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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리하리 Oct 08. 2018

이 길을 선택한 나의 1년 뒤는?

고된 길이라 할지라도 '나의 선택'이라 후회하지 않는다

인생이 짧다지만 '다시 시작하는 법'을 배우기 위해 1년은 충분히 투자할 가치가 있단다.


김성구 <좋아요, 그런 마음> 中



아직도 기억난다. 엄마가 자기소개서 쓰는 일을 나의 전업으로 삼겠다는 결정을 한 뒤, 통화하며 울던 것을. 잠깐 우시더니 한숨을 내쉬면서 한 마디 하셨다.

이러려고 어렵게 공부시켜 고대 보낸 게 아닌데.

속으로 고대 나와서 대기업이란 명분 하에 노트북 앞에 앉아서 가격 입력하는 내 모습은 멋있냐고 반문하려다가 엄마가 하도 구슬피 울어서 참았다. 물론 부모님에게는 LG그룹이라는 회사를 다니는 내 외관만 보고 흡족하다고 여기시겠지 그 속에서 맞지 않는 일을 하며 안으로 썩어 들어 가는 나는 보이지 않았을 거다. 아직도 기억난다. 어린 시절 아버지와 대화하면 언제나 대화가 되지 않던 그 때를. 결국엔 본인의 이야기가 다 맞다고 주장하며 나의 생각을 묵살당했던 기억. 그 상황에서 내가 잘못이 아예 없다는 건 아니지만 논리보단 권위로 대화를 이어가 끝내 자신의 권위를 세우고 내가 잘못했다는 말을 들어야 화가 풀리던 모습을. 혼술집에서 만났던 어떤 분은 어른이 되니 수그릴 줄도 알게 되었다고 했지만 어린 시절의 부정적 잔상이 여전히 괴로운 나로서는 그런 태도 변화는 가당치 않다. 자신은 애정을 갖고 나를 키웠다고 하고, 나 역시 그런 부모님의 공을 인정하지 않는 건 아니지만 이런 기억들 때문에 좋았던 것마저 희미해지는 듯 하다.


그래서 최근의 내 행보가 스스로에게 더 소중하다. 집안의 지원 없이 집값 내가 다 내고, 내가 하고 싶은 일을 job으로 선택해 하루 하루 견뎌 내고 있다. 견딘다는 표현을 쓰면 주로 나를 둘러싼 환경이 힘겹고 고통스러운 거 아니냐고 생각할 수 있지만 이 모든 상황은 내가 선택해서 만든 거라 절대로 힘들지 않다. 소위 말해 '다시 태어난 기분'이다. 매일 찾아오는 인연과 기회들이 새로울 따름이다. 그리고 그런 것들을 만드는 데 나를 지탱해 주는 글쓰기라는 무기가 있어 든든하다.


아직도 아버지의 문자가 기억난다. 하반기 공채가 막 시작해서 바빠 죽겠는데 나의 마음을 흐트러뜨리는 내용이었다. 방송을 봤다며 몇 명 시청자도 없는 방송이 무슨 의미가 있냐는 것이 골자였다. 그러면서 KB국민은행을 써 보라고 하셨다. 다시는 취업하라는 말을 하지 않겠단다. 옛날 생각이 났다. 내가 4수 끝에 고려대에 가자 기뻐하던 아버지 표정이 눈에 선하다. 그러면서 이제 너의 뜻대로 인생을 살아보라고 격려해 주셨다. 오래 가지 않았다. 중간고사 성적, 기말고사 성적이 잘 안 나왔다며 나에게 잔소리를 늘어놓던 모습. 그 후, 학기가 끝날 때마다 성적을 물어보며 나를 압박했다. 말이라도 말지. 물론 다 나 잘 되라고 하는 쓴소리이다. 모르는 바 아니다. 그런데 때로는 호의가 받는 이에게는 고통일 수도 있다. 의도하던 의도하지 않았던. 아무리 부모-자식 간이라도 모르는 게 있다고 인정하고 거리를 둬야 하는데, 거리 두기 따위는 없었다. 나를 자신의 아바타로 생각했던 것 같다.


이제 주사위는 던져졌다. 대기업을 때려치우고 내 스킬로 내 길을 개척하겠노라며 나왔다. 떨리고 긴장되지만 어쨌든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그냥 앞으로 나아가는 걸로는 부족하고 어떻게든 성과를 내야 한다. 여기서 말하는 성과란 한국 사회에서 흔히 말하는 가시적 성공이다. 내 선택이 옳았음을 증명받고 싶다. 아버지가 자신이 나를 잘 몰랐다며 이렇게 성공해 줘서 고맙다는 말을 듣고 싶다. 나도 안다. 거기까지 가는 데는 1년으로 부족하다는 것을. 1년 안에 승부가 나기는 어렵겠지만 최대한 빨리 크고 싶다. 나를 찾는 곳이라면 어디든 달려갈 생각이다. 고대를 나와서 LG를 다니던 나 말고, 글을 빨리 쓰는 재능을 전문성으로 인정해 주는 곳. 관련된 영역에서 하리하리 하면 프로페셔널이고 내 글을 받기 위해서라면 얼마가 되더라도 서슴없이 몸값을 지불하는 사람들이 나타나는 나의 미래, 내가 바라던 바다. 그리고 당당히 돌아갈 거다. 긴 전투를 마치고 개선문을 통과하는 나폴레옹처럼 의기양양하게 돌아갈 내 모습을 상상한다. 그것을 위해 나는 오늘도 글을 쓴다.




이 문구가 와 닿았던 것은 매주 월요일 하는 아침 모임에 새로운 분들이 왔음도 큰 이유를 차지하고 있다. 나와 새로운 관계를 맺게 될 모든 이들도 나로 인해 그 새로운 시작이 의미 있었음 하고 그들과 함께 만들어 갈 이 모임의 1년 뒤도 더욱 멋졌으면 좋겠다. 무엇이 되던 간에 새로운 시작은 언제나 설렌다. 설렘 속에 또 한 주를 시작해 볼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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