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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리하리 Sep 19. 2018

이전 회사의 갑작스런 매각을 보며

회사는 나를 지켜주지 않는다의 real version

기사를 보고 가슴이 철렁했습니다. 퇴사할 당시가 막 새록새록 떠올랐습니다. 올 4월이었습니다. 날씨 따뜻한 봄날에 퇴사하겠다고 말했습니다. 저의 길을 응원은 한다만, 과연 안전한 회사란 울타리를 나가서 이 엄동설한에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제가 얼마나 버틸지 회의적 시선이 가득했습니다. 그래도 저는 나갔습니다. 업무에 정도 못 붙이고 있었고, 그대로 연말까지 가면 MBO 평가에서 최하점은 따 놓은 당상이었습니다. 올해가 끝나면 대리(선임)가 되는 상황이었지만 2년 연속 낙제점의 업무 성과 점수를 받으면 대리 진급도 어려웠습니다. 그래도 저를 받쳐 줬던 자기소개서 빨리 쓰기 skill만 믿고 회사를 나왔습니다. 당시 아프리카TV에서 자소서를 주제로 개인방송을 하기로 했지만, 이것 역시 어떻게 될지 모르는 상황이었고, 시즌 때마다 자소서로 쏠쏠하게 돈을 벌고 있었지만 매출이 연봉만큼 나오던 게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매 시즌마다 확실한 출처가 있던 것도 아니었습니다. 즉, 저를 둘러싼 모든 상황이 불확실성의 연속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나갔고, 버텼습니다. 버티며 브런치에 5월부터 거의 매일 글을 썼습니다. 하반기의 폭발을 기다리며 제 글 실력을 갈고 닦았습니다. 자기소개서에만 국한되지 않고 다양한 분야의 글을 매일 꾸준히 쓰면서 내공을 키웠습니다. 이 차가운 세상에서 나를 지켜 주는 건 아무 것도 없고, 오로지 '글을 빨리 쓰는' 제 재주만이 저를 지켜준다는 믿음으로 몇 달을 버텼습니다. 들어오는 돈에 비해 나가는 돈이 더 많았기 때문에 차를 팔면서 버텼습니다. 남들은 첫 차를 팔아서 슬프지 않냐고 묻지만, 저에게 그런 감성은 사치였습니다. 버티다 보면 기회가 온다고들 하지 않습니까? 그래서 버텼고, 확실히 24시간 내내 글쓰기, 자소서를 도와주다 보니 더 많은 취준생과 만났고 이전 매출보다 더 상승하며 하반기의 첫 포문을 성공적으로 열었습니다. (물론 연봉에는 비할 바 아닙니다)


겨우 3주 간의 전쟁을 치르고 돌아오니 전 회사가 난리가 났습니다. LG그룹에서 SERVEONE MRO사업부를 매각한다는 내용입니다. 아직 정확한 진위여부가 나오기 전이라 가타부타 말할 수 없고, 추진 중이라고만 했기 때문에 제가 확실히 생각을 말하는 것도 시기상조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회사란 둥지에서 안정감을 갖고 있던 많은 분들의 동요는 보지 않아도 예측이 됩니다. 혹자는 제가 미리 나간 것에 대해 선견지명이라고 칭찬하기도 하지만, 이 사태를 지켜보는 제 맘도 그리 편하지는 않습니다. 어찌 됐던 저에게 처음 사회를 알려주고, 그 곳에서 일하며 비즈니스의 본질을 한 마디로 정의내리게 해 준 곳이었으니까요. 정도경영, 인간 존중 등을 기치로 사회에 LG의 가치를 알리던 회사가 정작 안의 직원들에게는 매각에 대한 의사를 묻기는커녕, 기사를 통해 접하는 게 최선이었냐며 분통을 금치 못합니다. 저 역시도 제 사회 첫 직장이 이렇게 사라져만 가는 것 같아 너무나도 슬픕니다.


어떻게 3천 명 가량 되는 직원들의 의사를 전혀 묻지 않고 이런 중차대한 결정이 가능했을까요? 노조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직원들의 권익을 대변할 소통 창구가 없다 보니 기업에서는 이런 부당한 결정을 주도적으로 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이미 모든 일이 어느 정도 진척되고 난 뒤에 목소리를 내는 것은 늦었습니다. 사모펀드에 팔린 많은 회사들이 직원이 없어서 그렇게 당했으리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회사가 보호막이라고 생각했지만, 그것은 착각이었던 거죠. 이 상황을 보면서 처절하게 느낀 게 하나 있었습니다. 


회사는 나를 절대로 지켜주지 않는다. 나는 나 스스로가 지켜야 한다. 


회사의 미래는 저도 전혀 몰랐기에 그런 선견지명을 칭찬받을 생각은 추호도 없습니다. 다만 회사에서 느끼지 못한 안정감을 내 글 실력을 통해 느꼈고, 그 안정감을 믿고 회사를 박차고 나간 제 선택은 다른 이들에게도 꼭 공유해 주고 싶습니다. 제가 서브원 출신으로 좀 더 성공했다면, 더 많은 이야기를 해 주고, 도움도 줄 텐데 그러지 못해 너무 속상합니다. 제일 잘 하는 방식인 글쓰기로 서브원 안에 계신 분들을 위로하고, 퇴사를 하더라도 밖이 그리 춥지 않다는 것을 알려 드리고 싶어요. 저 같은 애도 버티고 있는데, 여러분들도 할 수 있습니다. 다만 나오시기 전에 그냥 나오시지 말고 회사를 대신할 무기를 꼭 만들어 나오세요. 여러분들의 숨겨진 재능을 제가 일일이 찾아 드릴 수는 없지만, 이 글을 통해서라도 그것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매일 '자기 계발'을 하는 독자 여러분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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