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고흐와 달리 동시대에 인정받을 테다
여하튼 나는 나 자신의 작품에 인생을 걸었고, 그로 인해 나의 이성은 절반쯤 부서져버렸다.
그래도 좋다.
빈센트 반 고흐 <고흐의 편지> 中
내 삶은 나라는 화가가 그리는 블록버스터급 작품이다. 굳이 나에게만 해당되는 이야기는 아니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 삶을 멋지게 살고 싶어한다. 멋진 결과물을 만들기 위해 인생을 건다. 목표에 몰입하다 보면 목표 외에는 아무 것도 안 보일 때가 있다. 예술가들이 자기가 만족할 만한 수준의 작품을 내놓기 위해 작품 외에 아무 것도 보지 않는다. 얼마 전 미운 우리 새끼에서 정재형이 일일 게스트로 나와 연주곡을 만드는데 어떤 한 파트가 제대로 완성되지 않는지 반복적으로 연주를 하며 밤을 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원하는 만큼의 곡이 나오지 않았는지 다음 날 아침 물을 마시면서도 "빠바바밤" 입으로도 연습을 멈추지 않는다. 방송 직후 약간의 문제가 되기는 했지만 자신이 피아노 연주를 하는 방 건너편에서 바로 보이는 대중탕이란 글자를 보며 "거지같은 대중탕"이라는 말도 서슴치 않는다. 이제 와서 하는 말이지만 나는 정재형이 그에 대해 왜 사과를 해야 하는지, 그게 왜 논란인지 이해되지 않는다. 대중성과 예술성을 겸비한 곡을 만들기 위해 주위의 눈치 따위는 신경도 쓰지 않는 그의 모습에서 예술가의 풍모가 느껴진다. 삶이란 걸작을 완성해야 하는 나 역시 같은 자세를 가져야 하지 않나 싶다.
퇴사 후 제2의 인생을 위해 올인했던 아이템, 자소서 가이드 작업은 지난 달 내내 계속되었고, 얼마 전 그 대단원의 막이 내려갔다. 올 상반기까지만 해도 회사를 다니며 side job의 형태로 계속하던 것이었다. 그 때에는 묘한 절박함이나 위기감이 없었다. 퇴사하고 나니 다르더라. 8월 말 이후 3주~1달 반짝 찾아오는 일감의 양이 하반기의 성패를 좌우하는 상황이었다. 물론 자신은 있었다. 다만 누가 찾아올지 모르고, 얼마나 나를 찾아올지 가늠이 안 된다는 불안감만 있을 뿐 나를 찾지 않을 거란 생각은 없었다. 그리고 당장 단기적 수익만을 생각하며 이 일을 선택했다면 여기에 인생을 걸지 못했을 것이다. 자기소개서로 모인 다른 이의 삶이란 데이터를 변용해 의미 있는 비즈니스로 바꾸려고 한다. 거기에 얹어 내 글 빨리 쓰는 재능에 매료되어 나에게 자기소개서를 의뢰하는 친구들이 하나 둘씩 늘며 나를 중심으로 커뮤니티가 만들어진다. 커뮤니티 형태의 플랫폼은 내가 또 다른 비즈니스를 준비하는 데 기반이 된다. 혹자는 내가 그냥 자기소개서 대필을 해 준다고만 생각할지 모르지만 이처럼 나는 자기소개서라는 아이템을 무기로 나의 새로운 인생을 꾸려 가려고 한다. 그리고 그 인생이 압도적 예술 작품이 되도록 나의 전부를 걸었다.
하반기에는 아직 그럴싸한 결과가 나오지 않은 초반이다. 그래서 심리적 어려움보다는 체력적 어려움이 나를 괴롭혔다. 한창 때는 정말 평균 2-3시간만 자며 버텼고, 24시간 풀타임 자소서 대필러답게 새벽에 갑자기 오는 요청 역시 거절하지 않고 다 받았다. 밤새기 일쑤였지만 내 고생이 전부 소득이라고 생각하니 힘들지 않았다. 이번 하반기, 이제 막 프리랜서로 발을 디딘 나라면 당연히 가져야 할 자세였다. 물론 상반기 역시 초반에는 체력적 문제가 많았다. 회사를 다니며 글을 쓰다 보니 더 그랬던 것 같다. 어느 정도 시일이 지나고 합격을 하는 친구들이 여럿 나오면서 이상하게 정신적 공허함이 나를 찾아왔다. 내가 그들의 인생에 너무 많은 에너지를 쏟아 그랬나 생각이 든다. 여튼 심리적, 정신적으로 나는 나의 새로운 업(業)에 전부를 걸었다. 그 과정에서 내가 약간의 손상이 가더라도 이 일을 좋아했기 때문에 밀어 붙였다.
그러나 예술 작품의 값어치는 이 작품을 보는 관객들이 매긴다. 고흐의 작품도 그의 생전에는 명작으로 인정받지 못했다. 다만 시간이 지나고 그것을 이해하고 해석하는 관객과 평단이 나타나면서 점차 고흐의 작품이 괴작의 굴레를 벗어나게 되었다. 내가 만일 하는 일이 어느 누구의 호응도 없고, 혼자만의 외침이었다면 하고 싶은 글쓰기 일이었다 하더라도 절대 퇴사라는 위험한 선택을 하면서까지 여기에 올인하지 않았을 거다. 아무 기반 없이 방송을 시작한 게 아니라 내 글쓰기 방송을 후원해 주는 프릭 소속사가 있었고 2년간 글을 쓰면서 내 글에 대해 알게 모르게 입소문을 내 준 여러분의 네트워크가 큰 힘이 되어 주었다. 실제로 주변에서 시작한 기간 대비 빠르게 성장했다고 격려해 준다. 그러나 나는 만족하지 않는다. 지금의 결과를 얻기 위해 LG그룹 계열사(지금은 아니지만)를 나온 게 아니다. 대기업 사원으로서 누릴 수 있는 지위 그 이상을 염두에 두며 과감한 모험을 선택했다. 내 콘텐츠만으로 수천 명의 취준생 팬이 움직이는 경험을 꼭 해내고야 말겠다.
이 모험이 의외의 선물을 주려고 할 때, 나는 너무 즐겁다. 전혀 다른 업에서도 글쓰기라는 영역은 필요하고 내가 글을 빨리 쓰는 재능이 몸값을 낮출 수 있는 여력을 주어 새로운 비즈니스의 기회를 줄 수 있다고 보았다. 아직 논의 단계에 불과하지만 그 미래가 나의 비수기를 너끈히 넘어가게 해 줄 힘이 될 것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