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증의 존재, 그러나 그 안의 모두가 열심히 오늘을 산다
이 세상에서 영원한 것은 없어요. 그러니 무언가에게 영원한 존속을 요구하는 건 어리석은 짓이겠죠. 하지만 그것이 존재할 때 그 안에서 기쁨을 취하지 않는 것은 훨씬 더 어리석은 거에요. 변화가 존재의 본질이라면 그것을 우리 철학의 전제로 삼는 것이 현명하죠. 똑같은 강물에 두 번 들어갈 순 없어요. 강물은 끊임없이 흐르니까. 하지만 다른 강물에 들어가도 그것 역시 시원하고 상쾌한 건 틀림없어요.
서머싯 몸 <면도날> 中
이전 회사 연수원에서 회사를 소개하며 얘기했던 게 생각이 납니다. 우리 회사는 그룹 지주사가 지분을 100% 갖고 있어서 다른 계열사가 사라져도 마지막까지 남아 있을 수 있는 안정성이 가장 큰 장점입니다. 신입사원 당시 잘은 모르지만 특유의 엘지뽕과 맞물려 회사에 대한 애정도는 하늘을 치솟았습니다. 언제까지나 저와 함께 하며 제가 임원, 아니 사장까지 달 때까지 제 옆에서 자랑스런 LG로 함께 할 줄 알았습니다. 어렵게 회사를 들어갔던 만큼 소속감은 말할 수 없이 컸습니다. 제 소속학교도 좋아서 이렇게 입사했으니 좀만 잘 해도 임원까지는 승승장구라는 카더라도 들었습니다. 그러나 제가 생각하지 못했던 게 하나 있었습니다. 회사가 LG그룹의 울타리에 계속 있어야 한다는 전제가 계속 유지되어야 했습니다. 아직 기사로만 나와 있고, 확정은 아니지만 회사는 LG의 그늘에서 나왔습니다. 자발적 독립이 아니라 그룹에서 버림받은 모양새라 더욱 가슴이 아픕니다.
정말 이 소식을 접하고 영원한 건 없음을 다시 한 번 느낍니다. 자기소개서에서 자주 물어보는 문항 중 '혁신'의 경험을 묻던 게 생각나네요. 저는 친구들에게 글을 써 줄 때, 혁신이 뭐냐고 물어보면 주로 안주하지 않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이건 제 평소 가치관이기도 했는데요. 회사의 갑작스런 개편 그리고 그로 인해 회사의 주인이 바뀌는 과정을 바로 옆에서 보고, 제가 중요하게 생각했던 사람들이 고통받는 모습을 보니 남 얘기 같지 않음을 느꼈습니다. 저도 지금 이 자리에 안주하다가는 언제 어느 때 시장에서 밀릴 지 모르니까요. 자기소개서/취업 시장에 발을 들인 것도 기존의 강사 분들이 똑같은 콘텐츠로 몇 년째 진보 없이 정체되어 있는 모습을 바로 옆에서 봤기 때문입니다. 기득권을 가졌으면 그 권한의 무게를 무겁게 여기고 스스로 계발과 혁신을 게을리 해서는 안 되는데 말이죠. 제가 갖고 있는 글을 빨리 쓰는 능력, 취준생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 듣는 것을 좋아하는 제 취향 두 가지라면 자기 소개서만큼은 그들을 꺾을 수 있을 거란 생각에 이 시장에 뛰어들었습니다. 제 콘텐츠 전략이 좋다며 주위에서 좋은 말을 많이 해 주지만, 그들의 호평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저는 아직 1등이 아니고, 압도적 1등이 되는 그 날까지 자기 계발을 멈추지 않을 생각입니다.
자기소개서 시장에서 최고를 찍은 다음에는 글을 잘 쓰는 능력을 활용해 다양한 분야로 진출하고 싶습니다. 아직 구체화된 것은 없고, 생각만 갖고 있기 때문에 이 글에서 시원하게 밝힐 수는 없지만 분명 자기소개서만으로는 잠깐의 영화만 얻을 뿐 한계에 부딪힐 거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제가 갖고 있는 권리를 내려놓고 새로운 분야로 진출해야 다른 친구들이 함께 도전할 수 있을 거라 믿습니다. 직장이란 안정된(돌이켜 보니 안정되지 않았던)곳을 걷어차고 미지의 영역에 도전한 만큼 저는 책임감을 갖고 있습니다. 그 책임감이 저를 한 곳에 안주하지 못하게 합니다. 실제로 추석 연휴에는 자기소개서와는 전혀 다른, 냉면을 주제로 한 글을 써서 안전가옥에 제출할 생각입니다. 그 일부는 브런치에 공유할 생각입니다.
성공 가능성을 장담할 수도 없고, 제가 쓴 글이 자기소개서를 받고 그만한 퀄리티를 기대하셨던 분들의 눈높이를 충족하지 못할 지 모릅니다. 아무렴 어떻습니까? 그 도전 자체만으로 저는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도입부에도 나왔지만, 어떤 강물에 몸을 담그든 나는 언제나 시원하고 상쾌합니다. 그 좋은 느낌만 간직하고 있다면, 언제든지 나는 강물에 빠질 것입니다. 자기소개서를 쓰기 시작할 때에도 나름의 팬을 갖게 될 거라고 상상하지 못했습니다. 그 숫자가 많으면 많을수록 좋지만 저는 지금처럼 저를 믿고 함께 따라 와 주는 친구들이 어느 정도 있는 것만으로도 행복합니다. 300여명의 팬들과 함께 이 거친 취준 시장에서 그들을 모두 직장인으로 만든다면 정말 보람찰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 친구들이 제가 정말 좋다고 입소문을 내 주면 됩니다. 기존 시장의 main player인 선생님들은 실력에 자신이 없어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한 사람에게 몇 백 만원씩 뜯어 냅니다. 취업 준비란 영역에 그렇게 많은 돈을 쓸 이유 없습니다. 불안감을 조성해서 여러분들에게 거액을 쓰게 만드는 것이고, 많은 소비자에게 자기 콘텐츠를 자신 있게 내놓기 어려워서 거액을 소수에게 뜯어 낸다고 감히 예상합니다.
이렇게 말하는 저도 감히 스스로가 정답이라고 말하지 못하겠습니다. 지금 풍전등화의 위기에 놓여 있는 이전 회사 사람들의 미래가 지금과는 천양지차로 달라질 수도 있어요. 일희일비하는 순간만이 내 삶의 전부가 아니고, 그 순간들이 시간의 흐름 속에서 하나의 이야기를 구성해야지 되니까요. 결국, 나의 삶도 여러분의 삶도 다 소중합니다. 잠깐의 비(悲)에 고꾸라지지 마세요. 우리 모두 다 각자의 삶을 있는 힘껏 열심히 살았고, 그게 죄라면 죄일 뿐입니다.
오늘 하루도, 괜찮아요. 정말 수고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