리 Sep 03. 2018

헛된 영원에 머물러 있지 말라

영원하지 않음이 곧 영원일 지도


이 세상에서 영원한 것은 없어요. 그러니 무언가에게 영원한 존속을 요구하는 건 어리석은 짓이겠죠. 하지만 그것이 존재할 때 그 안에서 기쁨을 취하지 않는 것은 훨씬 더 어리석은 거에요. 변화가 존재의 본질이라면 그것을 우리 철학의 전제로 삼는 것이 현명하죠. 똑같은 강물에 두 번 들어갈 순 없어요. 강물은 끊임없이 흐르니까. 하지만 다른 강물에 들어가도 그것 역시 시원하고 상쾌한 건 틀림없어요.


서머싯 몸 <면도날> 中


일은 똑같다. 정확히는 일의 본질이 똑같다고 할 수 있다. 회사 안에 있으면서도, 회사를 나와서도 나의 삶은 계속된다. 삶의 영속성을 유지하기 위해서라도 더욱 일은 중요하다. 다만 일의 겉모습이 조금 달라질 뿐. 평생 직장이 없어진 시대에 직장이 내 곁에 영원히 머물러 달라고 요구할 수 없다. 나는 그 직장이 영원하지 않을 것임을 알고 있었다. 외국처럼 고용 유연성이 높아 금세 잘리거나 그러지는 않지만, 스스로 직장 혹은 어떤 조직에 속하기를 거부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주변에서도 직장에 당신의 영혼을 바쳤지만, 돌아오는 것은 쥐뿔도 없는 그런 경우를 너무 많이 봤다. 따지고 보면 우리 아버지도 그랬다. 많은 기성 세대들은 IMF를 거치며 배신당했다고 하지만, 영원한 것은 애초에 없었다. 우리는 그 사실을 뻔히 알고 있었으면서도 나를 지켜주던 직장이 영원하기를 바랐던 지도 모른다. 이는 자연스러운 수순이다. 우리는 꽤 오랫동안 억지로 직장을 영원히 존속시키기를 바랐다. 그 바람 때문에 경제 위기라는 탈이 났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내 본심이 정착을 바라지 않았던 것 같기도 하다. 정착이 심리적 안정을 가져와 꾸준한 발전을 만들 수 있다. 최소한 나에게 정착은 안주다. 안주란 단어에서 느껴지듯 나는 정착을 싫어한다. 장돌뱅이 아니냐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자기 계발의 관점에서만 말하는 거다. 사랑의 관점에서, 정착은 당연한 거다. 물론 사피엔스에서는 일부 일처제가 인간이 진화하면서 만들어진 규율이라고 하지만, 내 입장에서 한 여자에게 정착하는 것은 상식이다. 상식을 거스르는 것은 결국 비난받게 된다. 나는 남들의 비난이 싫다.


변화를 선호하는 나의 선택이 맞는지 그 순간에조차 고민한다. 그것이 정답인지 전혀 알 길이 없기 때문이다. 다만 시대의 변화를 보고 나의 결정이 정답이지 않을까 유추할 뿐이다. 어렸을 때에도 생각해 보면 내가 고민했던 것들이 정답이기를 바랐던 것 같다. 그래서 나의 생각에 동조해 주는 이야기들에 눈길이 갔다. 퇴사할 당시에도 마찬가지였다. 불안했던 나는 퇴사 결정이 미래를 봤을 때, 훌륭한 선택이라고 얘기해 주는 글만 정독했다. 그걸 보면서 일종의 위로를 받았던 것 같다. 이미 마음의 결정은 내렸지만 내가 맞았다고 말해 주는 글들. 세상의 변화는 지금 이 순간에도 계속되고 있지만, 굉장히 점진적이다. 아직까지는 나의 선택은 주류가 아닌 비주류이다. 유달리 아버지와의 갈등이 잦았던 것도 나의 선택에 대부분 반대 의사를 표명하셨기 때문이었다. 아버지의 생각은 언제나 주류의 생각이었고, 나의 주장은 비주류라 설득력이 약했다.


회사 대신 대안으로 정한 나의 일을 이해시키는 것도 어려웠다. 자기소개서라는 장르를 써 준다? 이게 얼마나 대단한 니즈가 있을까 의구심 어린 시선으로 보는 사람들이 많다. 나야 이 일을 부업으로 2년 가까이 하면서 취업 준비생들이 자기소개서에 얼마나 큰 스트레스를 갖고 있는지 알고 있다. 그러나 일단 취업이 어렵다는 것을 공감하는 어른들이 그리 많지 않다. 그리고 자기소개서를 자기가 써야지 남이 써 주거나 남의 조언을 듣는다는 것에도 공감하지 못한다. 주입식 교육으로 자기 생각을 차분하게 글로 표현하는 것을 요즘 친구들이 잘 못한다고 떠들어 봤자 씨알도 안 먹힌다. 결국 굳이 그들을 설득시키기보다는 결과로 보여주는 것밖에는 방법이 없다.


어른들만 그런 건 아니다. 또래 중에 직장을 다니고 있는 애들도 나도 해 볼만한데? 라는 식으로 얘기하거나 괜히 나 방송하는데 들어와서 어줍지 않은 조언들을 건넨다. 그들을 보며 떠오르는 건 '콜럼버스의 달걀'이다. 직접 해 보지도 않은 것들이 나도 할 수 있겠네 라는 식의 이야기를 주변에서 하는 것만큼 거만한 얘기도 없다. 석박사부터 공대, 문과, 미대 등 전공을 넘나들며 취준생 각각의 이야기에 집중하고, 그 이야기에서 가상의 캐릭터를 만들어 주는 것은 보기보다 어렵다. 팩트 나열에만 익숙해져 있는 친구들이다. 그 사실들 사이를 스토리로 연결하는 것은 해 보지 않고서는 쉽다고 함부로 제단하지 않았으면 한다. 이건 흡사 내가 나온 군부대가 제일 빡세다고 주장하는 군필자들의 입씨름과 다를 바 없는 짓이다.




강물은 흘러 바다와 만납니다. 나비도 바다에 날개가 젖기 전까지는 그 바다가 얼마나 깊은지 몰랐습니다. 바다에 감춰진 빙하도 충돌하기 전까지는 얼마나 깊이 박혀 있는지 알지 못합니다. 어쨌든 중요한 건 모든 것에는 끝이 있다는 겁니다. 노스트라다무스가 지구 종말을 괜히 외친 게 아닐 겁니다. (물론 종말은 일어나지 않았지만^^) 인생을 살다가 제가 언젠가 죽을 때가 되면 돌아보며 행복했노라 외치고 싶습니다. 그러려면 역시 지금 제가 하고 있는 현재의 일에 몰입하는 게 중요하겠지요? 누가 뭐라 하든 제 선택에 아쉬움이 없도록 최선을 다할 요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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