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 후, 절대 멈출 수 없는 프리랜서의 숙명
바퀴는 쉬지 않고 돈다.
류이창 <술꾼> 中
8월 말부터 시작되었던 나의 폭풍같은 자소서 시즌이 끝났다. 내가 하는 일은 브런치를 쭉 본 사람이라면 알지만 자기소개서를 써 주고 가이드해 주는 일이다. 특히 기업 자소서에 집중되어 있는 편이다 보니 상/하반기 채용 시즌에 일이 몰리는 편이다. 그 때에는 소위 말해 지갑이 두둑하다(혹시 나에게 뭘 얻어 먹고 싶은 자는 그 때 집중적으로 공략하길...^^) 여하튼, 이제 좀 한가해졌다. 작년 하반기 같은 경우면 한가해진 만큼 다시 회사 일에 집중한다. 매월 25일에 월급은 나오니까. 이제 그럴 수 없다. 내가 여기서 그간 수고했다며 여행을 떠날 정도로 큰 부를 축적한 것도 아니다. 소위 말해 숨만 쉬어도 돈이 빠져 나가는 이 때, 조금이라도 멈추면 내 통장 잔고는 그대로 떨어진다. 매달 25일에 방세, 할부 포함 여러 돈들이 내 통장을 스치우고 지나간다. 그걸 생각하면 쉴 수가 없다. 내 숙명인 것 같다. 그런데 오늘 점심에 만난 최석민 대표님을 보니 사업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멈추지 못하고 달리는 습성을 갖고 있는 듯 하다.
최 대표님은 공간 기획이나 프랜차이즈 확장 등과 같은 컨설팅, 마케팅 업무가 주특기이다. 내가 강사로 활동하는 미플 공간의 활성화를 위해 제 아이디어가 듣고 싶으셨나 보다. 직장인들에게 희망을 주는 '투잡스쿨'에 대해서 아이디어를 전달해 드렸다. 내가 플랫폼을 만들고 확장시킬 솜씨는 없지만 최 대표님이라면 하실 수 있겠다며 "월급이 모자르면 투잡스쿨 닷컴!"과 같은 로고송도 드렸다. 이 분은 미플 말고 하는 일이 어마무시하게 많다. 관점을 디자인하라를 쓴 박용후 작가님도 9개의 직장을 갖고 9번의 월급을 받는다고 했다. 이분도 그런 분이었다. 자신만의 독자적 콘텐츠가 없음에 고민을 살짝 토로하셨지만 나는 오히려 여러 개의 일을 하시며 그 일들을 멋지게 해내는 것 자체가 대표님의 캐릭터라며 치켜세워드렸다. 그런데 헛말이 아니라 진짜다. 이렇게 다방면의 일을 잘 하는 것은 쉽지 않다. 그리고 그는 또 다른 기획을 얼마 전에 성공적으로 론칭했고(신촌 박스퀘어. 보고 왔는데 대박이다.) 스타트업 사외이사, 카페 프랜차이즈 전국화 등 여러 일들을 또 준비 중이다. 도무지 멈출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그러면서 나의 rough한 아이디어에도 관심을 갖는 그의 열정을 반찬 삼아 즐거운 점심 시간을 보냈다.
세상엔 나 말고도 열심히 사는 이들이 많구나.
란 생각과 함께. 나도 지금은 자기소개서를 쓰는 것만 하고 있지만 이는 성수기와 비수기의 구분이 명확하다. 비수기에도 내 생계를 책임져 줄 그 무언가가 필요하다. 이것을 찾기 위해 상반기 내내 대입 자기소개서에 발을 담그려고 부단히도 노력했지만 결국 실패했다. 그리고 소속 계약을 맺었던 플랜티 학원에서도 유의미한 매출이 나오게 하려고 애를 썼지만 결론적으로 실패했다. 물론 그런 몸부림들이 절대 아무 의미가 없었던 건 아니었다. 그 덕에 내 고유 사이트가 생겼고, 새로운 이들과 새로운 관계를 맺게 되었으니까. 그리고 그 과정에서 느꼈던 거는 내 브랜딩을 더 쌓아야겠다는 것이었다. 결국 내가 해당 분야에서 이름값이 있어야 사람들이 찾는다. 지금은 내가 필요에 의해서 사람들을 찾아 다니지만 곧 그들이 발에 땀 나도록 날 찾게 만들어야 한다. 그것을 위해 결국 나는 지금 이렇게 쏘다니며 기회를 찾아 다니는 것 아닌가?
자기소개서를 라이브로 쓰는 것은 내가 글을 빨리 쓰는 능력에 특화되어 있기 때문이다. 오늘도 나에게 아산병원 홍보팀에 합격을 했다는 친구의 이야기를 들었다. 그 친구가 홍보팀 필기 시험이 30분 안에 보도자료를 쓰는 거였는데, 글을 빨리 쓰는 내 모습과 그 노하우가 큰 도움이 되었다고 말해 주었다. 참으로 감사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이 재능에 관심을 가지는 또 한 분이 계시다. 얼마 전부터 내가 트렌드 인사이트에서 에디터로 일하는데 그 곳에서 만난 PR회사 팀장님께서 자신들이 기업 뉴스룸을 만들 때, 그 안에 넣을 콘텐츠를 구성하는 데 같이 얘기해 보자는 제안을 해 주셨다. 그런 일을 하는 분들이 제시하는 금액에 아연실색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왠지 모르게 새로운 내 수입원에 대한 희망이 생겼다. 수입원이란 말을 쓰는 건 거창하게 비즈니스고, 매출 채널이고 이런 말을 갖다 붙이기에는 내가 어색하기 때문이다. 내가 지금 하는 일이 현재 비즈니스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아직까지 나는 매일을 생존하기 위해 사투를 벌이는 중이다. 돈이 있어야 먹고 살 수 있고, 그것이 내 최소한의 자존심을 지켜주는 지지대이기 때문이다.
나를 받쳐 주는 든든한 무기를 들고 나는 또 여행을 떠날 거다. 어떤 인연이든 기회든 소중히 생각하고 내가 할 수 있는 역할이 있을까 고민할 거다. 어제도 내가 자소서 방송을 하다가 쓴 말이지만 희미한 연결점이라도 무한한 상상력으로 타고 타고 가다 보면 그것들이 시너지를 만들어 낼 수 있으리라 확신한다. 나는 취업을 도와 주는 자기소개서를 써 주는 사람이지만, 결국 나 역시도 이 자기소개서 넘어서 글이란 무기로 생존해야 하는 프리랜서에 불과하다. 그냥 모두가 자기 밥벌이는 잘 하고 살았으면 좋겠다. 그 과정에서 내가 유명해지고 몸값이 높아지면 금상첨화이지만, 지금 현재 내가 생각하는 단기적 목표는 그러하다.
살아남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