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삶은 결국 나의 것, 내가 헤쳐 나가야 할
긴 밤을 지새우고 났을 때, 동쪽 창에 발갛게 번져오는 햇살을 보았을 때, 그녀는 문득 동아줄 같은 삶의 질김을 깨닫지 않을 수 없었다. 아침이란 것은 하루도 빠짐없이 잘도 찾아오는구나, 이런 생각을 하면서 망연히 누워 있는데 이윽고 부지런한 이웃의 비질 소리, 아침잠 없는 갓난아이의 칭얼거림, 또한 근심 없는 사람들의 청명한 말소리들이 간단없이 그녀의 귀에 닿았다. 살아있음은 뭐랄까, 지루한 반복 외 그 아무것도 아니다, 라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었으나, 그래도 밝음은 동시에 희망 같은 것을 안겨 주기도 하였다.
양귀자 <그 여자의 고정관념> 中
일생을 살며 재미있었노라 말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일제 강점기 때, 의열단을 이끌었던 김원봉 정도가 아니고서야 자신의 삶이 짧았지만 다이내믹했다고 자신있게 말할 만한 이는 없다고 생각한다. 결국 모두의 삶은 거의 비슷하다. 지난 주 글쓰기 살롱에서 만났던 수강생은 자기의 인생을 움직이는 1순위를 '재미'라고 말했다. 그러나 자극적 재미만 추구한다면 삶은 급격하게 요동칠 확률이 높다. 극단의 시대라고는 하지만, 그 극단을 맞이하기 전 우리는 꽤 긴 고요를 거친다. 폭풍전야라는 말을 떠올려 보면 이 이야기가 이해될 것이다. 내가 주업으로 삼고 있는 자기소개서도 매년 폭풍처럼 몰아치는 시기가 있다. 이른바 대목이다. 3월과 9월, 이 기간을 제외하고서는 잔잔한 미풍은 불지만 이 때만큼의 바람이 불지는 않는다. 지난 달 28일을 기점으로 주요 기업들이 우후죽순처럼 채용 공고를 쏟아내고 있다. 그러나 이 직전에는 정말 조용했다. 개강이란 폭풍이 불기 전, 오늘같은 날도 고요한 폭풍전야이다. 매주 출근하는 회사원들에게 일요일 밤도 그런 존재다.
많은 이들이 폭풍을 피하고 싶어한다. 이번에 태풍 솔릭처럼 한반도를 살짝만 지나갈 수도 있지만, 이는 말 그대로 운이 좋은 케이스이다. 이 행운을 얻기 위해 기도한다. 나도 그랬다. 신체검사 1급이 나와서 꼼짝없이 군대를 가야 했을 때, 기도한 적이 있었다.
통일이 되게 해 주세요.
보수정권이 대한민국을 막 잡았던 2009년이라 남북관계는 그리 유쾌하지 않았다. 당연히 통일은 요원한 이야기였다. 신은 나의 기도를 들어주지 않았다. 조금 아쉬운 게 있다면 4수나 하고 대학을 갔던지라 한 학기만 마치고 바로 군대를 갈 수밖에 없었다. 기도의 시간적 여유가 부족했다고 한다면 말이 되려나? 행운은 내 손을 들어주지 않았고, 그렇게 나는 군대라는 폭풍을 온몸으로 견뎌 내며 어른이 되었다.
폭풍이 지나간 자리는 멍에가 남는다. 화마가 지나간 땅이 폐허가 된 것처럼 말이다. 폭풍이 지나간 하늘에는 무지개가 뜨고, 산불이 지나간 땅에는 새로운 싹이 자라난다. 그것들은 곧 희망이다. 희망적 미래를 꿈꾸는 자만이 조금 버거운 현재도 버텨 내며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회사라는 폭풍이 예상보다 꽤 오랜 기간 나에게 불었다. 폭풍의 와중에 글쓰기라는 희망을 봤고, 그 희망이 나의 새로운 미래를 만들어 줄 거란 믿음이 생겼다. 그 믿음이 맞다는 것을 확인하기 위해 여러 사람들의 글쓰는 걸 도와주는 실험을 했고, 나 역시도 매일 한 편 이상의 글을 쓰며 스스로에게도 실험을 했다. 흐릿한 희망이 뚜렷해진 순간 폭풍에서 비껴 서 있을 용기가 생겼다.
지금이야 퇴사한 지 몇 달밖에 지나지 않아 이런 나의 삶이 지루하지 않다. 그러나 이것이 지속된다면 이 역시도 익숙한 나의 일상이 될 거다. 지루함 그 자체를 받아들이면서도 그 사이에서 작은 변화를 모색해야 한다. 그 변화들이 나에게 긍정적 에너지를 지속시켜 줄 때만이 지루하다고 여겨지는 삶에서도 재미를 느끼고, 그 기간이 길어질 수 있다. 다행인 것은, 내가 회사를 나온 뒤 하고 있는 일이 글쓰기라는 것이다. 어떤 소재로도 글을 쓸 수 있다. 같은 소재라도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 나의 글은 달라질 수 있다. 같은 글이라도 그 글을 읽는 독자들이 어떤 감정을 갖느냐에 따라 글의 의미는 확연히 달라진다.
회사에 들어갔지만, 여느 사람들처럼 회사란 공간에 안정적으로 몸을 누이기 위해서 입사한 것은 아닙니다. 언제라도 떠나고 싶다는 생각은 갖고 있었습니다. 꽃보다 남자에서도 지후 선배가 "흰 배와 바람만 있으면 어디든 떠날 수 있어." 라고 말합니다. 이 얘기를 뒤집어 살펴보면 그래도 떠나려면 흰 배와 바람 정도 최소한의 조건을 갖추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퇴사한 저의 삶은 이런 여행보다 예측하기 어려웠습니다. 보통은 아침에 눈을 떠야 하루가 시작되는데, 퇴사하고 나서 언제 눈을 떠야 한다는 규율을 정해 두지 않았습니다. 창문 틈새로 새어 나오는 햇빛에 눈을 뜰 때도 있고, 바깥의 참새 소리에 눈을 뜰 때도 있습니다. 하루의 시작부터 예측 불가능성이 넘쳐나는 것만 보더라도 나의 매일 매일과 예측 불가능성 사이의 동반자적 관계는 아마 제가 회사에 다시 들어가지 않는 한 계속될 것입니다. (물론 제가 어느 회사든 다시 들어갈 확률은 제로에 가깝습니다.)
흔들리면 흔들리는 대로 제 삶을 그 흐름에 맡기겠습니다. 그것이 제 삶을 갉아 먹어 삶 자체에 회의감을 가지는 순간이 찾아 올 지도 모릅니다. 그 때마다 지금 하고 있는 일 그리고 제 퍼포먼스를 기다리는 사람들을 생각하겠습니다. 외부에 좌지우지하기에는 저를 찾는 사람들이 참 많고(하반기 오픈과 동시에 유독 많아졌습니다^^) 그들 모두에게 행복을 주기 위해서는 고민하고 있을 시간이 많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