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렵지만 도전해야 하는 것이 숙명
만일 당신이 소설을 쓰기로 마음먹었다면 주위를 주의 깊게 둘러보십시오. 세계는 따분하고 시시한 듯 보이면서도 실로 수많은 매력적이고 수수께끼 같은 원석이 가득합니다. 소설가란 그것을 알아보는 눈을 가진 사람을 말합니다.
무라카미 하루키 <직업으로서의 소설가>中
신촌으로 약속을 향해 오는 길에 홍대입구역에 30초간 잠시 서서 숨도 쉬지 않고 인터뷰를 다 읽었다. 요새 나의 고민에 대한 답을 간접적이나마 알려주는 인터뷰여서 좋았다. 판교/IT/벤처 등의 삶을 적절히 녹여서 기가 막힌 워딩 선택과 전개 방식으로 소설을 써 내려갔다. 몇 달 전, 역시 재미있게 읽었던 무라카미 하루키 책의 한 구절이 떠올랐고 이것들이 오늘 나의 글을 만들어 줄 글감이다. 하루키는 말한다. 주위를 둘러보라고. 그녀도 주위를 둘러보았을 법하다. 나 역시도 주위를 보고 듣는 것을 참 좋아한다. 여자친구와 밥을 먹다가도 옆 테이블에서 하는 얘기를 모른 척 하고 듣다가 꼭 그녀에게 미주알고주알 말해 준다. 그 과정에서 나도 모르게 영감이 샘솟을 때가 있다. 사실 사람들의 삶은 천편일률적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직장을 가고, 월급을 받고, 주말엔 술을 먹으며 스트레스를 풀고, 그러다가 결혼을 하고 등등... 얼핏 보면 똑같아 보이는 일상 속도 자세히 들여다 보면 각자의 개성이 숨쉬고 있다.
일례로 지난 주말, 밥 먹는 자리 옆에 젊은 남녀가 왔다. 핵심부터 말하자면 소개팅이었다. 남자와 여자의 나이차이가 좀 나는 듯 했다. (얼굴을 보고 말한 게 아니고, 남자는 소개팅이 인생에서 처음이라고 했고, 여자와의 나이 차이가 많이 나서 어머니에게 등짝을 얻어맞았고 친구들이 이걸 네가 왜 하냐고 핀잔을 줬다고 했다. 말만 들으면 이제 막 시작하는 연인이다.... 그러면 안 될 텐데) 그리고 이직한 지 얼마 안 된 자신의 소속 회사에 대해 말한다. 소개팅이란 건 흔히 하는 거지만, 그 속으로 들어가면 각자의 스토리는 죄다 다르다. 그걸 포착해 글로 남기는 건 묘한 재미가 있다. 귀가 있어서 들리는 걸 어쩌겠는가? 게다가 나는 글 쓰는 사람인데 그런 하나 하나가 나의 영감이고 소재다. 실제로 여자의 이야기는 별로 기억에 남지 않았다. 상기된 얼굴의 남자가 열심히 얘기하고 여자는 듣는 스탠스를 취하는 시간이 좀 더 많았기 때문이다.
다만 나의 고민이라 할 것 같으면 긴 호흡의 글을 쓰지 못하는 것이다. 어제도 방송을 통해서 라이브로 글을 썼다. 글이라고 말하기 부끄러운 게 기업에 내는 아이들의 자기소개서 가이드였다. 짧으면 400자, 길어봤자 1000자에서 1500자 정도의 글을 한 번에 쓰는 나로서는 1가지 메시지를 딱 잡고 단편이라도 몇십페이지, 장편만 해도 몇백 페이지에 달하는 소설을 발간하는 소설가들이 동경의 대상이다. 자기소개서를 모아서 책을 낼 수도 있고, 지금 100여 편이 넘어가는 퇴사일기를 모아서 책을 낼 수도 있지만 이는 모음집이지 내가 꿈꾸는 긴 호흡의 이야기가 아니다. 사람의 삶은 살아 있는 한 계속 써 내려가는 이야기 아닌가? 자기소개서를 못 써서 허덕이는 아이들에게 스스로의 이야기에 집중하라고 그러고 나 역시도 그 삶을 파노라마처럼 풀어놓고 소설처럼 쓰라고 하면 자신 있게 할 수 있다고 말하기 어렵다. 어쩔 때는 나도 조선 시대 왕처럼 내가 눈을 떠서 감을 때까지 일상에 딱 붙어서 말 한 마디, 행동 하나하나 다 기록하는 사관이 있으면 어떨까 생각해 본 적도 있다. 그 기록을 받아서 멋진 이야기로 재구성하는 거다. 그런데 그건 엄밀히 말하면 자서전이지, 소설이 아니다.
당장은 돈이 궁해서 내가 잘하는 장르의 글쓰기에 집중하고 있다만 시간이 지나 유명해지면 반드시 휴지기를 가질 거다. 무라카미 하루키도 한 편의 소설을 쓰려고 하면 외국에 나간다고 한다. 인터뷰에 나오는 장류진 작가님도 회사를 다니다가 퇴사를 하고 그 텀에 소설 수업을 듣고 소설을 쓴 것으로 보인다. 물론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이 소설을 쓰는 데 사전 작업이 되어 주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직접 자기소개서를 쓰는 일을 안 하고 나와 같은 비전을 갖고 취준생들의 이야기를 진심으로 들을 준비가 되어 있는 이들을 새로운 자기소개서 강사 혹은 작가로 키우고 싶다(실제로 방송 듣는 애들 중에 그런 각오를 표명한 친구들도 있다. 얘들아 제발 취업부터 하자...!). 그리고 교육 이외 시간에는 그 동안 해보지 않았던 주제의 글쓰기에 도전할 것이다. 내가 문과에 구매 직무 담당자였지만 2년간 공학계열 학부생이나 대학원 전공자들의 자기소개서도 봐 주면서 기술을 보는 안목이나 이해도를 높였기 때문에 지금 당당하게 어느 전공자가 자기소개서를 들고 와도 잘 써 주고, 그들이 만족할 만한 퀄리티의 글을 만들어 준다. 소설 쓰기는 아마 이공계 자소서 쓰기보다 더 어려운 도전이 될 지도 모르겠다. 또 한 번의 도약을 위해서는 언젠가 넘어야 할 장벽이라고 생각한다. 이 모든 나의 발버둥은 결국 행복한 내 삶을 위한 노력의 일환이다.